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과 이벤트 쇼
상태바
보리밭과 이벤트 쇼
  • 김주호 <한국스카우트 충남연맹 이사>
  • 승인 2020.12.24 09: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만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맹방의 국가원수가 국빈방문을 했으니 의전에 각별히 신경을 썼음은 물론이고 생동감 있는 생생한 환경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엄동설한이라 딱히 보여줄 것이 마땅치 않아 고민하던 중 참모의 제안으로 싱싱한 보리를 밭에서 떠다가 경무대 앞뜰에 심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조치했다. 

이 일에 들어간 비용은 당시 50만 원쯤 될 것으로 추정된다. 아까운 낭비라는 생각도 들지만 맹방의 원수를 위해 그 정도는 봐줄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동탄신도시 아파트를 방문한 대통령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 쓴 돈이 자그마치 4억 5000만 원이라니 말문이 턱 막힌다. 더구나 13평 아파트에 4인 가족도 살 수 있다며 파안대소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바라보며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사마천의 사기에 이런 얘기가 있다 중국 한(漢)나라 5대 황제 문제(文帝)는 근검절약의 대명사로 청사에 꼽히고 있다. 대궐 안에 있는 허름한 초가집 한 채에서 정무를 보는데 신하들이 편전으로 옮기라고 권해도 듣지 않자 집을 수리하겠다고 진언했다. 그러자 그럴 돈이 있으면 호미 한 자루라도 더 만들어 백성들에게 주라고 지시했다(당시는 철제 농기구가 귀했음). 어느 날 호랑이 우리를 시찰할 때 관리인이 묻는 말에 조리 있게 대답을 잘하자 그 사람을 특진시키려고 했다. 그러자 청렴결백으로 명망이 높은 장석지(張釋之)가 공직자들이 저 관리인처럼 말재주나 부리고 떠들어대란 말이냐(첩첩이구, 喋喋利口)고 반문하자 특진 명을 거뒀다. 

문제의 아들 경제(景帝)는 모친 두(竇)태후가 대장군으로 황실에 공이 많은 친정조카 두영을 재상으로 추천하자 두영이 공을 세웠다고 우쭐대고 생색만 낸다는 이유로 단호히 거부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제와 경제는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고, 옳은 말 그른 말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성군 밑의 신하들은 백성을 위해 옳은 말만 하게 되고 나라가 발전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으니 이 부자(父子) 재임 40여년을 ‘문경지치(文景之治)’해 후세 사가들의 칭송을 받음은 물론 전한(前漢)왕조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문제와 경제는 우리의 세종과 정조대왕에 비견되는 인물인데 민주화가 됐다는 오늘의 우리나라는 어떤가!

몇몇 위정자는 언필칭 자기가 개혁군주 정조와 닮은꼴이라고 자화자찬하는데, 국민들과 후세의 사가들이 판단해야 할 몫을 스스로 판단하고 굴원이 제 몸 추는 격이다. 
1200억 원을 낭비하며 K방역을 홍보하면서 정작 백신확보는 불투명하다 자숙하고 근신해야 할 사람들이 첩첩이구로 설쳐대고 제 한 몸 안위만을 생각하는데 위정자들은 이게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식견이 부족한데다 참모들은 그저 문비어천가를 불러대고 ‘지당하신 분부 인줄로 아뢰오’하고 있으니 그 밥에 그 나물로 나라 발전을 기대하기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이게 어디 제대로 된 나라인가! 그야말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무제한으로 경험하고 있으니 만약 김삿갓 선생이 다시 환생한다면 ‘오호 통재라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쩌다 나라꼴이 이 지경이 됐단 말인가 백성을 괴롭히는 못된 관리들 모조리 쫓아내라!’ 이렇게 일갈했을 것이다.

 

김주호 <한국스카우트 충남연맹 이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