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암, 세파에 지친 몸과 마음을 어머니 같이 보듬어 주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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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 세파에 지친 몸과 마음을 어머니 같이 보듬어 주는 공간
  • 유태헌 서울본부장
  • 승인 2011.09.0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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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헌의 백두대간 종주기] 35구간 ①

산 행 일 시 : 2011년 8월 6일 - 7일
산 행 구 간 : 미시령 - 삼거리 - 황철봉 - 저황령 - 마등령 - 오세암 - 영시암 - 백담사
산 행 거 리 : 16.1km
산 행 시 간 : 10시간 

 

 

 

 

 

 


백두대간 제35차 구간도 출입금지구역이다. 관리공단의 감시를 피해 남진하기로 하고 미시령 휴게소 전에서 차를 세운다. 산행대장이 감시초소에 올라가 확인한다. 다행히 감시원이 없다는 연락에 휴게소에 도착해 산행 준비를 마치고 철조망이 이중으로 쳐진 가파른 비탈길로 출발한다.(02시30분)

미시령(彌矢嶺.826m)은 고성군 포성면과 인제군 북면을 잇는 고개로서 진부령, 한계령과 함께 인근의 영동(속초,고성)과 영서(인제)를 넘는 중요 도로였다. 미시령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미시파령(彌時坡嶺)이라는 이름으로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즉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고개였는데 길이 험하고 산세가 가파르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다가 성종 때부터 다시 사용하였다. 이후에도 이 고개는 사용과 폐쇄를 거듭하다가 1950년경 자동차가 다닐 수 있게 뚫린 뒤, 한국전쟁 이후 국군 공병단에 의해 관리되며 군사작전용 도로로 사용하다가 1989년에 국제부흥개발은행의 차관에 따른 왕복 2차선 확포장공사 완공 후 민간에게 개통되었다. 그후 2006년 5월 미시령 터널이 개통되어 지금은 차량수가 급감하였다. 미시령 휴게소에서는 속초시 전역과 동해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더더욱 유명하다. 도로 연변에는 영서 쪽으로는 백담사, 십이선녀탕, 도적소, 영동쪽에 선인재, 신선바위. 혜바위, 울산바위, 화암사 등의 명소가 있다. 이 고개는 이제는 일부러 찾지 않으면 지날 일이 없는 추억의 고개가 되었다. MTB라이더가 가끔 지나며 땀을 식히고, 차로 편하게 올라 멋진 경관과 운해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사람들과 백두대간을 잇는 고개로 명맥을 이어간다.

느림보다 빠름이, 삶의 느낌보다는 성공이, 대세가 되어 버린 21세기… 나의 마음 한 자락은 꼬부랑이 미시령고개를 천천히 걷고 있다.
숲이 우거져 진행하기가 힘든 길은 이슬에 젖은 나무들 때문에 배낭과 바지가 젖어 더욱 힘들게 한다.
드디어 악명 높은 황철봉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마루금은 물론 산사면에도 거대한 너덜로 덮여 있다. 너덜은 제법 크고 작은 바위로 이루어졌다. 설악산 조물주의 솜씨가 이곳에서 절정을 이루는 것 같다.

만어산의 만어석과 비슷하지만 돌이 미끄럽지 않아 다행이다. 스틱을 떨어뜨리면 건저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돌과 돌 사이가 깊은 곳도 있다.
한반도 최대의 너덜바위지대는 가히 감탄을 자아낸다. 귀때기청의 너덜은 비교조차 안 된다. 이 높은 봉우리를 어찌 저런 거대한 돌들로 에워 쌓을까… 그저 자연의 섭리에 말문이 막힌다.
힘은 들지만 징검다리 건너듯 껑충껑충 뛰면서 올라가기도 한다. 1318m봉인 북황철봉을 지나 주봉인 남황철봉(1391m)에 도착한다.

 

 

 

 

 

 

 

 

 

 

 

 

 


마침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하얀 구름과 적당한 안개가 피어오르니 너무 환상적이다. 바람이 불면 구름과 안개가 나타나고, 바람 방향이 바뀔라치면 어느 샌가 홀연히 사라진다.

아~ 황철봉! 드디어 내가 네 곁에 왔구나. 사방을 둘러보니 북으로는 어느 조각가도 흉내 낼 수 없는 멋진 작품의 울산바위가 안개 속에서 웅장한 모습으로 솟아오르고, 동으로는 설악골과 속초 앞 바다, 남으로는 공룡과 화채능선, 서쪽으로 서북 주능선과 가리봉, 용대리 방향은 운무에 싸여 바다와 같다. 바위를 골라 건너뛰는 스릴과 주위를 바라보는 황홀감이 서로 교차하여 가슴을 아리게 한다. 너덜길에서 고생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러한 비경을 접하니 감개무량하다. 산행을 하면서 계속 숲길만 걸으면 그 지루함과 적막에 싫증도 나고 따분하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너덜을 벗어나 만난 숲길은 기분을 전환해주고 산림욕의 효과가 배로 증가되는 것 같다. 드디어 황철봉 능선은 끝나고 저항령(1100m)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한다.

저항령은 설악동 소공원에서 백두대간을 바라보면 V자로 패인 부분이 보이는데 그 곳이 저황령이다.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골도, 신흥사로 내려가는 저황령 계곡도 지금은 모두 ‘출입금지’ 구간이다.
다시 시작되는 너덜지대를 힘들게 오르면, 길은 뚜렷하고 흙냄새 짙은 태고의 향기가 코끝에 머문다. 세상에서 가장 신선한 공기, 가장 맑고 깨끗한 공간 속으로 우리가 숨 쉬며 걸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구상나무가 많고 간간이 주묵도 눈에 띤다. 조금씩 운무가 걷히더니 계곡으로 조망이 트인다. 지나온 황철봉은 여전히 운무 속에 가려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양쪽 계곡에서 펼쳐지는 풍경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공룡능선보다 더 험하게 생긴 암봉이 송곳 같은 바위들로 어울려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다. 이곳 역시 뛰어난 조망터로 설악의 전모를 샅샅이 살필 수 있는 곳이다. 대청도 보이며 중청, 안산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 바로 발아래 펼쳐진 참빗 같은 바위봉우리들의 공룡능선, 그 너머로 천화대, 화채능선…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절경과 비경의 연속이다.

아름다운 경관에 취해 오르다보니 마등령(馬等嶺.1327m)이다. 마치 말의 등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북쪽의 미시령, 남쪽의 한계령과 더불어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주요 통로였는데 지금은 동쪽으로는 비선대와 서쪽으로 백담사, 그리고 직진하면 공룡능선으로 이어지는 중요 등산로다. 회운각 휴게소 전 무너머 고개까지 이어지는 5.1km 공룡능선의 시작 지점이기도하다.

오늘의 대간길 등줄기는 여기서 접고 백담사로 하산한다. 아마도 백담사까지 탈출로로는 백두대간 구간 중 최장의 길이가 될 것이다. 내리막길이라 마음에 여유는 있는 편이지만 세 시간 이상 소요되는 조금 지루한 길이다.

 

 

 

 

 

 

 

 

 

 

 

 

 

 


그렇지만 백담사 가는 길엔 오세암(五歲庵)이 있으니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세파에 지친 몸과 마음을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보듬어줄 그런 휴식공간과 여유가 필요하다면 오세암을 가보라고 한다. 모시적삼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 같은 백의의 관음보살이 있고 동색의 무구함으로 심신을 넉넉하게 해줄 오세동자가 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곧 어른의 스승’이며 ‘어머니의 사랑은 가히 없다’라고 말들을 한다. 그런 어머니의 사랑과 아가의 무구함을 근간으로 백담계곡에 도량을 이루고 있는 암자가 바로 오세암이다.

오세암은 644년, 신라 선덕여왕 13년, 자장율사가 이곳에서 관음보살의 진신을 찬견한 후에 절을 창건하고 관음보살이 언제나 상주하는 도량을 알리기 위해 절 이름을 관음암(觀音庵)이라 부르니 오늘날 오세암이 시작된 것이다. 관음암이 오세암으로 바뀐 것은 1643년(인조 21)에 설정(雪靜)스님이 수행 중 형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고아가 된 조카를 암자로 데려와 기르게 된다. 아이의 나이가 5살 되던 해, 가을이 막 시작되는 10월 하순 산사의 월동준비를 위해 양양의 물치 장터를 다녀오기 위하여 암자를 비우며, 이틀 정도 예상하고 밥과 반찬을 만들어 놓고 스님은 아이를 불러 법당안의 관음보살을 가르키며 “내가 다녀오는 동안 이 밥을 먹고 있으며 저 분을 어머니처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라 불러라. 그러면 저 분이 보살펴 주실 것이다”라고 당부 후 스님은 물치 장에서 겨우살이를 구입한 후 신흥사에 들려 하루를 묵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났으나, 밤샌 폭설로 엄청나게 쌓인 눈 때문에 도저히 암자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야속한 눈은 그 뒤로도 그치지 않고 계속 쌓여만 갔다. 혼자 있는 조카가 걱정이 되지만 쌓인 눈은 녹지 않아 머물 수밖에 없었고, 무정한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어느덧 봄이 오고 눈이 녹자 스님은 서둘러 암자에 들어섰다. 그러나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였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어찌된 것이냐고 물으니 조카는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저 어머니가 언제나 찾아와서 밥도 주고 재워도 주고 놀아도 주었어요’라고 대답한다. 그 후 어머니라 불렀던 백의여인은 한 마리 푸른 새로 변하여 창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깜짝 놀란 스님은 부처님 전에 큰절을 올리고 조카를 안아 보려하자 그대로 사라져 승천을 하였다고 한다. 비록 5살 밖에 안 된 동자였지만 그 순진 무궁한 마음이 동자를 성불케 하였으며 이 도량에 관음보살의 영험이 있음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중건하고 절이름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오세암은 백의의 관음보살에서 어머니의 사랑과 자애로움이 느껴지며, 순진무구함으로 성불한 5세 동자상이 혼탁한 마음을 맑게 해준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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