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배다리 마을, 재개발의 위기에서 역사문화마을로 재탄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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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배다리 마을, 재개발의 위기에서 역사문화마을로 재탄생하다
  • 김혜동 기자
  • 승인 2011.09.2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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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도시브랜드, ‘문화·예술이 답이다’ 〈1〉

 

 

 


이제는 문화예술이 곧 경쟁력인 시대다. 특히 문화는 주민들에게는 창조의 에너지와 기업에게는 신 성장 동력을 제공하며 브랜드 향상의 기회로 작용한다. 홍성에도 유·무형의 경쟁력 있는 문화적 자산들이 많다. 홍주 1000년의 역사 속에 묻혀 있는 홍성의 역사, 문화, 예술, 인물 등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시켜 한 단계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해야 한다. 본 기획취재는 홍성의 도시브랜드 구축이란 명제에 대한 해답을 ‘문화·예술에서 기인한 내발적 발전’으로 두고, 재개발의 위기에서 역사문화마을로 재탄생한 인천의 배다리마을, 쇠퇴한 철강단지에서 예술인들의 아지트로 새롭게 탈바꿈한 문래동 철강단지,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된 일본의 카나자와시 등의 사례를 통해 이상적인 문화·예술도시의 형성과정과 기준을 제시하고, 홍성의 미래비전은 문화와 예술이 핵심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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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인천 배다리 마을, 재개발의 위기에서 역사문화마을로 재탄생 
② 문래동 철강단지, 예술인들의 새로운 아지트
③ 일본 가나자와, 방직공장을 시민예술촌으로
④ 일본 가나자와, 과거와 현대의 조화로운 공존
⑤ 홍성의 도시정체성 찾기 ‘전통과 창조가 조화된 문화예술의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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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배다리 마을은 사진촬영을 취미로 둔 20대 청년들의 대표적인 ‘출사장소’로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마을을 수놓은 기발한 벽화들과 마을 중앙의 넓은 대지를 가득 채운 코스모스밭이 젊은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블로그를 통해 소개되는 배다리 마을은 ‘감성충만’을 추종하는 소수의 블로거들과 아마추어 사진가들 사이에 필수코스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인천의 배다리 마을은 인천광역시 동구 금곡동 일대를 일컫는다. 19세기 말까지 마을 어귀에 바닷물이 들어와 배가 닿는 다리가 있어 ‘배다리’라고 불렸다. 유서 깊은 지명대로 배다리는 근대로부터 이어오는 삶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최초의 공립 보통학교 창영초등학교, 여선교사 기숙사 등 100년도 더 된 건물과 옛 성냥공장, 양조장을 볼 수 있다. 인천항에서 일하던 인부들과 먼 뭍에서 물건을 떼러 온 상인들이 묵었다던 여인숙길, 1·4후퇴 때 생긴 60년 전통한복길, 고서점길 등이 구불구불 실개천처럼 흐른다.

 

 

 

 

 

 

 

△지금은 코스모스밭이 된 ‘배다리 에코파크’

 


그러나 ‘인천의 문화적 모태’라고 불리는 배다리 마을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출사명소로써가 아닌 ‘배다리 마을 지키기 운동’ 때문이었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와 청라지구간 물류의 흐름을 원활하기 위해 추진된 산업도로 공사로 인해 그 일대의 역사와 문화, 생활생태계가 단절되고 파괴될 위기에 직면하면서 배다리를 보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배다리 마을의 원형을 지키고자 했던 주민과 예술인들의 활동이 각종 매체를 통해 소개되면서 부터다.

배다리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중·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와 인천지역 시민문화예술단체와 활동가들이 모여 조직한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이 중심이 되어 산업도로 무효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인지도 4년째에 접어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천시가 추진했던 산업도로는 현재 예산부족과 시의회의 반대로 향후 5년간은 추진이 불가능한 상태다. 그간 배다리를 지키기위한 인천시민과 예술인들이 다양한 형태로 산업도로 저지운동을 했기에 얻어낸 인고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산업도로 저지운동이 마무리될 무렵, 일련의 활동을 이끌어냈던 배다리의 주민과 예술인들은 배다리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배다리마을만의 특징을 이끌어내기 위한 모임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름 하여, 배다리역사문화만들기위원회(위원장 민운기)가 그것이다.

 

 

 

 

 

 

 

 

 

△대안미술공간 스페이스 빔

 

 

 

 

 

 

 

 

△스페이스 빔 내부 인천 양조장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민운기 위원장은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 위치한 대안미술공간 스페이스 빔(Space Beam)의 대표이기도 하다. ‘도시유목’이라는 주제의 공공미술프로젝트 등을 기획했던 민운기 대표는 “배다리마을의 산업도로 관통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자 배다리마을의 지역성과 공공성에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며, “공공미술을 화두로 삼고 있기에 지역 안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했다”고 말했다. 민운기 대표가 인천시청 근처의 작업공간을 철수하고 배다리 마을에 입주하고자 결심했던 이유이다.

 

 

 

 

 

 

 

 

△배다리 마을 헌책방길

 


배다리 마을 헌책방 골목에서 개코막걸리 방향으로 30m정도 들어서서 거대한 철제로봇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허름한 건물이 지역 대안미술공간의 한 획을 긋고 있는 스페이스 빔이다. 이 허름한 건물은 1926년에 만들어진 인천양조장 건물이다. 여기서 만들던 ‘소성주’는 인천에서 유명한 막걸리였다. 그러나 회사가 1990년대 중반에 부평구로 이전하면서 빈 공장으로 있다가 2002년부터 2005년 사이에는 헌책방 거리의 대표 서점인 아벨서점이 전시관으로 이용했고, 지금은 스페이스 빔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현재 스페이스 빔은 옛 인천양조장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양조장의 골조를 그대로 이용해 옛 공간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면서도 현대미술가들의 창조적인 작품들을 감상하는 복합적인 공간이다.

 

 

 

 

 

 

 

 

 

△벽화가 그려진 초등학교 담장

 


서두에서 소개했다시피 배다리 마을에서는 곳곳에서 벽화를 찾아볼 수 있다.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학교, 담장, 가게의 벽과 골목 구석구석에 아기자기한 벽화를 찾는 재미가 있다. 벽화는 공공미술공동체인 ‘퍼포먼스 반지하’의 작품이다. 산업도로로 내정됐던 장소는 인천시의 주도로 코스모스 밭으로 탈바꿈했다. 민운기 대표는 “본래는 ‘에코뮤지엄’의 개념으로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해 자연생태계가 살아있는 무위의 공간을 지향했지만, 시의 방침이 그렇다면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민운기 대표는 “배다리 마을의 큰 위기는 일단 진정이 된 상태지만, 재개발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입장이 하나로 모아진 상태는 아니다”며, “이제 배다리마을은 막연히 개발을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개발의 다른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의 기로에 놓여있다”고 밝혔다. 민운기 대표에 따르면 스페이스 빔과 ‘퍼포먼스 반지하’와 같은 예술인들이 배다리 마을에 터를 잡고 산업도로 반대운동을 벌이는 동시에 배다리 마을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활동 등을 벌여왔고, 이제는 지역 예술인과 활동가들만이 아닌 배다리 마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마을만들기’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배다리 대안 공동체 마을 만들기 
민운기 대표가 제안하는 마을 만들기는 다음과 같다. 우선 ‘문화도시 만들기’ 차원으로 인천시의 도시정책에 대한 비평적 개입을 지속하고, 다양한 지역 현안에 대한 연대 활동을 지속함은 물론 구제적인 대안 마련 활동 및 사례를 창출해 인천 내지는 곳곳에 파급하는 한편, 기존 공간의 문화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동네에 대한 왜곡된 시선(낙후, 침체 등)을 교정, 마을 환경 내지는 주거조건개선 사업을 실시하는 것이다.

아울러 민 대표는 “공동체적인 측면에서 ‘더불어 살면서도 외부로도 열려 있는’ 동네를 만들기 위해 주민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증진시키고, 이웃 의식을 재활성화시킴은 물론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주민참여교육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켜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안목을 높이고 저마다의 잠재된 능력들을 사회적 맥락과 관계 속에서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무엇보다 주민으로서의 주인의식이 형성되면 주민이 동네 살림의 실질적인 중심과 주체로 서는 주민자치조직을 구성해 보다 확대된 사업과 활동을 조직적으로 수행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민 대표는 “이 같은 과정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축제를 개최함으로써 일련의 성과물들을 축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펼쳐 보일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생각하고 있다”는 포부를 전했다.

아울러 민 대표는 마을만들기의 핵심은 무엇보다 마을의 경제적인 자립에 있다고 강조했다. 민 대표는 “생활경제 측면의 경우 자본의 이익 논리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자립기반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일환으로 배다리를 방문했던 모 인사가 제안한 역사문화마을재단 설립안을 마을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은 본 기획취재를 통해 소개될 가나자와시의 ‘가나자와 예술창조 재단’과 유사한 성격으로 단일화 된 재단을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마을의 문화·예술 정책을 수립해 추진해나간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 밖에도 민 대표는 골목길, 건물 옥상, 화분 등을 이용한 소규모 도시농업사업, 별도의 화폐를 만들어 가입 회원들 간에 거래가 이루어지는 지역통화제(LETS)의 도입, 생활협동조합의 구성 등을 마을만들기의 구체적인 방편으로 제시했다.

 

 

 

 

 

 

 

 

 

 

 

 

 


배다리 마을을 통해 본 홍성 구도심의 재활 
“배다리, 우리가 지켜야 할 인천의 역사입니다”
위의 문구가 적인 동그란 스티커는 아직까지 배다리 인근에 여기저기 붙여져 있다. 산업도로를 저지할 당시 헌책방 거리의 아벨서점 대표에 의해 제작됐지만 배다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배다리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시각적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이다.

주민들의 마을에 대한 애착이 단순한 개발저지운동을 뛰어넘어 마을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려는 움직임으로 확산됐고, 주민주도로 시작했다는 점에서 배다리 마을의 ‘마을만들기’의 시작은 성공적이다.

내포신도시라는 핑크빛 미래의 그늘에 홍성의 원도심공동화 현상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더 늦기 전에 행정·경제 신도시와는 별개로 1000년 역사의 홍주가 지니고 있는 정체성과 문화·예술적 자산을 체계적으로 정립해야한다. 민·관 협력에 바탕을 두고 지역커뮤니티를 활성화 시켜야 함은 물론, 지역의 문화·예술인과 주민이 하나가 되어 자신이 속한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마을의 특징을 살리는 사회적 기업을 세우는 등의 경제적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기획기사는 충청남도 지역언론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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