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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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 송경섭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2.2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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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우리 집은 마을에서 가장 가난했다. 혼자되신 어머니가 중풍으로 누워계신 할아버지와 우리 어린 사남매를 돌보시기엔 너무 힘겨웠다. 사람들은 나를 키 작은 목사라고 부른다. 우리 두 형들은 그런 나보다도 더 키가 작았다. 그런데도 형들은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서울로 돈을 벌기위해 올라가야했다. 어리고 조그만 형들이 서울로 일하러 떠나던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여동생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감기가 깊어져 폐렴으로 병원 치료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축 늘어진 동생을 업고 대전 병원을 전전하다 집에 들어오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동생이 하늘나라로 떠나던 날, 서럽게 우시던 우리 어머니와 함께 통곡하며 눈물 흘리시던 마을 아주머니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내가 대학까지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와 형들의 전적인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삼 형제가 모두 가정을 이뤘을 때 아버지의 유산을 삼형제가 균등하게 분배하자고 큰 형이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내 몫을 포기하고 큰 형에게 모두 돌려드렸다. 큰 형은 20대 초반을 중동 근로자로 고생하면서 우리 가족을 돌봤다. 그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중학생 때였다. 어느 여름날 저녁에 면장님이 찾아오셨다. 내가 집에서 전혀 공부를 하지 않고 방황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찾아오신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꿈을 가지고 공부에 집중해보라고 권면해주셨다. 그러면서 농협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추천해주셨다.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모른다. 그때 ‘나도 저 면장님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보고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라고 결심했다.

가정 형편상 장학금을 주는 학교를 찾아서 들어갔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수험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얼마나 큰 은혜고 혜택이었는지 모른다. 그때 ‘내가 받은 장학금을 잊지 않고 우리 사회에 꼭 환원할 것이다’라고 결심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은혜를 갚지 못하고 있다.    

십여 년 전에 기독교 신자가 아니지만 십일조 생활을 하신다는 분을 만난 적이 있었다. 매년 자기 수입의 십분의 일을 기부하시는 것이었다. 10여 개의 봉사단체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고 계셨다. 필자가 예산에서 목회할 때였다. 당시 담임하던 교회 사회봉사부 임원들을 모시고 그분을 찾아갔다. 같이 점심식사를 하면서 그분의 기부봉사활동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교회에 기부봉사단을 만들었다. 매월 1만원 기부운동 캠페인을 몇 주간 이어갔다. 그랬더니 약 30~40여 분이 동참해주셨다. 그달에 모여진 기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서 현금 또는 필요한 물품을 기부하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대체로 매월 40~50만 원정도 모였다. 기부대상에 대한 공감이 컸던 때는 100여 만 원이 모금될 때도 있었다.

가능한 한 그달에 모인 기금은 그달에 기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구제와 나눔은 미루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미루다보면 안 하게 되고 못하게 된다. 기부 안 할 이유가 만 가지도 더 된다. 그래서 매달 집행 원칙은 대단히 중요하다. 갑작스레 화재나 재난을 당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이나 장애우, 부모님이 안 계시거나 어려운 청소년, 외국인 근로자 등을 도왔다. 현금으로 드리기도 하고, 연탄을 사드리기도 하고, 교복이나 내복을 사드리기도 하고,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전해드리기도 했다.

홍성 결성으로 이임해 와서도 기부봉사단을 계속하고 있다. 단장과 총무를 선임하고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조직을 갖췄다. 기부통장도 개설했다. 매월 1만 원 기부운동에 기쁜 마음으로 교우들이 동참해주신다. 매월 운영위원회에서 기부 대상자를 선정해 기부금(품)을 전달한다. 분기별로 열리는 교회 임원회에서는 단장이 지출내역을 자세히 보고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서로를 돌아보는 마음이라고 믿는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이 가장 큰 위로요 격려일 것이다. 

우리 지역 면장님을 모시고 평화기도회를 개최했을 때, 내게 물으셨다. “이 교회에서는 어떤 봉사활동을 하시나요?” “아직 봉사를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 부끄러웠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데, 그 은혜와 복을 내게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축복의 통로가 되어, 나도 누군가에게 복이 되는 사람이 돼야 마땅하다.

이제 기부봉사단을 통해 나눔과 봉사가 우리의 의무가 됐다. 이제 누가 어려움을 겪고 계신지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게 됐다. 그리고 기쁘게 찾아갈 수 있게 됐다. 물론 지금은 나라가 복지를 책임지는 시대이다. 우리의 나눔은 많이 초라하고 부끄러운 수준이다. 그러나 작은 정성이지만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지 않은가? 따뜻하게 손잡아주는 이웃이 있어 살 만하지 않겠는가?

 

송경섭 <결성감리교회 목사·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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