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춘 할머니 〈희망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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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춘 할머니 〈희망의 꽃〉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0.11.1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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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이야기그림 〈15〉

 

안기춘 할머니가 그림을 그려오셨습니다. ‘잘 그릴 수 있을지 한 번 그려 본 거’라고 하셨습니다. ‘충분히 잘 하실 수 있다.’ 고 말씀드리니 ‘그래요?’ 하고 좋아하십니다. 화분에 심은 꽃나무를 그리셨는데 나뭇가지가 뻗은 모양이나 꽃모양이 시원시원 하였습니다. 안기춘 할머니 머리에는 나비도 한 마리 앉아 있었습니다. 하얀 머리카락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사세요?’ 하고 여쭈어 보니 ‘문당리요’ 하고 짧게 대답하십니다. 문당리인 것이 맞기는 한데 뭔가 좀 이상하기도 합니다. ‘같이 사시는 분이 아드님이세요? 따님이세요?’ 하고 또 여쭈어 보았습니다. 농사 일 하시는 분 같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요!’ 하고 또 짧게 대답하셨습니다.

‘대전에서 전도사 하다가 퇴직하고 여기로 왔어요. 온 지 10년 됐네요.’ 이제야 ‘문당리요’라고 짧게 대답하신 사정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홍동에서 오래 사신 게 아니기 때문에 속속들이 모르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을 그리게 되어 기쁘다고도 하십니다. TV 연속극을 보다가 그림 그리는 장면이 나와 ‘그림을 그리고 싶다’ 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꿈이 현실이 되어 나타날 줄은 미처 몰랐다고 감격해 하셨습니다.

‘그림 그리는 할머니도 많아요. 열심히 해 보세요.’ 하고 말씀드리니 ‘그런가요? 어제 보여주신 할머니들 그림을 보고 용기가 났어요.’ 하고 또 밝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특히 어르신들은 그림을 그린다 하면 막막해 하셔서 다른 마을 어르신들이 그린 것을 보여드렸던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게 되셨다니 그 보다 더 고마울 순 없었습니다. 오히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될 수도 있는데 용기를 갖게 되셨다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보통 어르신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망이 생겼어요. 나도 잘 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는 말씀도 보통 할머니는 하지 않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이의 언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희망’이라는 소리가 안기춘 할머니에게서 나올 때 파랑 보석이 내 가슴에 박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를 푸른 빛깔로 물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어르신들을 오랜 만에 뵙게 되어 서먹한 감정이 사리지고 와락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희망이란 말은 하는 쪽이나 듣는 쪽 모두에게 희망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전만성 <미술작가, 수필가, 미술인문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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