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선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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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을 넘다
  • 최명옥 칼럼위원
  • 승인 2020.06.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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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자기를 떠나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것은 기쁘지만 힘겨운 일이다. 오랫동안 꾸중을 들었던 사람이 갑자기 칭찬을 받으면 그 칭찬을 믿기 어렵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린 아이 때 상처의 감옥에서 산다. 심리학에서는 그 아이를 마음 속의 아이라고 부른다. 내 마음에도 그런 아이가 살고 있다. 

낮잠을 잤다. 아프지 않으면 낮에 잠을 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온 몸이 쑤셨다. 땅으로 꺼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따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누웠다. 그리고 스르륵 어느새 잠이 들었다. 어느 순간 펑펑 울고 있는 나를 보았다. 나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분주히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잠시 여유가 생겨서 스마트폰을 보았다. 한 남성으로부터 38번의 전화가 걸려와 있었다.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엄청난 꾸중을 들을 것이라는 생각에 긴장감과 불안감을 안고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 남성은 “괜찮아, 걱정이 많이 됐었어”라고 했다. 반전이었다. 큰소리로 화를 낼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꾸중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괜찮다는 그 말에 눈물이 주루룩 쏟아졌다. 그렇게 펑펑 울고 있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눈을 떴다. 그리고 눈을 뜬 후 꿈속에서 울고 있는 나의 감정이 전이돼서인지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정신분석은 꿈을 해석할 때 돼지꿈은 좋은 꿈이라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상담에서 자유연상이 중요하듯 꿈에서도 자유연상이 중요하다. 개인적인 자유연상이 먼저이고, 다음은 집단무의식에서의 자유연상이다. 처음에 나는 38번의 전화가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지인과 꿈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38이라는 숫자가 우리 한국인의 삼팔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도 넘지 못할 삼팔선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됐다. 

꿈 해석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프로이트는 꿈을 소원성취라고 했고, 융은 목적론으로 해석했으며, 비온은 정신의 소화과정이라고 말한다. 객관적 해석에 의하면 꿈의 등장인물은 모두 타인이다. 그런데 주관적 해석에 의하면 꿈의 등장인물은 자아의 분화, 즉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 꿈속에서 나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남자는 내 안의 남성성이며, 내가 인정받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모습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나는 잘못하면 혼나는 줄 알았다. 38번이나 전화를 해서 받지 않았으니 얼마나 많이 꾸중을 들을까 불안하고 염려했는데, 뜻밖에도 괜찮다고 말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진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서도 엄청 울었다. 너무나 긴 시간 동안 나는 혼나는 아이로 살았던 것 같다. 아니, 나 스스로 혼나는 것을 자처했는지도 모르겠다. 놀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에게 말씀드리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답변을 반복적으로 들었다. 아마도 그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위축됐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내 자신이 미웠던 것 같다. 아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나의 모습이 매우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원하는 욕구를 솔직하게 말하면 꾸중을 듣거나 부담을 드리기 때문에 안 된다고 내 안에 있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따라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꾼 꿈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한다. 이제 이 정도면 충분해. 그렇게 말한다. 이 말은 내가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이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는 잘 믿어지지 않는다. 과거의 꾸중 받는 아이라는 자아상을 버리고 인정받는 나라는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싶다. 내 마음 속 삼팔선을 지나 새로운 나로 살고 싶다. 꿈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꿈은 우리 무의식으로 가는 아주 중요한 열쇠를 알려준다. 꿈은 보물섬으로 가는 지도이지만, 보물은 아니다.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38선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하나가 되는 세상이 오면 정말 좋겠다. 가난한 자와 부자가 하나 되고, 경상도와 전라도가 하나 되며, 남과 북이 하나 되는,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뛰노는 아름다운 세상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 

 

최명옥 <한국정보화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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