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시가(詩歌) 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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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시가(詩歌) 외우기
  • 김종성 충청남도교육감
  • 승인 2012.05.1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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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TV에 ‘도전 1000곡’ 등 유행한 노래에 대한 경연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음정이나 박자는 채점기준이 아니고 가사의 내용만이 평가척도다. 가사가 잘못 전달될 때는 여지없이 경고등이 켜지거나, 쟁반이 내려치곤 한다. 동요나 당시 유행한 노래를 토씨도 틀리지 않게 그대로 부르는 것이 어렵지만 그 자체가 뜻 깊은 일이고 가사에 담긴 내용이 시적(詩的)이다.

초중등학교를 다니면서 현대시와 시조(時調), 고문(古文)을 많이 외웠다. 당시엔 고생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반강제적으로 외우게 하셨던 선생님이 그립고 고맙다. 그 당시 외우지 않았다면 지금 어찌 “나라 말씀이 중국에 달아 문자와 서로 사맛디 아니 할쌔…”,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이런 구절이 자유자재로 생각날 수 있을까? 늘 평생 마음의 자산(資産)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서 충남의 많은 학교들이 전국 최고 향상도를 보였다. 이는 중3 때에 비해 고2에 진급해서 2년 동안 학생들이 어떻게 변화했나를 파악하는 시험이다. 국어에서는 천안의 목천고 학생들이 전국 1위의 향상도를 보였다. 그 때 가장 큰 변화의 요인으로 해석된 것이 교과서의 ‘시 외우기’였다.
 시 외우기를 통해 학생들에게 국어사용능력과 발표력에 대한 자신감도 키우고 아울러 감성교육도 이루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어와 국문학을 사랑하고 살찌우는 일은 나라사랑의 지름길이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소중한 자산을 기리고, 우리말과 글로 이루어진 작품을 천착(穿鑿)하여 더 높은 창작세계를 발현해 내는 것이 국어교육의 이상이다. 이에는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시가를 외우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들은 우리 미래인재의 정신세계를 키워감에 좋은 자료들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대입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것이 프랑스에는 ‘바깔로레아’가 있다. 고교 2년 때나 3년 때에 이 시험을 치르는데 여기에는 우리나라 수능시험처럼 답을 고르는 선택형 문제는 없다. 모두가 논술시험이나 구두시험으로 치러진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어와 불문학에 대한 긍지가 대단하기에, 특히 구두시험은 자국어의 시문학 작품을 많이 외워야 답변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우리 국어교육에 시사해 주는 의미가 크다. 과거 우리네 공부에는 외우기가 많았다. 서당이나 향교에서의 교육도 그랬고, 근래 학교교육도 그랬다. 그만큼 외우기도 잘했다. 여러 교육공학적 기자재 없이 책 한권으로 공부하던 시절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특히 앞을 볼 수 없었던 맹인들은 어려움을 딛고 스스로 노력했기에 더 잘 외우는 능력을 지녔다고 했다. 1등지상주의, 학력중심, 입시위주의 교육패러다임은 바뀌어야 하지만 외우기에서 출발해 언어사용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우리 교육청에서는 창의력 신장을 위한 핵심 교육정책으로 영어교과서 외우기를 추진하고 있다. 단순 암기는 1차학습으로 20%에 해당한다. 나머지 80%는 1차 암기한 내용을 활용해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능력을 신장시키는 2차학습이다. 암기한 내용을 가지고 변형시켜 활용하는 것이 창의력 신장의 기본틀이다. 학생 개인의 능력에 맞추어 몇 개 과(LESSON)를 발췌해 외울 수도 있고 교과서 전체를 외울 학생도 있다. 지난 한해 실시 결과 충남학생의 영어에 대한 자신감과 학력은 수직 상승했다. 대학 다니던 시절 막걸리 한잔을 기울일 때마다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를 낭랑하게 외우던 친구가 있었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그땐 분위기가 차분해지며 숙연한 감상에 젓기도 했다. 그 친구는 언어를 조탁(彫琢)하는 시인이면서 선생님이 되었다. 지금도 친구가 지은 시를 보면 옥구슬 같은 시어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우리 학생들이 교과서에 나오는 운문만큼은 외웠으면 좋겠다. 학생들도 외우기 어렵고, 선생님도 학생들이 외우는 것을 일일이 확인하기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가급적 동아리 활동으로 친구들이 서로 멘토가 되어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좋은 자양분을 축적한 우리 학생들이 우리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며 계승 발전시키는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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