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고통을 다시보자
상태바
홍고통을 다시보자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5.13 08: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고통은 여전히 홍고통이다. 홍성읍내 중심부에서 홍성고등학교에 이르는 약 300미터의 길을 홍고통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홍성고등학교가 내포신도시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홍성여자고등학교가 들어섰는데, 홍성여자고등학교는 홍여고라 칭하므로 이를 ‘홍여고통’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더 줄이면 ‘홍고통’이 되기에 역시 홍고통은 여전한 셈이다. 

홍성고등학교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주민들의 뜻과 염원을 모아 1941년 홍성 최고의 명당자리에 지어졌는데, 당시 6년제 홍성공립중학교로 시작돼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홍성고등학교로 설립 인가됐다. 1943년에 지어진 강당은 현재 국가등록문화재 제272호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1만 7000여 평에 이르는 광활한 대지에 축구장, 농구장, 배구장, 정구장, 체육관 등 없는 시설이 없을 정도였고, 드넓은 운동장은 교련시간의 총검술이나 제식 훈련, 각종 선착순 달리기, 또한 전교생 2000여 명이 나와서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듣기에도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학교입구 플라타나스 가로수길은 봄이 되면 신록으로, 가을이면 아름다운 낙엽으로 변신했으며, 학교 옆 교동에는 홍주유림의 정신적 지주인 홍주향교가, 900 의사의 영혼이 잠들어있는 의사총은 간동에 위치해 있었다.

웅장한 플라타나스 길을 내려오면 케첩과 설탕을 넉넉히 발라주던 주황색 천막의 핫도그집이 있었고, 광경교 밑에는 복성슈퍼마켓이 있었다. 그쪽 길로 가면 일자 교복단을 쫄쫄이로 잘 수선해 주던 양복집을 지나 터미널로 갈 수 있었는데 그곳을 홍고통이라 부르지는 않았다.

광경교에서 직선으로 내려와 명동거리로 빠지는 길, 이곳이 정식 홍고통이었다. 이곳은 학생들이 항상 가득했던 젊음의 거리이자 문화의 거리였다. 길옆으로 다양한 가게와 문구점 분식집이 있었고, 중간쯤에 있던 성결교회 주변에도 분식집을 포함한 아기자기한 상점이 많았다.
 
또한, 터미널 옆 2층에는 약속레스토랑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주변에는 카메라를 빌려주던 집도 있었는데, 학생들은 주로 36방짜리 필름이 담긴 삼성 미놀타나 야시카를 빌려서 수학여행, 소풍을 다녀왔다. 그 맞은편에는 서점이 있었고, 명동쪽으로 가는 길에는 귀빈다방을 비롯한 여러 다방에서 아침마다 노른자 동동 띄운 쌍화차를 팔곤 했다. 

신청곡을 틀어주던 지하 코아다방 위쪽에는 동보극장이 있었고 맞은편에는 삼일주유소가 성업하고 있었다. 매일시장 앞의 당구장은 남자들이 늘 북적였고, 주변의 간이주점에서는 야간자습을 빼먹고 술 마시는 학생들과 이들을 잡으러 다니는 선생님들의 숙명적 만남이 이뤄지기도 했다.

명동 중심길에는 공간사랑, 미네르바 같은 공간이 인기가 많았고, 풍미당에서는 교복입은 고등학생들이 미팅을 하면서 단팥빵과 슈크림빵을 먹었으며, 맞은편 고모네 칼국수집은 일반인, 학생 할 것 없이 늘 사람들로 넘쳐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최근 1년 동안 홍성읍의 인구가 700명이나 줄었다. 전 국가적 인구감소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내포신도시로 인한 일시적 공동화일 뿐이라고 애써서 위로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 원도심 공동화 우려가 나온 지가 십년이 훨씬 넘었다. 지금은 홍성읍이 홍성읍민의 외면을 받고 있다고 봐야 한다. 

최근 홍성군에서는 홍성군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지역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직접 군민들에게 듣겠다는 자세는 칭찬할 만하다. 다만, 지역 정서에 기반하지도 않은 획일적인 계획보다, 홍성지역주민들의 사소한 의견, 홍성에 정착해 여생을 보내려 하는 귀농인들의 자그마한 생각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기회에 서로의 마음을 모아 반드시 원도심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차제에 과거의 즐겁고 행복한 추억과 감성이 아직 살아있는 ‘홍고통’을 활용한 여러 아이디어와 프로젝트가 쏟아지길 기대하며, 홍성에서 유년, 학창시절을 보낸 지금의 중장년층의 호응과 소통을 이끌어 낼 다양한 문화적 장치들이 곳곳에 마련되길 희망한다. 

전주 한옥마을, 부산 감천 문화마을은 접어 두더라도, 이태원의 경리단길, 경주의 황리단길. 인천, 군산, 진해, 대구, 목포의 근대문화거리 등 지역의 역사와 특색을 잘 활용해 성공한 예는 얼마든지 많으며, 특히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정차하는 태백시 철암의 역사문화거리는 시간을 거꾸로 돌린 훌륭한 예로 꼽힌다.

사실 홍고통, 명동골목, 큰시장, 매일시장은 거의 다 연결돼있는 한 덩어리다. 이 덩어리를 경제, 생활, 문화로 잘 묶고, 과거 홍주의 영광을 재현하는 홍주읍성을 조속 복원하며, 홍성천을 휴식이 있는 생태 생활하천으로 재생시킨다면, 비록 군청이 홍성천 위쪽으로 옮겨간다 하더라도 홍성읍은 여전히 생기가 넘치는 홍성의 중심지로 남을 것이다.

 

조남민 <홍성문화원 사무국장·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