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Yes)’만 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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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Yes)’만 하는 아이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5.2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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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그럴 땐 얘기를 나누자/거울 속의 나하고/웃어라 캔디야 들장미 소녀야/울면 바보다 들장미 소녀야 <들장미 소녀 캔디의 노래가사>

L양은 매우 똑똑한 여대생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교육으로 이뤄지는 수업이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고, 수업 시간마다 열심히 수강하고 과제와 시험을 적극적으로 이행하는 성실한 학생이다. 몇 개월 전부터 부모님의 직업 때문에 물리적 거리를 둔 채 세 명의 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본의 아니게 가장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L양은 부모님의 유학시절에 태어났다. 이후 동생들이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공부는 끝나지 않았고, 더구나 직업활동을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따뜻한 돌봄을 받기 어려웠다. 그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L양은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돌봐야 했고, 한 명의 동생이 울면, 연이어 다른 동생들도 서럽게 울어서 난처한 상황이 많았다. 본인도 울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울 수가 없었던 어린 시절의 그 기억들은 언제나 버거운 힘듦이었다. 

한 예로 L양이 초등학생 때 부모님께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외국에서의 힘든 생활이 생각 나 아찔했다. 하지만 ‘미국은 12세 미만(초 6학년) 아동이 있을 경우 보호자는 아이를 홀로 집에 남겨두고 외출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너무 기뻐서 미국으로 이민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 적도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한 L양은 대학생이 될 때까지 부모님이나 지인들의 요구에 ‘아니오’를 해본 적이 없었다. L양은 너무 상황에 치여 한 번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스러움이 남아 ‘아니오(NO)’를 해보기로 마음먹은 어느 날, 아버지는 한 가지 일을 부탁하셨다. 용기를 내어 거절했다. 그러자 “너의 마음은 알겠지만, 네가 해주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잖아….”라고 하시며 L양을 설득하셨다. 결국 L양은 아버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그 일을 처리했던 기억이 지금도 마음 한  켠에 씁쓸함으로 남아 있다. 

교류분석을 제창한 에릭 번(Eric Berne, 1964)은 인간은 타인들이 자신을 알아봐주면 좋겠다는 인정 욕구로 인해 상대방에게 신호를 보내는데 이런 행위를 스트로크(stroke) 라고 정의했다. 스트로크는 언어적 스트로크와 비언어적 스트로크(몸짓, 표정), 긍정적 스트로크와 부정적 스트로크, 무(無) 스트로크, 그리고 조건적 스트로크와 무조건적 스트로크로 구분했다. 
긍정적 스트로크는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며 건전한 정서를 갖게 하지만, 부정적 스트로크는 상대방에게 비난과 분노 등 부정성을 유발시키는 자극으로 표현되며, 무(無) 스트로크(No stroke)는 혼자 있거나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회피하는 특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일을 참 잘 처리 했어’와 같이 상대방의 행위에 반응하는 조건적 스트로크와 ‘난 당신이 좋아’와 같이 아무 조건 없이 존재 그 자체에 반응하는 무조건적 스트로크로 나눌 수 있다. 
L양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욕구를 비롯해 좋고 싫음의 목소리를 듣고 표현하는 능력이 개발되지 못했다. 이는 부모의 기대와 요구에 부합하는 행동과 말을 할 때에만 부모님으로부터 긍정적이고 조건적 스트로크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대학생이 된 지금도 타인의 눈치를 보고, 타인이 하는 말에 집중하며, 타인의 요구에 순응하며, 갈등 상황을 피하며 살아가게 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L양은 말한다. “저는 사람이 많은 곳은 싫어해요. 그래서 불을 끄고 자거나 혼자 있는 곳을 찾아서 쉬는 편이예요. 왜냐하면 사람이 많은 곳은 주변에 신경을 써야 하고, 제가 해야 할 일을 못할 수 있으니까요.”

L양은 슬퍼도 참고, 힘들어도 웃고, 쓸쓸해도 자신을 다독이는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삶을 살아왔다. 그래야 자신을 돌봐주는 부모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담자는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나 가정, 그리고 주변인들로부터 항상 인정을 받았던, 인정을 받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L양의 삶을 다독였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지 않고 살아가는 L양에게 부모에 대한 숨겨진 분노를 조금씩 표현하도록 권유했다. L양이 그동안 쌓인 분노를 부모님에게 표현할지라도 일반인들이 표현하는 그 분노의 정도에 비하면 매우 미미할 것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줄 아는 건강한 성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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