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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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일 없어요”
  • 이명숙 <시간제청소년동반자>
  • 승인 2020.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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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아동센터에 상담 하러가던 날. 마당의 병아리들이 삐약 거리며 한낮의 햇살을 받고 이리저리 질서도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듯 했다. 그 중에 조용하면서도 다정히 앉아 놀이를 즐기고 있던 초등학교 저학년인 두 명의 여자 친구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한 명은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댁에서, 또 한 명은 다문화가정의 세 자매 중 첫째 아이인데 두 친구 모두 어찌나 천사 같고 예쁘던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한 아이는 앉아 있는 내 등 뒤에서 목덜미를 잡고 매달리며 떨어지지 않으려하고 반면에 또 한 아이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는 말도 안하고 수줍어서 책상 밑으로 숨어들어가 나오려 하지 않는다. 

간신히 끌어내놓으면 또 다시 기어들어가 숨기를 반복하다 보면 그것이 하나의 놀이가 된다. 그러면서 세월은 흘러 흘러 어느덧 그 아이들은 중학생이 됐다며 교복 입은 모습으로 찾아와서 나란히 인사를 한다. 얼굴엔 여드름이 이곳저곳에서 자리 잡고 있었고 부쩍 성숙함과 의젓함에 대견스럽고 반가워 끌어 안아보았다. 

반갑기는 해도 오랜만이라서 서먹해 말을 안 하려나 싶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하는 말이 “아뇨”, “글쎄요”, “몰라요”, “그냥요”… 몇 마디 단어가 전부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특별히 할 말은 없어도 지나다 혹은 차 시간이 남아서라며 찾아오고는 하는 걸보면 고맙다. 그 큰 눈망울을 마주하며 서로 표현은 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마음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종종 늦은 밤에 문자도 하면서 이것이 인연이 돼 작년에는 또래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 해 동생도 상담했었다. 다문화 가정이지만 부모님이 열심히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에는 가끔씩 가족과 인근에 나들이도 가고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엄마와 세 자매의 모습에서 세상 힘든 요즘에 밝은 미래를 보는 듯해 뿌듯해진다. 한국말이 서툰 엄마는 연신 “고맙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런데 늘 함께 오던 조부모님과 함께 사는 한 친구는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아 안부를 물어보니 학기 초에 결석하는 날이 가끔 있더니 갈수록 종종 자주 결석을 하더란다. 제일 친한 친구인데도 이유를 모르고 연락도 잘 안되더니 결국 집에서 나오지 않고 게임만 하는 것 같다고 한다. 
언젠가 할머니와 옷 사고 점심 먹으러 나왔다며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의 인자하면서 다정하고 선한 모습을 보았는데 요즘 무척이나 힘들고 걱정하실 것에 마음이 쓰인다.

센터에 함께 다니던 친했던 동네 오빠한데도 근황을 물어 보았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물론 내 전화와 문자도 돌아오지 않고 있어 친구한테 집에 함께 방문하기를 부탁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미뤄 둔다는 것이 너무 오랫동안 무심했단 생각에 자책도 해 본다. 

상담은 그런가보다. 한 번에 큰 변화보다는 곁에서 믿음을 주고 지켜보며 늘 그 자리에서 기다려 주다보면 어쩌다 찾아가는 고향처럼 그곳에 위로가 될 수 있는 신뢰나무가 버팀목이 되어 홀로설수 있는 힘이 생기나보다.

좋은 일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은 답답한 요즘, 그래도 고개 들어 높고 파란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자!

 

이명숙 <시간제청소년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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