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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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찾아가는 길
  • 김창호 홍성조류탐사과학관 연구위원
  • 승인 2020.06.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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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올라가는 길에서 만나는 바람은 더없이 맑고 덕숭산은 또 한없이 고요하다. ‘건너다보면 절터’라는 말처럼 모든 절집은 명당에 자리한다. 고인총상금인경(古人塚上今人耕). 옛사람의 무덤 위에서 지금 사람이 밭을 간다고 하지만, 불가(佛家)의 공부와 살림살이는 저자를 떠나 산중 명당에 있는 것이 옳다. 대덕고승들은 청산과 세속을 구분하지 않는다고는 하나 인연과 마음이 제 자리를 찾는 데는 아무래도 산자수명(山紫水明)한 도량이 도움을 줄 것이다. 
6월의 녹음이 짙어가는 초여름. 솔바람이 싱그럽게 이는 키 큰 송림 사이를 걸어가면, 아등바등 속세를 살아온 긴 세월이 아연 정지되고 애면글면한 세상사를 초탈하는 느낌이다. 백팔번뇌(百八煩惱). 어지럽고 욕심 많은 평생과 분세질곡의 우리 사는 세상에 번뇌가 어찌 108개밖에 되지 않을 것인가. 

숱한 허물과 여전한 무명(無明) 속에서 유서 깊은 수덕사를 찾아, 깊어가는 독경과 청정한 목탁소리를 들으며, 오늘 하루 운수행각의 나그네 흉내를 내며 경내를 떠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연기(緣起)와 윤회 속에 사는 중생이여.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온 그대여, 그대는 빈손으로 떠날 것이니 채우는 짐을 항상 가볍게 하고 늘 비우도록 하라. 길을 잃었거든 그대는 물을 따라 핀 꽃을 따라가라. 수류화개(水流花開), 수류이거(水流而去). 그러나 꽃과 물도 그리 욕망하고 집착할 것은 아니리라. 좋게 보면 모두가 꽃이고 나쁘게 보면 모두가 가시가 된다(好取看來總是花 惡將除去無非草).

충남 예산 덕숭총림 수덕사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덕행을 닦는다는 수덕(修德)의 길은 멀고도 힘들다. 닦을 수(修)에는 바르게 하고, 다스리고, 고치고, 꾸미고, 작은 막대기로 먼지를 털고 단정하게 한다는 함의가 있다. 이것은 결국 행선적덕(行善積德)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싯다르타(길을 가르치는 사람)의 귀한 가르침이다. 싯다르타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리라’는 뜻도 가진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수덕사에 숨어 있는 광대한 뜻을 안다고 감히 말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어느 때, 세상살이에 지쳐 덕을 잃었다고 생각한다면 가련한 그대는 마땅히 수덕사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고행의 길을 찾아 떠나는 걸음도, 고요함 속에 머무는 템플 스테이(Temple stay)도 소중한 것이다. 누군가가 높은 스님에게 물었다. “도(道)가 무엇입니까.” 스님은 “차(茶)나 마셔라”고 답한다. 고통과 환희 속에서 <길 없는 길> 성불(成佛)의 길을 걸어간 활연대오의 경허(1849~1912), 세계일화(世界一花)의 만공(1871~1946) 선사, <청춘을 불사르고> 속세를 해탈한 일엽(1896~1971) 스님의 수행과 자취를 굳이 알지 못해도 좋으리라. 

아아. 언제 또다시 이곳에 올 수 있으랴. 우리는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모두, 바람속의 먼지(dust in the wind)와 같은 존재다. 우리는 하나의 먼지에서 생성되어 또 하나의 먼지로 되돌아갈 것이다.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 몽중이로다. 천만고 영웅호걸 북망산의 무덤이요, 부귀문장 쓸 데 없다. 황천객을 면할쏘냐. 오호라, 나의 몸은 풀끝의 이슬이요, 바람 속의 등불이라.” 경허 선사의 <참선곡>이다. 
흔들리는 그대는 부질없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수행과 기도, 자비, 이심전심, 불립문자의 경지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끝내 마음의 공부에 있지 아니한가. 불가의 깊은 뜻은 자신을 버릴 수 있는 겸허함에도 있는 것이 아닌가. 선종과 교종의 법도 궁극에서 만나는 길은 서로 다르지 않아 머무르지 않는 구름과 같은 것이리라. 일편부운(一片浮雲). 구름은 간 곳이 없고 달빛은 여전히 밝다(雲自無形月自明).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모두가 알 수 없는 일들이다. 
아아. 일체중생 개유불성. 삼라만상 모두에게 자비 있으라. 
아아아. 여시아문(如是我聞)-나는 이렇게 들었노라. 합장(合掌). 


김창호<홍성조류탐사과학관 연구위원·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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