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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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맞이하며
  • 이용록 <홍성군 전 부군수>
  • 승인 2020.10.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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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남녀노소 가을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풍요로움이 가득한 가을은 한해를 숨가쁘게 달려오다 보니 지쳐있는 우리들의 삶을 여유롭게 하고 더욱 풍부하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에 모두가 좋아하는 계절이다.

추석을 보내며 성큼 다가온 가을이 아침저녁 옷깃을 여미게 한다. 봄부터 이어진 긴 장마에도 코로나-19로 인한 삶의 많은 변화 속에서도 어김없이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겨울을 이겨내고 움튼 생명들이 봄의 따스함 속에서 기대했던 그 가을이 다가온 것이다. 연하디 연한 새 순이 그 무거운 흙의 무게를 오롯이 견뎌 이겨내고 새움을 틔운 이유는 가을의 열매를 위한 눈물겨운 싸움이었을 것이다. 여름의 긴 장마와 폭염 속에서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가장 큰 이유도 이제 맞이한 가을의 결정체에 대한 갈급함이었을 것이다. 집 앞 모퉁이만 돌면 밤나무마다 알밤을 쏟아 내며 밤송이 가시를 활짝 열어 제 낀 채 다람쥐를 비롯한 들짐승들의 코와 눈을 유혹하고 있다. 떨어진 알밤이 들짐승들의 선택에 의해 숨겨져 새롭게 싹을 틔워야 다음세대를 기약할수 있는 밤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의 손길은 그다지 반갑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붉게 물들어가는 감의 모습도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하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로 대표되는 가을을 주제로 한 시들을 읽어보면 가을은 사람의 삶 속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랑 속에 자라고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거쳐 청년 시절부터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뒤 인생의 가을이 오면 비로소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주위를 살피기도 하는 눈이 열리게 된다. 이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은 겨울이라는 노후준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동안의 삶을 다음세대를 위한 교과서로 쓰임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한 것에 대한 리뷰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밑거름으로 사용하게 하고 잘못한 것에 대한 반성을 통해 다음세대가 격을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다음세대를 위한 준비를 어떤 이는 글로써 남기는 역할을 하고 또 다른 이는 다음세대 와 어울림 속에 직접 전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어릴 적 기억속의 아버님은 인자하심 속에서도 엄격히 지켜온 원칙이 있었다. 자녀들에게 말로써 설명해 주시기보다 몸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밤송이를 까서 알밤을 얻는 일 이었다. 어린 마음에 손으로 소중하게 밤송이를 벌려 밤을 얻고 싶은데 자꾸만 밤송이의 가시에 찔리기 일쑤였다. 아버지는 밤송이를 발로 누르고 밤나무 가지하나 꺾어서 그것으로 밤을 골라내셨다. 자꾸만 실수 하는 아들에게 가르쳐 주는 유일한 방법은 실수를 지켜보시면서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이 전부였다. 어느 순간 어린 아들이 예쁜 알밤을 손에 넣는 것을 보시면 칭찬대신 고개 돌려 지긋이 미소 짓는 것이 전부였지만 아버지의 그 가르침이 참교육이었음을 이제 와서야 깨닫는다.

이제 내 삶도 가을의 문턱에 서 있다. 
바쁘게 달려온 삶의 순간들을 돌아보며 보낸 3개월의 시간은 뿌듯함보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회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더 좋은 결론에 이를 많은 일들이 그렇지 못한 결과로 머문 것이 너무 많음을 이제야 느끼는 것이다. 치열한 여름을 보낸 40년의 생활을 돌아보며 아쉬움이 남는 선택의 순간들을 돌이켜 볼 때 지금의 나라면 분면 더 나은 선택을 했을 것이란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때의 내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단지 가을이 오지 않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 하겠습니다 

뇌성마비 시인 김준엽의 ‘인생의 가을이 오면’의 시에서 처럼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해야겠다는 것이 인생의 가을을 문턱에 둔 나의 고백이다. 

 

이용록 <홍성군 전 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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