산은 자신을 비워 사람을 살리고, 사람은 탐욕으로 산을 허문다
상태바
산은 자신을 비워 사람을 살리고, 사람은 탐욕으로 산을 허문다
  • 유태헌 서울본부장
  • 승인 2011.05.20 12: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태헌의 백두대간 종주기] 29구간 ②

올해 들어 본지는 국토의 등뼈를 밟아나가는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홍동출신·홍성고 20회·손전화 010-3764-3344) 출향인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비롯해 산행기를 연재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산행일시 : 2011년 4월 30일~5월 1일
산행구간 : 백봉령 - 자병산 - 생계령 - 고병이재 - 석병산 - 두리봉 - 삽달령
산행거리 : 18.5km
산행시간 : 6시간 50분 

 

 

 


강릉시 옥계면과 정선군 임계면 경계에 위치해 있다. 두리봉 동남족을 시작으로 깍아지른 듯 솟아 있는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마치 산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석병(石屛)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백두대간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함께 갖춘 산으로 정상에 서면 강릉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 맑은 날에는 멀리 동해안의 수평선도 보인다. 황홀한 광경이다. 주위에 만덕봉(1035m), 대화실산(1010m), 노추산(1322m) 등이 있고 주수천(珠樹川)의 지류와 임계천의 지류가 발원한다. 석병산은 석회암으로 형성되어 석화동굴, 서대굴 등 곳곳에 동굴들이 산재해 있다.


석병산 정상에 오르면 거대한 바위는 칼로 잘린 듯 겹겹이 쌓여 있고 망치에 부서진듯 울뚝불뚝 했다. 눈 앞 발길 아래는 천길 벼랑이다. 석병산(石屛山)이라고 쓰여 있는 표지석이 외로웠다. 하늘 바라보니 잔뜩 흐리고 거센 바람에 날아갈 것 같다. 온 길을 뒤돌아 보았다.자병산이 거기 있는듯 했다. 아직도 자병산 거기 있어 석병산과 마주보며 서로의 아름다움을 때로 자랑하고 때로 시샘하고 있는 듯했다. 회색빛 돌로 병풍을 두른 석병산과 자줏빛 돌로 병풍을 두른 자병산이 형제처럼 마주서서 서로를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는 듯했다.

서로를 자랑 삼으며 기뻐하는 듯했다. 그 자병산이 그리워진다. 끊긴 산줄기가 그리웠다. 석병산과 자병산은 그 이름에서도 쉽게 알 수 있듯이 짝을 맞춘 이름을 지닌 산이다. 동남쪽으로 마주보고 서서 산길 지나는 이들을 위로해주고 반겨주고 했던 것이다. 제 짝을 잃고 홀로 남은 석병산에 올라 쓸쓸했다. 제 짝을 잃고 외로운 석병산에 올라. 이젠 원래의모습을 되찾을 길 없는 자병산이 더욱 그립고 안타까운 것이다.

한편 석병산은 일월봉(日月峰) 이라고도 부른다. 일월봉 우측의 거대한 바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이름하여 일월문(日月門)이라 한다. 그 구멍으로 숲이 보였다. 온 세상이 다 들어 있는 듯햇다. 그 문으로 들어가면 참으로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밤이 되어 건너편에서 떠오르는 달빛이 일월문을 비추면 장관이라고 전한다. 참으로 그럴 것 같다. 생각만으로도 황홀했다. 깊은 밤 달 떠올라 일월문 안으로 들어온다면 그보다 더 황홀하고 아름다운 광경이 있을까.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울 것 같았다.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레었다.

석병산을 뒤로 하고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조릿대 숲을 지나 두리봉(斗里峰.1033m) 에 올랐다.(9시00분)
두루뭉술 해서 두리봉이라 부르게된 봉우리는 말 그대로 두루뭉술했다. 부드럽고 완만하며, 마당 같이 넓다. 정상에 벤치와 식탁, 평상까지 설치되어 있어 최고의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작은 나무판으로 조악하게 만들어져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표지판도 두루뭉술한 봉우리의 모습 때문인지 정겨웠다.

두리봉을 넘어 끝없이 이어진 산죽과 쭉쭉 뻗은 금강송 숲을 헤치고, 866.4봉을 지나면서부터 분수령은 온전히 강릉고을에 속하면서 이내 삽당령(揷唐嶺.680m) 고갯마루다.(10시00)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와 송현리의 분수령으로 강릉을 적시고 동해로 흘러드는 강릉 남대천,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으로 몸을 섞는 송현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이 고개를 넘을 때 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은 후 지팡이를 길에 꽂아 놓고 갔다 하여 ‘꽂을 삽(揷)’ 자를 써 삽당령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강릉시지]에 따르면 고갯길의 지세가 삼지창처럼 세 가닥으로 되어 있다 하여 ‘삽당령’ 이라 불린다고 되어 있다.

- 삽 당 령 -

구비구비 돌아가는 삽당령 고개
안개속에 묻혀버린 삽당령 고개
돌아서면 님 모습 보이질 않네
언제나 벗기려나 무정한 안개
내일이면 내모습 보이면 좋겠네.

삽당령에는 매년 음력 8월 첫 정일(丁日)에 소를 잡아 제를 지내는 산신각이 있다. 우리도 삽당령에서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지내고 점심 식사 후 귀경길에 올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