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득의 장군 추모 제향서 만난 14대 손 ‘임순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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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득의 장군 추모 제향서 만난 14대 손 ‘임순환’씨
  • 황동환 기자
  • 승인 2019.10.26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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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록 부군수 초헌관, 서부면 정충사에서 거행
후손들, 임득의 장군 관련 역사적 가치 연구 중
지난 17일 임득의 장군 제향이 봉행된 정충사에서 만난 임순환 씨(임득의 장군 14대 종손). 그는 현재 그의 형 임철환 씨와 함께 정충사 옆 사택에 머물며 임 장군 관련 연구와 역사탐방유적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주변 정리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17일 임득의 장군 제향이 봉행된 정충사에서 만난 임순환 씨(임득의 장군 14대 손). 그는 현재 그의 형 임철환 씨와 함께 정충사 옆 사택에 머물며 임 장군 관련 연구와 역사탐방유적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주변 정리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17일 오전 11시 서부면 판교리에 소재한 정충사에서 임득의(林得義, 1558∼1612) 장군을 추모하는 제향이 봉행됐다. 이날 제향은 초헌관에 이용록 홍성부군수, 아헌관에 이선균 홍성군의회부의장, 종헌관에 유환동 홍성문화원장이 맡아 진행했으며, 종친회 및 지역주민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임득의 장군은 1558년(명종13년)에 홍주에서 태어났고, 1596년 ‘이몽학의 난’이 일어나 청양, 보령, 정산, 대흥, 예산 등지가 함락됐을 때, 홍주성을 지키고자 의병 800여 명을 일으켜 홍주성을 구했으며, 1604년(선조 37년)에 청난공신 평성군에 책봉됐다.

현재 군에는 장군의 전승비인 ‘홍양 정난비’와 비각이 금마천(말무덤)에 세워져 있고, 장군의 제향은 매년 음력 9월 19일에 정충사에서 거행되고 있다. 한편 임득의 장군 묘역과 사당인 정충사는 지난 1997년 충청남도 문화재 제340호로 지정됐다.

제향이 끝난 후 임득의 장군의 14대 손 임순환 씨를 만났다. 그는 현재 그의 형인 임철환 씨와 함께 정충사 주변을 돌보며 임득의 장군 관련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Q.임득의 장군의 손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어떤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분이다. 임득의 장군관련 기록을 보면 훌륭한 일들을 많이 하셨는데, 오늘 제향에 할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정신과 업적을 오늘에 되살려 앞으로 계승 발전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조상들을 기억할 때마다 하는 각오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은 있지만 앞으로 할아버지가 한 역사적인 일들을 잘 밝혀서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 우리 세대의 더 큰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임 장군의 역사적 업적이 정확히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할아버지께서 하신 일들을 잘 정리해 놓으면 후대가 그 분의 좋은 정신을 계승하는 교육 자료로도 활용도 할 수 있고, 정충사는 지역 문화유산의 거점으로도 활용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Q.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임득의 장군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역사도 정리하고 있다. 그동안 임식 선생에 관한 자료를 조사 중이다. 임득의 장군의 부친이다. 우리 문중이 홍성에 뿌리를 내리게 된 연유도 임식 선생이 이곳 홍성으로 오면서부터다. 2015년 대기업 지사장직을 퇴직한 그 다음날 이곳으로 내려와서 정충사 곁에 머물며 공주대학교에서 2년과정의 문화유산정책 석사 과정을 거치고 학위를 받았다. 임득의 장군 관련 조사를 하는 중에 임식 선생의 역사적 가치를 발견하게 된 것이 성과다. 임식 선생 관련 문집은 충북대 우암연구소가 번역해 놓았다. 임 장군을 제대로 조명하려면 부친에 대한 연구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Q.임득의 장군은 어떤 인물인가?
임득의는 부친 임식으로부터 가학(家學)을 전수받았다. 관련 기록을 보면 유년 시절부터 풍모가 준절하고 영민했으며 성장하면서 시문과 문장뿐만 아니라 특히 병서와 무예에 능했다고 기록돼있다.
임 장군의 대표적인 공은 왜란 중에 발발한 이몽학(李夢鶴)의 내란을 진압한 공이다. 목사 홍가신을 도와 위기에 처한 홍주성을 구한 것이다. 또한 팔형제와 가솔 모두를 이끌고 800명의 의병을 모아 반란군을 평정하는데 앞장서 17명의 일가족 모두가 홍주지역에서 공신으로 녹훈됐는데 보기 드문 사례다. 임진왜란 후 임 장군의 공로가 인정돼 1604년 청난공신 정공신(正功臣)에 책봉되고, 1605년과 1607년에는 호성공신과 선무공신에도 원종 1등 공신으로 책봉됐다.

Q.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어느 시대나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은 인물들이 존재한다. 임 장군 역시 그렇다. 임 장군이 남긴 구국충절 정신과 충효의 선비 정신을 후세들이 배울 수 있도록 역사 인물 유적지를 발굴해 교육현장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또한 인근의 부해정, 정충사, 인지서재, 양곡사, 한용운 생가, 김좌진 생가 등의 유적지와 연계해 탐방 코스를 만든다면 지역경제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탐방객들이 방문할 때 최소한 불편이 없도록 유적지 주변의 기반 시설과 경관, 편의 시설을 개선하는 일이 과제다. 문화재에 대한 지자체의 인식도 변화해야 한다. 소극적인 문화재 보존 정책보다 적극적인 지역 개발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지역의 자랑스러운 역사 문화자원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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