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뇌종양 딛고 장승조각가에서 식당사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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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뇌종양 딛고 장승조각가에서 식당사장으로
  • 최선경 논설위원
  • 승인 2019.11.08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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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자택지 상가번영회 방영석 회장
선경C가 만난사람-27

오는 9일 ‘내포나눔축제’에 삼겹살 200인분 기부
상인들과 꽃단지 조성해 내포 상권 부활을 꿈꾸다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다. 내포신도시 정주여건과 산업기반조성이 늦어지면서 상권이 형성되지 못하자 하루하루 버티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중심상권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주자택지에 꽃단지를 조성하고 상인들과 함께 나눔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오는 9일 ‘제3회 내포나눔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내포신도시 내 이주자택지 상가번영회 방영석(55·노걸대 감자탕&개마삼겹 대표·사진) 회장을 만났다.

방영석 회장은 1965년 장곡면 천태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전에 취업해 1급 전기기술자로 일했다. 1년 새 동료 4명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일을 그만뒀고, 아내와 함께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모든 게 순조로운 날들이었다고 방 회장은 회상한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백 일도 안돼 아내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도저히 아내의 흔적이 느껴지는 곳에선 살 수 없어 당시 장승을 조각하던 형이 있는 강원도로 젖먹이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가 형과 함께 장승을 깎기 시작했다.

형인 방유석 씨가 장승을 조각하기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으로 장승의 투박하면서도 멋진 모습에 끌려 장승을 조각하기 시작해 어언 30여 년째 장승을 만들어오고 있다. 강원도의 아라리장승을 비롯해 대구시 서구 장승공원의 장승, 태안 꽃박람회 장승 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승조각품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칠갑산장승공원의 칠갑산대장군 등도 방씨 형제의 작품이다.

“2002년 월드컵 16강 진출을 기념하기 위해 둘레 6m가 넘는 대형 장승 4개를 서울 코엑스 앞에 세웠다. 외국인들이 월드컵 마스코트보다 장승 앞에서 사진을 찍고 관심 갖는 게 참 신기했다. 월드컵이 끝나고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초청을 받아 운반비만 2000만 원을 들여 장승을 옮기고 전시회를 개최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장승이야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이며 가장 한국적인 조형예술품이고 공동체 삶을 이끌어 가는 중심축이라고 말한다. 방 회장은 퇴폐적인 외래문화가 범람하고 개방화의 물결 속에 민족의 뿌리가 흔들리며 개인주의의 팽배로 이웃 간의 정이 사라지는 오늘의 병폐를 치유하는 데는 민족 전통인 장승문화를 복원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방 회장은 왜 장승 조각을 그만뒀을까?

“2008년 악성뇌종양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서만 6개월 정도 투병 생활을 거쳐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같은 병실 안에 있던 환자들 4명 가운데 3명이 모두 사망했다. 그 후유증으로 왼쪽 시력을 잃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큰딸이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해준 것이 너무 고마웠고 애들 곁에 남게 돼서 늘 감사하며 살게 됐다.”

죽을 뻔한 목숨에서 새로운 삶을 찾게 됐으니 뭔가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었다는 방 회장은 2015년 이주자택지에 식당을 개업하고 인근 상인들과 함께 상가번영회를 조직했다. 주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을 주고자 상인들과 함께 손을 잡았다. 올해로 3회째인 ‘내포나눔축제’에 상가번영회에서는 삼겹살 200인분을 준비하고 커피도 판매할 예정이다. 조명 가게를 하는 회원이 조명 100개도 선뜻 내놓았다.

“사실 지난 6월에 바자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야외에서 음식물 판매가 안 된다고 해서 행사가 무산돼 참 속상했다. 가뜩이나 장사도 안돼 어려운 상인들을 겨우 설득했는데 말이다. 좋은 취지로 진행하는 행사였음에도 행정에서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니 어려움이 많았다. 앞으로도 관의 도움이 절실한 부분이다.”

지난 봄, 방 회장은 충청남도 지원 주민공동체 사업으로 이주자택지에 꽃단지를 조성했다. 유휴지에 백일홍, 코스모스, 해바라기 등을 심었다. 중심상권에 밀려 어려움을 겪는 이주자택지 상권을 살리기 위해 고안한 사업이었다. 내년에는 개양귀비꽃을 심어 더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 계획이란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5년 뒤에는 재혼한 아내와 함께 필리핀에 정착해 한국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단다. 삼겹살 식당을 오픈해 우리 음식도 알리고, 그 옆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통적인 문화이자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한복 전시장을 마련하겠다는 꿈을 꾼다.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아내가 고맙다. 낯선 나라에서 10년을 살아줬으니 나도 아내의 나라에 가서 살겠다고 약속했다.”

악성뇌종양 수술을 받고 완치 판정을 받게 되면서 ‘매일 감사하며 행복하게 사는 게 최고’라고 얘기하는 방 회장.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내포신도시가 빨리 정착돼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상인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퍼졌으면 좋겠다며 걱정 어린 마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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