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의 역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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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의 역할은?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2.04.19 11:2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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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방송 프로그램이나 정치권 등에서 소위 멘토들의 역할이 활발하다.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소설가, 교수, 시인, 가수 등 12명이 총선 멘토단으로 등장하여 젊은이들의 선거를 독려했다. ‘위대한 탄생2’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멘토들은 신인들을 문하생으로 받아들여 잘못된 점이나 미숙한 점을 지적하고 그들의 가창(歌唱)능력을 향상시켜준다. 일부 대기업 직원들은 대학생들과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맺어 취업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대학에서는 신입생들을 위한 멘토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라 화창한 봄날 분주하다. 이와 유사한 멘토들이 우리사회 신출내기들의 삶을 이끌고 있다.

고대 그리스 이타이카 왕국의 오디세이가 사랑하는 아들 텔레마코스를 가장 믿을 만한 친구에게 맡기고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게 되는데, 전쟁이 끝나고 세월이 흐른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옛 친구는 자신의 아들을 훌륭하게 성장시켜 놓았다. 오디세이가 전쟁터로 떠나면서 아들을 맡겼던 친구의 이름이 멘토(Mentor)다.

우리 사회에서 멘토의 의미는 세상경험이 일천한 젊은 세대의 상담자, 또는 조언자라고 할 수 있다. 또는 에베레스트와 같은 높은 산을 올라갈 때 짐을 날라다 주기도 하고 위험을 알려주는 셀파처럼, 훌륭한 안내자인 동시에 동반자라고 확대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셀파의 경험은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할 것이고, 일상에서도 셀파와 같은 사람이 옆에 있어준다면 수월한 삶을 살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우리사회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가라’ 보다는 멘토들이 늘 따라 붙어 안전한 ‘항해’를 재촉한다.

왜 조언자와 안내자가 예전보다 더 옆에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 근원에는 우리 사회의 극단적 무한 경쟁체제가 있다고 보여 진다.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가수 한명이 꼭 탈락해야 하는 게임은 출연진 모두를 불안하게 만든다. 지금은 승자지만 언젠가는 게임에서 탈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게임이 유쾌할 수가 없다. 경쟁의 탈락자일 수도 있는 방청객과 시청자들은 누군가가 떨어지는 일에 점수를 주어 동참하기도 한다. 이러한 오디션 음악프로그램과 같은 작동방식이 현대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운영방식이다.

경쟁 없는 사회가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꼭 탈락해야 한다는 운명은 삶을 우울하게 만든다. 9개의 의자에 10명이 걸터앉는 방식은 불편하고, 불가능한 것일까? 개개인의 불안이 내재화 될 때 우울증으로 발전될 것이고, 이것이 밖으로 드러날 때 사회적 폭력이 될 것이다. 정치가 이러한 사회적 불행의 고리를 경감시키거나 단절해 주어야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갖지 못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사회에 필요 없는 ‘잉여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독일의 유태계 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의 개념이기도 하지만, 이 사회 어디에도 소속하고 있지 못한 나는 의미 없는 존재이며 내가 하는 일상행위를 소위 별 볼일 없는 ‘삽질’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행위가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직장을 찾기가 예전에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더 어려워 보이며, 직장을 구한다 하더라도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많고, 정규직이라 할지라도 정년퇴직은 쉬워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어느 대기업 총수의 말처럼 마누라 빼고 다 바꿔야 생존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이것이 이익으로 돌아 올 때 사회가 제대로 굴러 갈수 있는 체제다. 하이예크(1899-1992)를 따르는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체제로서 시장 근본주의가 우리의 사회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으며, 자유경쟁주의가 법의 지배아래 적절히 보장된다면, 시장원리를 충실히 따른다면, 국부(國富)가 무한히 증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쟁체제에서 탈락은 곧 루저(looser)가 될 수 있으니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옆에 믿을만한 멘토가 있어야 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멘토마저 신중하지 못하고 경쟁의 분위기를 가속화 시킨다면 이 사회의 미래는 더욱 각박한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짜증나는 사회는 막말과 폭력으로 그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길을 가다 살짝만 부딪혀도 상대방을 잡아먹을 듯이 쳐다본다.

경쟁이 가속화 되고 멘토들의 역할이 분주한 이 시대, 멘토들은 멘티에게 무슨 철학으로 어떤 조언을 해야 할지 고뇌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의 인생을 안내하는 멘토의 신중함이 요청된다. 순자(荀子)는 “묻지도 않았는데 남에게 알려주는 것은 경솔함이고, 하나를 물었는데 둘을 알려 주는 것은 수다스러움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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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 2012-05-10 16:25:48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해박하고 교훈을 주는 글입니다.
좋은 글에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홍민정 2012-04-27 00:04:46
20년전쯤 직장에서 멘토를 찾으라고 했다. 생소했던 단어 멘토와 멘티 그랬다. 직장에서 시키면 더욱더 싫듯이...허지만 멘토를 보면서 멘토의 조언을 참 많이 받아들였다. 며칠전에 그 멘토를 만나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멘토의 삶을 보면서 참 많은것을 배우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나에게 긴장감을 주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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