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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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이야기
  • 송경섭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6.2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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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 가정도, 집도, 통장도, 핸드폰도, 지갑도, 쌀도, 밥솥도 없이 거리에서 사시는 50대 남성분이 계신다는 소식을 지난 4월에 전해들었다. 추운 겨울에는 공중화장실에서 밤을 지냈단다. 동파를 방지하는 히터가 있기 때문이다. 그분이 묶고 있는 비닐하우스를 찾아가봤다. 채소 재배를 위한 비닐하우스였기 때문에 퇴비거름 가스를 배출하려고 하우스 옆구리가 걷어져 있었다. 외부 바람이 관통하고 있어서 내가 방문했던 지난 4월의 밤은 몹시 추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비닐하우스 밭고랑에 은박지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이불 두 채가 놓여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이분을 만나서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물어봤다. 주로 묻는 말에 답을 해주셨는데, 가정사와 이곳에 오시게 된 이야기 등을 들려주셨다. 몸에 전혀 맞지 않게 너무 큰, 긴 티셔츠와 걷어 올린 바지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담담하고 평안하게 답해주셨다. 겉모습과는 달리 절대 무소유의 수도자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안해보여서 나도 마음이 편해졌다.

어떻게 밥은 먹고 사는지를 물어보았다. 농사철에는 주로 마을농가에 일을 다니는데 그 집에서 밥을 챙겨주셔서 잘 먹고 있단다.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는다고 했다. 돈이 생겼을 때는 식당을 이용하기도 한단다. 안타까운 것은 이분이 돈을 관리하질 못한다. 계획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숫자 관념이 없으시다. 공부를 한 적도, 배운 적도 없다. 그러니 일도 없고 돈도 떨어지면 거리를 배회할 수밖에 없다. 굶지 않으려면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걸식을 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굶지 않고 지내왔단다.

매월 만 원 기부운동을 펼치는 교회 기부봉사단에서 가까운 곳에 이분이 묵을 수 있도록 아주 저렴한 방을 얻어 드렸다. 허름하지만 이제 방은 해결됐다. 그런데 이분이 직접 취사는 못하신단다. 간단한 컵라면 정도가 가능할 뿐이다. 그래서 기부봉사단에서는 이분을 위한 냉장고를 교회에 설치하기로 했다.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언제든지 냉장고로 와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도움을 요청하시도록 말씀드렸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서 우선 컵라면을 드실 수 있도록 준비해놨다. 빵과 음료수도 항상 준비해놓기로 했다. 더불어서 생필품과 입을만한 헌 옷도 기증을 받아서 냉장고 옆에 선반과 옷장에 비치해놨다. 

마침 그즈음에 홍성에서는 공유냉장고 제1, 2호점이 막 개점했다. 공유냉장고의 취지에 부합할 것 같고, 좀 더 발전된 나눔을 위해서 ‘홍성 공유냉장고’에 지점 신청을 했다. 교회가 선한 일을 위해서 시민사회단체에게 배우고 연대한다는 데에 의미가 크다. ‘홍성공유냉장고’를 운영하는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에서 심사와 현장 방문을 마친 후에 지점 신청을 받아주셨다. 이제 개점을 앞두고 있다.

요즈음 우리 마을의 그 남성분은 멀리서도 내게 오랫동안 손을 흔들어주신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주신다. 지난번에는 동네 논둑에서 일하면서 한참을 걸어서 쫓아 나오면서 지나가는 내게 반가움을 표시해주셨다. 이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칭찬을 들었는지 모른다. 너무 송구스러웠다. 

한 사람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의 변화는 한 사람의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그래서 한 사람의 변화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라고 믿게 됐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앞에 있는 바로 그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을 위해 마을이 힘을 합쳐서 도우면 그 한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치유가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본다.

이 소식을 듣고 여러 기자 분들이 방문하셔서 보도를 해주셨다. 사실 부끄럽고 민망했다. 너무 작은 일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하셨는데 난감했다. 그러나 송구스러울 만큼 작은 일이지만, 우리가 선의로 시작했다면 자랑이 아니라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지길 위해서 함께 고민하고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앞선 봉사의 노하우를 배우면 조금씩 발전된 봉사를 우리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 사회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시민단체들에게 배우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냉장고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한 분을 위한 냉장고가 이제는 지역을 위한 냉장고로 확대됐다. 공유냉장고를 통해서 일방적 베풂이 아니라 평등한 나눔이 됐다. 누구나 냉장고에 음식물을 넣을 수 있고 누구나 가져다 먹을 수 있다. 이 냉장고로 작은 우리 마을이 사랑의 공동체로 세워져 가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 작은 마을을 하나 되게 하고, 마을 사람들을 서로 사랑하게 만드는 냉장고의 마법이 이제부터 시작되길 기대해 본다.

 

송경섭 <결성감리교회 목사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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