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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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49
  • 한지윤
  • 승인 2020.07.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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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기만만한 태자는 철기 5천을 거느리고 지름길로 치양성을 바라고 떠났다. 백제 군사들이 치양성하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깃들기 시작했다. 태자는 은밀히 사람을 보내 치양성의 형편을 살피게 했더니 그 사람이 돌아와서 보하는 말이 고구려 군사들은 지금 막 소와 돼지를 잡아 놓고 질탕하게 마시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음, 부왕께서 짐작한 그대로다.”
태자는 고구려 군사들이 퇴군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곧 군사를 두 대로 나누어 한 대로 하여금 치양북산 밑에 매복해 적군의 뒤를 끊게 하고 한 대는 원지에서 대기하게 했다. 
어느덧 새벽이 되자 고구려 군사들은 약탈한 물자를 수레에 가득 박아싣고 생포한 백제의 백성들을 이끌고 마침내 퇴각하기 시작했다.
고구려 왕과 군사들은 전승의 쾌감에 의기양양했다. 장사진을 이룬 대열은 어느덧 치양성 북쪽 10리나 되는 지점에 이르렀다.
그 때였다. 문득 천지를 진동하는 함성과 함께 태자가 이끄는 백제 군사들이 뒤에는 엄습해왔다.
“고구려 왕은 어디로 도망하느냐!”
“고구려 왕은 빨리 말에서 내려 결박을 받으라!”
백제 군사들은 소리소리 지르며 내달렸고 태자는 질풍같이 말을 달려 앞장에서 적들을 쓸어 눕혔다.
뜻밖의 공격을 받은 고구려 군사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고구려 왕은 한떼의 날랜 장졸들에게 포위되어 정신없이 북쪽을 바라보며 뛰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북산 밑에서 백제 복병이 함성을 지르며 쏟아져 나왔다. 고구려 군사들은 왕을 가운데 두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웠으나 백제 군사들의 서슬을 당해내는 수가 없었다.
“과인은 덕이 없어 오늘 백제땅에서 죽게 되었구나.”
고구려 왕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그 때 고구려의 날랜 장수 한 사람이 급히 말을 몰아 왕의 곁으로 다가왔다.

“대왕, 신이 혈로를 뚫고 나갈테니 대왕은 신의 뒤로 바싹 따르시오. 신이 살아있는 한 대왕의 몸에 피가 묻지 않게 하리라.”
그 장수는 말을 마치자 풀을 베듯 백제군을 베며 앞에서 달렸고 고구려 왕은 그 뒤를 따라 겨우 살아서 도망칠 수 있게 되었다. 이리하여 고구려군은 이번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백제군은 고구려병 5천여명의 머리를 베고 적들이 약탈한 재물과 백성들을 전부 빼앗는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백제 군사들의 치양성에서의 승리는 고구려 군신은 물론 백성들까지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이것은 이 때까지 백제와 싸워 처음으로 완전히 실패한 싸움이었다. 고구려는 이 때부터 남쪽에서 또 하나의 강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백제의 하잘 것 없는 것들이 무엄하도다!”
고국원왕은 치양성에서의 치욕을 씻기 위하여 그 이듬해 봄 다시 3만의 보기병을 거느리고 백제의 국경을 넘어섰다.
백제 근초고왕은 이번에도 태자를 보내어 막게 하였다. 태자는 왕은 명령대로 군사를 거느리고 출전하여 반걸양(半乞壤)이라는 곳에 이르러 진을 치고 고구려 군과 대치하였다. 고구려 군의 진은 바라만 보아도 삼엄하였다. 낮에 바라보면 기폭이 수십리에 이어져 있었고 밤에 바라보면 불빛이 이쪽 산에서 저쪽 산까지 잇닿아 있었다.
“이러한 대군을 어떻게 물리친다?”
태자는 골똘한 생각에 밥맛도 잃고 밤잠도 잊었다.
그 때 파수병이 돌아와서 고구려의 첩자를 잡았다고 아뢰었다.

“어서 이리로 끌어오너라!”
태자는 군막 안에 좌정하고 앉은 채 명령하였다. 이윽고 파수병들은 체구가 장대한 사나이를 끌고 들어왔다. 그 사나이는 군막에 들어서자마자 땅에 꿇어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고구려의 첩자는 들을지어다. 나의 묻는 말에 한 마디라도 거짓이 있다면 당장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
태자는 이렇게 엄포를 놓으면서 환도를 뽑아 무릎위에 올려놓았다.
“태자어른, 그새 옥체만강 하셨습니까?”
여태 꿇어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 사나이가 이렇게 인사를 드리며 고개를 드는 순간 태자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사기가 아닌가?”
“바로 소인이올시다. 특히 태자어른이 만나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온 것입니다.”
고구려의 군졸 차림새로 나타난 이 사기란 사람은 본래 백제 장군이었는데 몇 해 전에 실수로 임금의 말발굽을 다치고 죄가 두려워 고구려로 도망간 사람이었다. 그러한 사기가 지은 죄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렇게 제 발로 찾아온 데는 필경 무슨 곡절이 있겠다고 생각되어 태자는 곧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래 할 말이란건 무엇인가?”
“지금 고구려 군사들은 수 만 명이 된다고 하지만 모두 가짜 병졸들로 수를 채운데 불과합니다. 그중 강한 군사들은 붉은 기폭을 든 것뿐이고 고구려 왕은 그 속에 있습니다. 태자께서 우선 그것을 깨뜨리면 그 나머지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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