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충청도를 ‘멍청도·핫바지’라고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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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충청도를 ‘멍청도·핫바지’라고 할 수 있으랴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11.12.0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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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또 저물어 가고 있다. 내년에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와 제18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되는 해이다. 4·11 총선은 불과 4개월여 남았고, 12월 대선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를 앞두고 충청도 사람들이 얼마나 멍청했으면 ‘멍청도’도 모자라 ‘핫바지’라고까지 붙여 부를까라는 생각이 든다. 으레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충청권 표가 이번 대선을 결정한다’는 등의 논조가, 특히 대선관련 언론의 보도와 논평에서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말이다. 충청 유권자들이 지역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현명하고 양심적인 판단을 내려줄 것을 요청하는 주문도 많이 쏟아져 나온다. 왜 일까. 이런 주문의 선의를 존중하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충청인들이 적극적인 사고를 해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영·호남의 지역주의 투표 성향은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충청권에만 지역주의를 초월한 투표를 해달라는 식의 주문이 부당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충청도에 ‘멍청도’ 또는 ‘핫바지’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진 것은 다분히 정치적으로 조장된 지역감정 때문이다. 사실 충청도의 지역감정은 영·호남의 지역패권구도에서 파생되어 나온 현상일 따름이다. 누구나 알듯이 ‘멍청도’는 ‘충청도’와 발음의 유사성으로 생긴 말로 비하의 뜻이 담겨 있는 말이다. ‘핫바지’라는 말도 화끈하지 못하고 뜨뜻미지근한 충청도 사람들의 성향을 빗댄 말이다.

“문둥이가 문둥이 안 찍으면 우짤끼고?”
한국정치에서 영·호남의 지역감정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 때부터였다고 한다. 한국에서 지역감정 선동의 ‘원조’격이라고 한다면 당시 민주공화당의 이효상을 꼽는데, 이해 4월 27일에 실시된 대통령선거에는 민주공화당 박정희, 신민당 김대중(金大中), 국민당 박기출(朴己出), 자민당 이종윤(李鍾潤), 정의당 진복기(陳福基) 등 5명이 출마했다. 당시 박정희를 돕던 이효상이 “문둥이가 문둥이 안 찍으면 우짤끼고?”라며 ‘경상도 대통령론’에 불을 지르면서 파급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선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69년 6월 대통령 박정희(朴正熙)의 3선 출마를 위한 개헌 움직임이 진행되자 이를 반대하는 대규모 학생시위가 시작되고, 7월 17일에는 ‘3선 개헌 반대투쟁위원회’가 결성됐다. 하지만 개헌안은 9월 14일 새벽 민주공화당 소속 의원만이 모인 가운데 국회 제3별관에서 변칙 통과되었고, 10월 17일 국민투표로 가결됨으로써 박정희는 민주공화당 후보로 다시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던 것이다. 유권자 수는 총 1555만 2236명으로, 이 가운데 1241만 7824명(투표율 79.8%)이 투표에 참가했다. 이 날의 대통령선거는 무엇보다도 3선 개헌을 통해 출마한 박정희 후보와 당내 경선을 통해 40대 기수론을 제창하며 세대교체 바람을 몰고 온 김대중 후보의 대결로 국민의 관심이 모아졌다. 선거 결과는 634만 2828표(득표율 53.2%)를 얻은 박정희 후보가 539만 5900표(득표율 45.2%)를 얻은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당선, 이듬해 유신체제의 출범과 함께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밖에 12만 2914표를 얻은 진복기가 3위, 4만 3753표를 얻은 박기출이 4위, 1만 7823표를 얻은 이종윤이 5위를 차지했고, 무효가 49만 4598표, 기권이 309만 2500표로 기록돼 있다.

13대 대선, 유례가 없는 지역대결 구도로 흘러
이후 잠복됐던 영·호남의 지역감정은 1987년 12월 16일에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경상도 출신의 김영삼과 전라도 출신의 김대중이 분열하면서 첨예화됐다는 것이다. 1987년 6월 29일 민주정의당(민정당) 대표 노태우(盧泰遇)가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여 이른바 ‘6·29선언’을 발표한 이후 실시된 대통령선거이다. 특히 이 선거는 군부의 권위주의 정권이 민중항쟁에 굴복해 여야가 합의한 경쟁규칙에 따라 실시됐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사의 획기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후보자는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통일한국당의 신정일(申正一) 등 6명이 출마했다. 당시 민주화 과정에서 동반자였던 김영삼(金泳三)과 김대중(金大中)이 서로 분열되고, 동시에 충청출신 김종필(金鍾泌)이 후보에 출마함으로써 사상 유례가 없는 지역대결 구도로 선거가 흘러갔다. 이때부터 ‘3김’ 또는 ‘3김구도’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은 참담한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총유권자 수 2587만 3624명 가운데 2306만 6419명(투표율 89.2%)이 투표에 참가했고, 무효 46만 3008표를 제외한 유효투표 수는 2260만 3411표였다. 득표수는 노태우 후보가 828만 2738표(득표율 36.6%)로 1위, 김영삼 후보가 633만 7581표(득표율 28%)로 2위, 김대중 후보가 611만 3375표(득표율 27%)로 3위, 김종필 후보가 182만 3067표(득표율 8%)로 4위, 신정일 후보가 4만 6650표(0.2%)로 5위를 차지하였다. 이에 따라 노태우가 임기 5년의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다음해 2월 25일 취임함으로써 제6공화국을 출범시켰다. 당시 대통령 당선자인 노태우는 대구·경북에서, 김영삼은 부산·경남에서, 김대중은 호남에서 각각 몰표를 얻었다. 한편 충청출신인 김종필은 전국 8.1%의 득표에 그쳐 4위로 낙선했지만 충남에서는 45% 득표로 1위를 차지함으로써 충청도에까지 지역감정이 파생된 것이다.

KBS TV 심야토론서 홍사덕 ‘멍청도’발언
이듬해인 1988년 총선에서 노태우의 민정당이 전국구를 포함해 125석(과반에서 24석 미달), 김대중의 평민당이 71석, 김영삼의 민주당이 59석, 그리고 김종필의 공화당은 35석을 얻는다. 이 총선은 사상 최악의 지역선거였으며, ‘1노3김’으로 하여금 정국 주도권을 분할·장악하도록 만든 선거이기도 했다. 바로 1988년 국회의원선거에서 ‘멍청도’라는 말이 처음 사용됐다는 것이다. 당시 충남 부여지역구의 민정당 임두빈 후보가 선거유세에서 “멍청도라는 이름 청산에 앞장서겠다”고 발언한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결국 선거에서 충청도사람에 의해 ‘멍청도’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멍청도’라는 말은 1990년 8월 25일, KBS TV 심야토론에서 홍사덕 당시 민주당 부총재가 “전라도와 경상도가 극악스럽게 싸우니까 충청도 분들이 ‘우리가 멍청도인 줄 아느냐’며 김종필 씨에게 표를 던져 진짜 멍청한 짓을 했다.”는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영남 출신인 홍사덕은 지역감정의 발원지인 영남과 호남을 거론하는 대신 충청도민의 지역감정만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당시 충청도민들은 충청도를 ‘멍청도’라고 한 것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망언이라며 홍사덕의 공식사과와 발언 철회 등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이후 ‘멍청도’라는 말은 고착화돼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충청도가 핫바지냐?”…‘똘똘 뭉치자’는 뜻?
‘핫바지’도 마찬가지다. 핫바지는 솜을 둬 만든 바지이니, 그걸 입으면 행동이 굼뜨고 답답할 수밖에 없다. 핫바지가 ‘시골사람’ 또는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충청도 사람들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뭔가 분명치 않은 언행을 하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지 ‘멍청도·핫바지’라는 말이 느리고 뒷북만 치는 충청도 사람들을 빗대어 부르는 말이 됐다. 오늘날 충청인의 자화상을 그려본다면 단결하지 못하고, 화끈하지 못한 결단력, 예스(YES)와 노(NO)가 분명하지 못한 충청도 사람들의 상징어로 인식되고 있다. 충청도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충고다. 따라서 충청도 사람들이 ‘멍청도·핫바지’ 소리를 듣게 된 것은 아마도 자업자득일수도 있다.

정치판에서 ‘충청도 핫바지론’이 나온 것은 지난 1995년이다. 당시 민자당 국회의원이었던 김윤환(작고)은 김종필(JP)을 겨냥해 “충청도 사람이 당을 새로 만든다는데 충청도 사람들이 핫바지냐?”고 했다. 그러나 이후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한 JP는 “호남은 푸대접이라도 받았지만 충청도는 무대접이었다. 왜 충청도가 핫바지가 돼야 하느냐?”며 지역감정에 불을 붙여 선거에서 자민련의 녹색바람을 일으키며 크게 재미를 봤다.

최근 논쟁이 됐던 세종시 문제나 과학벨트와 관련해서도 “충청도가 핫바지냐?”는 말들이 일부 자유선진당을 비롯한 충청출신 국회의원들로부터 나왔다. 영·호남에서도 “영남이 핫바지냐?”거나 “호남이 핫바지냐” 등의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이제 ‘핫바지’는 ‘우리 지역이 정치적으로 홀대를 받고 있으니, 우리 지역끼리 똘똘 뭉치자’는 뜻으로 쓰이는 것 같다. 충남 아산출신의 김용래(작고) 전 서울시장은 “‘멍청도’가 아닌 ‘엄청도’라는 새로운 충청인의 상을 창조하자”며 ‘충청도 단결론’을 설파해 적지 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충청은 우리 국토의 중심(中心)지역이다. 예로부터 토질이 비옥하고 살기가 좋아서 삼국이 모두 노리는 치열한 접전지이기도 했다. 역대 대선에서 충청도 민심을 얻는 후보가 승리하는 중요한 보스팅지역이 됐다. 우리의 고향, 충청도 땅은 어느 구석을 밟아도 충신, 열사, 의사, 독립투사, 학자와 선비의 정기가 배어있지 않은 곳이 없다. 하지만 오늘날의 충청인들이 이 같은 유산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특히 주지해야 할 사실은 정치권에서 ‘멍청도·핫바지’는 신민주공화당-자유민주연합-자유선진당으로 이어지는 충청도 지역정당의 흥망성쇠를 거치면서 참 많이도 들어야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누가 충청도를 ‘멍청도·핫바지’라고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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