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묘한 삶을 살아가는 연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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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묘한 삶을 살아가는 연리지
  • 유태헌 서울본부장
  • 승인 2011.06.0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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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헌의 백두대간 종주기] 30구간

올해 들어 본지는 국토의 등뼈를 밟아나가는 유태헌(홍주신문 서울본부장홍동출신·홍성고 20회·손전화 010-3764-3344) 출향인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비롯해 산행기를 연재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산행일시 : 2011년 5월 14일~5월 15일
산행구간 : 삽달령 - 석두봉 - 화란봉 - 닭목재 - 고루포기산 - 능경봉 - 대관령
산행거리 : 27.1km
산행시간 : 11시간 20분 

 

 

 

 



백두대간 대원들을 태운 1호차가 닭목령을 거쳐 삽달령(揷疸嶺.670m)에 30여분 늦게 도착했다.
삽달령은 강릉을 적시고 동해로 흘러드는 강릉 남대천, 그리고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으로 몸을 섞는 송현천의 발원지기도 하다. 고갯마루엔 성황당이 있고, 마을 주민들은 요즘에도 매년 음력 8월 첫 정일(丁日)에 소를 잡아 제를 지낸다고 한다. 삽달령을 지키는 성황당 산신령에게 인사드리고 길을 나서면 대간길은 허리춤까지 오는 산죽이 우릴 반긴다. 삽달령에서부터 백두대간의 마루금은 동서쪽이 모두 강릉의 품속이다. 마루금은 대화실산 북쪽으로 비켜 가는데 방화선을 따라가면 들미재(810m)다. 들미재는 조선시대에는 삽달령을 넘는 역이 있던 왕산면 목계마을, 그리고 대관령 지구와 함께 고랭지채소의 본고장으로 꼽히는 용수동마을을 넘나들던 작은 옛 고개다.

봉우리를 오르내리면 중계소 철탑을 지나서 곧장 임도를 만나게 된다. 바로 아래 방화선이 끝나고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면 석두봉(石頭峰.982m)이 반긴다. 누구라도 슬며시 웃음 짓게 되는 석두(石頭)라는 지명대로 정상 부분이 바윗돌로 이루어져 있는 이 산은 강릉에서 삽달령으로 오르는 35번 국도가 선명하게 내려다 보일 만큼 전망이 좋다. 그러나 山 봉우리도 공부를 잘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석두봉(石頭峰)이라는 고약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나보다.

석두봉은 오르기도 힘들지만 내려올 때가 돌이 많아 더 힘들다. 서서히 날은 밝아 오지만 마음속에 품었던 일출의 아름다움은 구름에 가려 아쉽다.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그립다.



여기서 1000m 내외의 봉우리 서너 개를 넘어 빽빽한 산죽 밭을 지나면 철따라 온갖 들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사방으로 조망도 아주 빼어난 화란봉(花蘭峰.1069.1m)이다. 부챗살처럼 펼쳐진 화관이 정상을 중심으로 겹겹이 에워싼 형국이 마치 꽃잎 같다고 해서 얻은 지명이다. 결국 화란봉에서 퍼져나가는 산물결은 모두 겹겹의 꽃잎이 되는 셈이다.

화란봉에서 내려와 아침식사를 하고 급한 경사를 내려오면 고랭지 채소밭이 펼쳐진 닭목재(680m)다. 강릉과 임계를 잇는 2차선 포장도로가 이 고개를 지난다. 고갯마루 북쪽의 왕산리엔 닭목골, 남쪽의 대기리엔 ‘닭목이’ 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봐서 닭과 연관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풍수가들은 여기의 지세를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길지로 보았는데, 이 부근이 닭의 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닭목이라는 지명을 얻은 것이다. 감자의 주산지는 어디일까? ‘감자바위’ 하면 강원도를 생각하게 되고 보통은 평창이나 정선 등으로 생각하는데, 실제 감자의 최고 재배지역은 강릉이다. 뿐만 아니라 오염원이 없는 무병, 우량 씨감자의 안정적인 공급을 할 수 있는 ‘강원도감자원종장’이 이곳 닭목재 부근에 세워져 전국 최고의 씨감자 생산지로 각광 받고 있다. 고갯마루에 있는 산신각을 우측으로 끼고 가파른 경사를 오르면 널찍한 맹덕 한우목장이다. 이어 955.6봉 정상을 넘어서면 백두대간 마루금은 고루포기산(1238m)으로 향한다.

닭목재에서 고루포기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분수령 둘레엔 광활한 고랭지 채소밭 재배단지가 곳곳에 펼쳐져 있다. 이곳은 태백 매봉산의 고랭지채소 재배단지, 삼척 숙암리의 고랭지채소 단지와 함께 ‘백두대간의 3대 고랭지 채소재배단지’에 속한다. 고루포기산은 강릉시 왕산면과 평창군 도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다복솔이 많아 고루포기라 칭하여 졌다고 하며, 이곳에는 고로쇠나무도 많다. 마주보고 있는 발왕산, 주변의 제왕산, 능경봉 등의 명성에 가려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았던 산이다. 백두대간상에 솟아있는 고루포기산과 능경봉은 울창한 숲과 초원지대와 야생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환상적인 산행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기막힌 조망이 펼쳐진다. 동쪽 발아래에는 왕산리 계곡이 펼쳐지고, 멀리 강릉시와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이 한눈에 들어오며, 북쪽으로는 초록빛 카페트를 깔아 놓은 듯한 대관령 초원지대가 펼쳐져 있다.



능경봉을 향하다보면 연리지(連理枝) 나무를 만난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묘한 삶을 살아가는 연리지, 오랜 시간 마음과 사랑이 교차하면서 서로에게 동화되고 겉모습까지 닮아가는 모습 속에서 연리지의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연리지나무를 지나면 행운의 돌탑을 만난다. 우리들의 선조들은 험한 산길을 지날 때마다 길에 흩어진 돌들을 하나씩 주워 한곳에 쌓아 길도 닦고, 자연스럽게 돌탑을 만들어 안녕과 복을 빌며 마음으로나마 큰 위안을 받았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풍속을 오늘에 되살려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백두대간인 이곳을 등산하는 모든이들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고자 여기에 행운의 돌탑을 세우게 되었다. 나도 돌하나를 탑에 쌓으며 백두대간의 힘찬 정기를 받아 건강과, 모두가 무사히 백두대간을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잠시 후 능경봉(1123.2m)에 오른다. 왕산면 왕산리와 성산면 어흘리, 대관령면 횡계리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산정상이 영천(靈天)이 있어 기우제를 지냈고 이봉에서 맑은 날에는 울릉도가 보인다고 한다. 닭목재에서 능경봉에 오르는 능선에는 자작나무, 굴참나무, 산죽, 철쭉, 진달래 군락지를 만날 수 있고 철쭉이 필 무렵이면, 붉은 철쭉과 고목, 기암괴석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지를 자아낸다. 송천 너머의 발왕산(發旺山.1458m) 기슭엔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스키장인 용평리조트가 자리하고 있다. 남한 최초의 현대식 스키장인 양평리조트가 자리를 잡은 건 1975년의 일이다. 용평리조트가 이곳에 들어설 수 있었던 까닭은 고루포기산, 능경봉, 대관령, 황병산으로 이어진 백두대간 분수령 서쪽, 즉 평창군 도암면이 우리나라 최대의 다설 지역이기 때문이다. 능경봉에서 대관령으로 가는 도중 백두대간은 동해 쪽으로 산줄기 하나를 풀어 준다.

 

 

 

 

 

 



고려말 우왕(1364~1389)이 쫓겨나 숨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제왕산(帝王山.8407m)이 거기에 있다. 우왕은 공민왕이 신돈의 시녀 반야(般若)에게서 얻은 아들로서 1371년(공민왕20년) 신돈이 처형된 다음 궁중에 들어갔다가 1374년 공민왕이 세상을 뜨자 10세에 즉위했다. 우왕은 사냥, 음주가무, 엽색 등 방탕에 빠져들면서 백성들의 신망을 잃었고, 1388년 공민왕의 핏줄이 아니라 신돈의 자식이라는 이성계의 주장에 몰려 왕위에서 쫓겨났다. 그는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강릉으로 옮겨졌으며, 1389년 아들 창왕과 함께 이성계에게 살해되었다. 이곳엔 당시에 쌓았다는 제왕산성이 남아 있다. 분수령 산길에서 패왕의 슬픈 운명을 생각하며, 강릉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꼭 들어주었다는 영험함이 전하는 샘물에 목을 축이고 완만한 산길을 내려서면 언제나 바람 거센 대관령 고갯마루다. 영동고속도로가 확장되기 전인 2001년까지만 해도 북적대던 고갯마루건만 대관령고갯길을 넘던 옛 고속도로가 456번 지방도로로 강등되면서 이젠 적막감만 감돌고 있을 뿐이다.

후미가 내려오기를 기다려 횡계마을로 향한다. 눈 내린 겨울날이 되면 횡계마을 일대와 대관령 가는 길목의 20여개의 덕장에서는 줄줄이 매달린 황태가 대관령 눈보라 속에서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바다에서 태어나 산에서 완성되는 황태! 내장을 제거한 명태를 영하 10도 이하로 춥고 일교차가 큰 대관령의 덕장에 두 마리씩 엮어 걸어 놓으면 12월 말부터 4월 초까지 4개월간 밤낮으로 꽁꽁 얼었다 녹았다 반복한다. 그런 자연 건조 과정을 거치면 속살이 노랗고 육질이 연하게 부풀어 고소한 맛이 나는 ‘대관령 황태’ 가 탄생한다. 황태마을 식당에서 황태국에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귀경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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