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형성이 진로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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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형성이 진로에 미치는 영향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7.0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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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의 결과는 일상에서부터 평생에 영향을 미친다. 그 중 능력과 적성에 맞는 직업 선택은 삶의 목표와 자아실현을 위해 중요한 선택 중 하나이다. 

C는 고등학교 남학생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이뤄지면서 새벽까지 스마트폰으로 게임 유튜브를 시청한다. 해가 중천에 떠서야 눈을 비비며 일어난 후 학교 수업은 듣지 않고,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며 PC방으로 향한다. C의 부모는 등교를 거부하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서도 프로게이머 입단 심사를 위해 노력하는 C의 행동을 안쓰러움과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보지만 혼란스럽다. 

C는 만3세 때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조부모와 함께 생활했다. 어린 시절부터 조부모는 “너도 큰아버지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꼭 검사가 돼야 해”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내성적이고 순종적인 C는 조부모의 말을 반복해 들으면서 유능한 검사의 꿈을 꾸며 열심히 노력했다.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학교와 학원 등을 오가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친구 관계도 원만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 성적은 떨어졌고, 그때마다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워 자책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반복된 가족들의 부정적 평가와 사촌들과의 비교는 C에게 우울감을 가중시켰고, 잦은 학업 실패에 따른 무기력함은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 어린 아이처럼 우는 것으로 소통하려 했다. 

심리학자 존 보울비(John Bowlby, 1973)는 애착이론을 통해, 어린 시절 양육자와 자녀 간의 정서적 유대관계는 이후 관계 도식의 기반이 돼 현재와 미래의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한다. 초기 애착관계를 통해 형성된 내적 실행모델(internal working model)은 진로 선택과정에 영향을 미치며, 진로와 관련한 학습 경험의 템플릿으로 사용하면서 진로 및 직업세계에 접근 혹은 회피하는 행동을 한다고 봤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녀 간 안정된 애착은 현재의 진로 선택과 진로 탐색, 그리고 진로 의사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불안정한 애착은 역기능적 진로 사고와 진로 미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C는 열심히 공부해서 유명한 대학에 입학하고, 큰아버지처럼 집안의 자랑스러운 검사가 되고 싶었다. 어른들의 요구에 순응하면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스트레스는 급증했고, 급기야 우울증 약을 복용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게임하는 시간은 늘었고, ‘리그오브레전드’라는 게임을 통해 친구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면서 게임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결국 C에게 프로게이머는 안전하지 않은 가족을 대신해 영웅으로 대접해주는 친구들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고,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에 대한 인지적 왜곡을 초래함으로써 낮은 자존감과 자아정체감을 갖게 한 요인이 됐다.

진로(進路)는 ‘앞으로 나아갈 길’이다. 직업 선택, 임금과 관련된 일(work, job)을 찾는 협의적 의미와 일생 동안 자신이 살아갈 길을 찾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에 상담자는 C가 자신의 직업 흥미와 가치, 적성을 탐색하도록 격려함으로써 가족의 성취 압력과 기대로부터 자신의 진로 목표를 분리할 수 있도록 지지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 C가 부모에게 자신의 의견을 적절히 표현하고 주장할 수 있도록 돕고, 가족의 성취 압력으로부터 생긴 두려움과 인정욕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고, 위로하며, 받아들이는 자기 자비(self-compassion) 능력을 함양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관계 중심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한국 사회는 부모의 기대와 관여, 그리고 성취에 대한 압력이 자녀들의 진로 선택 시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가족이 일평생 자녀들의 삶을 선택해줄 수도 없고, 책임질 수도 없다. 자녀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봐주는 부모의 마음 창문이 매우 필요한 시대이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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