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가치 있는 인천의 미래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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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가치 있는 인천의 미래유산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9.10.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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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길을 묻다 〈16〉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의 한미서점은 드라마 촬영장소로 유명해졌으며, 2대째 이어지는 헌책방이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의 한미서점은 드라마 촬영장소로 유명해졌으며, 2대째 이어지는 헌책방이다.


배다리, 새로운 역사·민족의 정체성 지키는 올곧은 정신 깃든 공간
시대를 거슬러 누렇게 해진 책장 넘기며 환상에 빠져들게 하는 곳
헌책들에는 한 권 한 권마다 각기 다른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어


인천의 배다리는 남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다.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배다리’가 어떤 곳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배다리골’이라 이름 붙여진 이 동네는 지하철로는 동인천역 부근, 주소로는 동구 금창동과 창영동, 송현동 일대를 아우르는 곳이다. 갯골과 이어지는 큰 개울로 밀물 때면 바닷물이 드나들었고, 따라서 자연히 배가 있어야 이곳을 건널 수 있었다. 배다리라는 이름도 ‘배를 대는 다리가 있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배다리 역사의 시작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9년 인천에 한국 최초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되고 일본의 조선 침탈을 위한 조계지가 만들어졌다. 조계지로 인해 살던 터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배다리에 모여들었다. 시장이 만들어지고 공장과 학교가 만들어졌다. 6·25한국전쟁 이후에는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이 모여들면서 마을이 생겼다. 이곳이 배다리 마을이다.

일본에 의해 개항이 이루어지면서 인천은 일본인 조계지를 시작으로 각국의 조계지가 형성되면서 조선 아닌 조선 땅이 됐다. 밀려난 조선인들이 터를 잡은 곳이 바로 배다리다. 어찌 보면 변두리라 할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의 인천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경인선철도가 19세기 말에 개통되면서 배다리는 번성기를 맞게 된다. 외세의 침범 속에서도 조선인의 공간이라는 주체성을 잃지 않았던 배다리는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민족정신이 더욱 응집된 공간으로 변모한다. 3·1독립운동 이후 인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배다리에서 시위운동이 전개됐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일본인 자본가들에 항거하는 노동자들의 쟁의가 이뤄졌던 곳이다. 이런 역사를 지닌 배다리지만 재개발과 산업화로 지난 2006년에는 사라질 위기도 맞았다. 하지만 배다리 역사를 소중히 여긴 사람들이 반대했고, 문화예술집단인 ‘퍼포먼스 반지하’와 함께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이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렇듯 배다리는 인천의, 나아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정신을 고스란히 안고서 자라난 동네였던 것이다.


■ 인문정신의 보고, 배다리 헌책방거리
배다리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 배다리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공간이자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올곧은 정신이 깃든 공간이다. 이러한 배다리에 인문과 지성의 보고인 책이 자리하는 거리가 조성된 것은 분명히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배다리에 헌책방거리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전쟁의 상처가 미처 아물지 않은 어두운 시대였던 만큼 당시에는 새 책은 물론이고 헌책마저도 귀하고 소중했던 시절이다. 배움에 목마른 청춘들에게 배다리에서 찾을 수 있는 헌책들은 희망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배다리에 자리 잡은 30~40여 개의 헌책방에는 책 속에서 수학(修學)의 길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가운데는 ‘토지’의 박경리 작가도 있었다고 한다. 박경리 작가는 1948년부터 두 해 동안 금곡동에서 신혼생활을 했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니 헌책을 사들이고 자연스레 헌책방이 됐을 것이라는 게 배다리 헌책방을 지켜온 사람들의 전언이다.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전철 1호선 동인천역에서 배다리로 가는 길 양옆으로는 키만큼 쌓인 책들이 있다. 이곳이 ‘배다리 헌책방거리’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는 1920년대 문을 연 양조장 자리에 들어선 공공미술 커뮤니티 ‘스페이스 빔’이 마스코트로 제작한 로봇이 있는데, 배다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소품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 로봇을 지나면 벽화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배다리헌책방거리, 입구 왼편으로 오밀조밀하게 헌책방들이 이어져있다. 나비야 날다 책방을 시작으로 대창서림, 집현전, 아벨서점, 한미서점, 삼성서림이 차례로 서있다. 옛날식 이름이지만 ‘책과 글이 모여 이루어진 숲’이라는 뜻이 담긴 서림(書林)이란 말이 새롭게 느껴졌다.

60여 년 운영해온 ‘집현전’은 주인은 바뀌었지만 동인천 ‘대한서림’ 다음으로 이 지역에 생긴 헌책방으로 배다리에서 가장 오래된, 지금은 가장 작은 책방이다. 이곳 책방들은 보통 40여 년 이상의 세월을 자랑한다. 한미서점은 아버지에게 책방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는 헌책방지킴이의 문화적 감각이 돋보인다. 헌책방 거리에서 가장 최근인 지난 2009년에 생겨난 ‘나비야 날다’ 책방은 북카페이면서 배다리 마을안내소도 겸하는 재미있는 헌책방이다. 아벨서점의 외관은 유리창이 아닌 책들이 빼곡한 책장으로 꾸며져 있다. 가까이에는 2호점이랄 수 있는 아벨전시관도 있는데 ‘배다리 시(詩)가 있는 작은 책 길’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1층은 문화예술 서적을 팔고 2층은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시낭송회 등의 행사를 연다고 한다.

이렇듯 배다리 헌책방에 가면 고서에서부터 국문학, 미술, 음악, 한방, 소설, 잡지, 만화, 잡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서적을 접할 수 있다. 시대를 거슬러 누렇게 해진 책장을 넘기면서 타임머신 여행을 떠나온 듯한 환상에 빠져들게 만드는 곳이 바로 배다리 헌책방거리다. 최근 이곳에서는 시 낭송회와 콘서트 등 다채로운 소규모 문화행사도 연중 부정기적으로 선보인다는 게 헌책방 지킴이들의 설명이다.
 

배다리 詩가 있는 작은책 길은 아벨서점 2호점인 아벨전시관이다.
배다리 詩가 있는 작은책 길은 아벨서점 2호점인 아벨전시관이다.
배다리 아벨서점은 1976년부터 43년째 헌책방을 운영해 오고 있다.
배다리 아벨서점은 1976년부터 43년째 헌책방을 운영해 오고 있다.


■ 배다리 헌책방거리, 테마여행지로 개발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헌책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자연히 끊어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현재는 겨우 여섯 개의 책방만이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헌책은 돈이 없는 사람들이나 구매하는 질 낮은 책이라는 인식이 언제부턴가 만연하기 시작하면서, 헌책방을 찾는 사람은 더욱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배다리 헌책방거리가 갖는 의미는 빛바래지 않은 채 더욱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책방의 헌책들에는 한 권 한 권마다 각기 다른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책방을 돌아보며 이러한 책과 조우하는 일은, 이러한 역사와 문화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책이 담고 있는 지식에 그 책을 통해 배움을 얻었던 옛 주인의 흔적까지 더해진 헌책은, 인문(人文) 그 자체인 것이다. 이것이 1970년대만큼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배다리의 헌책방을 찾는 고객들의 꾸준한 발걸음을 이어지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인천시 동구는 올해 2월 시에서 주관한 테마 여행상품 개발 공모에 ‘배다리 역사문화 마을 테마 여행’이 선정돼 시비 6300만 원을 지원받아 배다리 헌책방 거리와 연계한 테마 여행상품을 개발한다. 배다리 입구에서 매주 열리는 골동품 장터인 ‘도깨비 장터’를 확대 운영하고 헌책방 상인들이 모여 열던 ‘배다리 북마켓’ 행사도 전국 단위 페스티벌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또 문화해설사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주민들이 직접 문화해설사로 나서 배다리의 근대 역사와 골목 투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 사업은 시작 단계에서부터 배다리에서 활동하는 작가나 상인들과 협업해 추진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지난 6월에는 인천시가 주최하는 인천 배다리 헌책방 거리의 ‘책방 축제’인 ‘배다리 책피움 한마당’행사도 열렸다. 이 행사는 헌책방 거리의 역사와 책방 문화를 널리 알려 헌책방 거리를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한다. 동네책방 문화와 함께하는 즐거움을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게 구성했으며, 배다리 책방 문화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을 위해 마련한 행사다.

인천의 배다리는 밀물 때 바닷물이 밀려온 곳으로 경인선철도가 가설되기 전까지 배를 댈 수 있는 다리가 있었는데, 지명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20세기 초·중반까지 인천의 생활 중심지로써 정미소와 양조장, 성냥공장 등 인천 기간산업이 모여 있었으며, 배다리 시장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북적였던 곳이다. 현재는 추억과 역사의 공간이 됐지만, 여전히 재개발과 도시재생 사업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 ‘도깨비’와 영화 ‘극한 직업’ 촬영 장소로 유명해져 많은 관광객들이 오가는 명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인천시 동구는 2022년까지 ‘배다리 역사문화마을’을 조성하기로 하고 사업을 진행 중이다. 동구청 관계자는 “새롭게 조성되는 문화거리에는 시대의 변화에 맞게 ‘북 카페’ 등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할 수 있도록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책을 가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책방을 이어온 역사와 문화가 있는 곳이다. 책이란 매개를 통해 인문학강좌, 문화예술교육이 함께 이뤄지고 있는 공간이기도하다. 오늘도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이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찾는 이유다. 인천의 미래유산으로 남겨야할 가치가 있는 곳이 바로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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