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스카이 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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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스카이 캐슬
  • 이원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9.11.0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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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이었던 것 같다. 밖에서 들어와 기계적으로 TV채널을 돌리던 중 “어? 병철이, 김병철 같은데? 오! 맞네, 맞아! 아직 연기를 하고 있구나! 고맙다, 고마워!” 무명의 긴 세월을 견디고 드디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 그를 보게 되자,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목이 콱 막혀왔다. 조용히 주어진 길을 따라, 있는 듯 없는 듯 학창시절을 보내던 김병철이 25년 만에 티브이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통해, 하루아침에 톱스타로 나타난 것이니,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성공을 자기들 일인 것처럼 반겼을 터이다.

그 동안 대한민국 보통사람 마냥 제 때에 가정도 꾸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배우로서 뚜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본 일도 없이, 죽죽 밀려나가다가 그대로 허망하게 끝나는 인생인가 싶을 때, 아마도 가장 힘겨운 순간에, 호쾌하게 한 방을 날리며, ‘배우생활은 배우 자신이 접을 때 끝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무명의 설움을 한 순간에 날려 보내게 해 준 ‘스카이 캐슬’ 이건만, 그래서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줬던 TV드라마였건만, 지난번에 대통령께서 느닷없이 대학입시 관련 담화문을 발표한 이후로는 많은 이들에게 ‘스카이 캐슬’과 연관된 기억들은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대통령님이 발표하신 담화문의 내용과 상관없이, 혼잣말처럼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매지 말랬는데…”라고 말하던 사람도 있었고, 대통령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투덜대던 이들도 있었다.

지난 6월 1일, 배우 김석훈 군이 장가가던 날 필자가 웃음 지으며 지켜봤던 몇몇 기억들도 이제는 안쓰러운 느낌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 아름다운 혼례식 자리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보다도 김병철이였다고 기억될 정도로, 하객으로 온 아줌마들이 병철이와 인증샷을 찍으려고 줄을 섰더랬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그의 선배로 진작 스타덤에 올랐던 손현주, 김상경 등과 타학교 출신 하객들이었던 가수 윤종신, 개그맨 김영철, 박미선 등은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축하한다, 병철아! 좋은 때다!” 그랬음직하다. 그리고 속으로 “아! 인생무상이네!” 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후배로서 먼저 각광을 받은 여진구, 권율 등은 뒤늦게 성공한 선배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지 않았을까?

요 근래 많은 대학교에서 추천도서, 또는 필독서로 쓰고 있는 ‘총·균·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우리나라가 앉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해답을 요청받자,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뛰어난 문자인 ‘한글’이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원동력 중 하나로 수준 높은 교육을 들고 있는 분들이 많다. 필자도 그 견해에 동감한다. 그러나 교육문제가 다시 국민적 화두로 떠오른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교육’이요, 그 중에서도 예절, 예의, 인간으로서의 품위 따위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꾸준한 개선과정이 급선무가 아닌가 한다. 마침, 중국의 고사가 떠올라서 되새겨 본다. 중국 북송 때 일이니까, 우리의 고려시대 얘기다. 당송팔대가 중 한 사람이요 ‘적벽부’를 쓴 대시인이자 ‘동파육’이란 요리로도 알려진 소동파가 겪은 실화이다. 평소 산사를 즐겨 찾아가곤 하던 그가 긴 여행 끝에 어느 절을 찾게 됐다. 그 절의 노 스님은 소동파의 남루한 옷차림을 보고는 “앉아!” 하더니, 절의 시자에게 “차!” 하더란다. 소동파가 차를 마시는 동안 옷을 잘 차려입은 여행객이 들어섰다. 이에 노 스님은 “앉으시지요!” 하더니 시자에게 “차 좀 드려라!” 라고 말했다. 뒤이어 큰 기침소리와 함께 그 지방의 지체 높은 관리가 들어섰다. 이 때 노 스님의 말씀이 걸작이었다. “윗 자리로 오르시지요.” 그 다음에는 “향긋한 차 좀 올리거라!” 했다. 차를 다 마신 소동파가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노 스님이 글 한 수를 청했다. 이에 소동파가 웃음을 참고 쓴 글은 “앉아! 차! 앉으시지요! 차 좀 드려라!”/“차! 차 좀 드려라! 향긋한 차 좀 올리거라!”였다. 이 글을 받자 노 스님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한다. 이름난 학교, 들어가기 힘든 학과에 들어가서 공부를 많이 한들 인격이 뒷받침 되지 못한다면 세상에 무슨 이바지를 할 것인가?

이원기<청운대학교 연기예술학과 교수·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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