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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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23
  • 한지윤
  • 승인 202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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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윤의 청소년 역사교육소설

“이제 나라를 세운지 한 해도 채 못 되었소! 성을 쌓고 궁궐을 짓느라고 백성들은 지칠대로 지쳤는데, 쉴 사이도 없이 식량을 거두고 장정을 뽑는다면 장차 백성들의 원성을 어떻게 들을 생각이요?”
신하들은 두서없이 입에 거품까지 뿜으며 주어 섬겼다.
한참 자리가 어수선해 졌을 때였다.             
을음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일어섰다.
“백성들의 원성이 그토록 무섭소?”
울음의 음성은 궁궐을 온통 뒤흔드는 듯 싶었고, 그의 부리부리한 두 눈은 범처럼 이글거렸다.
“무섭다면, 그 원성을 이 을음이 혼자 맡아 듣겠소.”
순간 장내는 잠잠해졌다.
그러자 을음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음성을 누그러뜨렸다.
“그야, 백성들의 괴로움을 난들 모르는 게 아니요. 그러나 큰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조그만 괴로움을 견뎌 내야 하지 않겠소?”
여기서 을음은 다시 언성을 높였다.
“당장의 괴로움을 피하느라고 군비를 게을리 했다가 막상 말갈이 침입해오면 어찌할 작정들이요  그 때엔 더 큰 괴로움을 겪게 될 뿐 아니라, 아직 기틀이 굳게 잡히지 못한 우리나라는 마침내 나라가 뿌리째 기울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이요?”
여러 신하들이 더 할 말이 없었다. 논리정연한 을음의 말을 반박할 말재주도 없거니와 그 강한 성격을 꺾어낼 담력들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이니 을음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만큼 그들의 가슴 속에는, 이치로는 따를 수 없는 불만과 불쾌감이 있었다.
자기주장을 관철시킨 을음은 곧 나라 안의 모든 장정들을 남김없이 징집하고 가가호호마다 여유있는 양곡을 보면 모조리 거둬들여 국고에 쌓아 두었다.
그러니 전국 방방곡곡에서 원성이 터져 나오고, 그 원성은 을음에게로만 집중되었다.
“아니, 가만있는 백성들을 왜 못 살게 구는 거야?”
“글쎄 쳐들어오지도 않는 적군이 무서워서 미리 장정을 징집하고 양식을 걷어가니, 이거 정말 놀라 자빠지는 꼴이지 뭔가?”
“이게 다 그 을음이란 작자 때문이야. 그 자가 나라 일을 도맡더니 이지경이 됐지 않았나  우리 대왕께서 직접 다스리시면 정말이지 이런 고생은 하지 않을 텐데…….”
백성들은 모이기만 하면 한숨과 악담을 퍼붓기에 바빴다.
그러나 을음은 그와 같은 악담은 들은 체 만 체, 자기 소신대로 척척 일을 실천에 옮겼다.
그리하여 왕성(王城)에는 훈련 받는 장정들로 들끓었고, 국고(國庫) 에는 양곡이 가득했다.
신하들의 불만과 백성들의 원망에도 불구하고 을음의 예견이 적중될 날은 왔다.
그 이듬해인 온조왕 3년 9월, 마침내 말갈병은 백제 북방을 침범한 것이다.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대기하고 있던 백제군이 을음의 명령에 노도처럼 일어나 싸우니, 그만 당황한 적은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거의 몰살당하다시피 했다.
귀신같은 선견지명, 슬기로운 용병(用兵)으로 거둔 대승전(大勝戰).

보통 경우 같으면 을음은 구국(救國)의 대영웅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백성들에게 비뚤게 보인 을음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저 악담거리였다.
압도적인 대승리를 거뒀다고는 하지만, 역시 이 편에도 다소의 전상자는 있었다.
그리고 그 전상자의 가족들에게는 압도적인 승리고 뭐고 염두에도 없다. 그저 자기 아들이나 남편이 죽고 상한 것만 원통했다.
“에그, 망할 놈의 세상!…… 을음인가 그자 때문에 새파란 내 아들이 죽고 말다니…….”
어떤 전사자의 어머니가 이렇게 울며 넋두리를 하면,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사람들도 덩달아 합세해서 욕설을 했다.
적과 싸워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는 그 자체조차도 을음을 밉게 보는 백성들로선 못 마땅했다.
“아 글쎄, 그렇게 약한 오랑케에게 미리 겁을 먹고 그렇게 야단을 떨 건 뭐람!”
“가만 내버려 뒀다가 몇몇 군사만 보냈어도 능히 쫓아버렸을 걸, 농사도 못 짓게 모조리 잡아다가 훈련은 무슨 훈련이며, 양식은 왜 그리 극성스럽게 걷어 가는 건지!”
“도대체 백성을 괴롭히기만 하는 것이 나라 다스리는 것으로 아는 모양이야!”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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