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차이나타운, 140년 역사와 전통의 지역특화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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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140년 역사와 전통의 지역특화특구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1.09.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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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혁신도시, 테마·스토리 입혀야 사람이 몰린다 〈5〉

 새로운 브랜드 도시를 창조하기 위해서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제안하고 혁신적인 도시를 디자인해야 하는 일은 이제 기업만의 일은 아니다.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도시는 그 존재 가치가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충남도청소재지인 홍성과 예산의 내포신도시에 ‘충남내포혁신도시’ 조성을 계기로 사람들이 몰려들 수 있도록 테마와 스토리가 담긴 공동체마을을 조성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를 통해 관광객들과 사람들이 몰리는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 당위성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충남도에서는 내포신도시 초입인 용봉산 자연휴양림 진입로 주변에 전통 한옥마을 조성을 계획하고 있는 등 도시조성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도시에 테마와 스토리 등을 입혀 관광객들이 몰리고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매력 있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충남내포혁신도시와 홍성·예산의 원도심에 대한 도시개발 방안과 발전전략 등을 선진사례를 통해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인천 차이나타운의 중화가 패루(중국식 전통대문).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중국인들 모여 살며 독특한 문화 녹아들어 
도시 특성화, 한국의 상황에서 도시발전을 위한 필수적 요건으로 꼽혀
건축은 도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 비중이 크다는 증거
인천 최대의 상권으로 발전 1만여 명 북적이는 ‘한국의 작은 중국’발전

 

인천은 예로부터 근대사의 여명을 가장 먼저 맞이한 곳으로 대륙의 문물이 한반도에 전해지고, 우리의 문물이 해외로 나가는 관문이었다. 또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그 중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 인천이 동북아 중심도시를 꿈꾸며 갖는 잠재력과 그 가능성은 무한하다. 인천국제공항, 인천항 등을 통한 개방성을 비롯해 중국과 가장 가까운 경제자유구역과 동북아 물류 비즈니스 인프라, 한반도 신성장 동력 중심지 등의 여건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송도유원지를 비롯한 작약도, 월미도, 연안부두, 소래포구 등 뛰어난 해양관광자원과 도시 곳곳의 문화유적이 인천의 매력을 한껏 더해주는 요인이다. 
 

차이나타운 메인 거리 풍경.

특히 인천시 중구에 자리한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중국인들이 모여 살면서 독특한 문화가 녹아든 ‘한국 속의 작은 중국’으로 중국을 보다 가깝게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140여 년 전, 한적했던 자그마한 인천의 한 포구가 새로운 문(門)으로 큰 문이 됐고, 이 문을 통해 새로운 세계의 다양한 문물이 거친 밀물처럼 이 땅에 밀려 들어왔다. 그래서 인천은 수많은 ‘최초의 역사가 된 것’들이 쌓인 인구 300만 명의 세계적인 대도시가 됐다.

지금은 우리나라 최대의 국제공항이자 세계적인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을 통한 거대한 하늘 길까지 열려 인천은 세계만방과 직결되는 명실상부, 위세당당한 메트로폴리탄이 됐다. 전국 195개 지역특화발전특구를 대상으로 한 ‘2020 우수지역특구’시상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렇듯 도시를 특성화 하는 일은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도시발전을 위한 필수적 요건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신도시 등을 건설하는 경우도 도시의 특성을 잘 살리는 건축 등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중심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충남도청소재지로 신도시가 조성되는 홍성과 예산의 경우, 특히 충남혁신도시로 지정된 충남내포혁신도시의 경우 공공기관 유치나 나머지 도시건설에 있어 주목할 대목이기도 하다. 2020년까지 신도시 건설의 완성을 목표로 했지만 아직까지 도시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특색이 있고 매력적인 도시, 볼거리, 살거리, 먹거리 등이 풍성해 사람들이 늘 찾을 수 있는 도시, 스토리와 테마가 있는 도시를 건축하는 일은 도시발전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인천 차이나타운 메인 거리 풍경.

■ 동인천역 주변, 근대문화의 보물창고로 꼽혀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인천역과 동인천역 주변은 근대문화의 보물창고로 꼽히는 곳이다. 1883년 개항과 함께 유입된 외래문화의 흔적이 현재와 뒤섞이면서 독특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인천역을 나서면 바로 앞 횡단보도 건너로 중국식 전통 대문인 패루가 서 있고, 이 패루를 지나면서 차이나타운이 시작된다. 한국 차이나타운의 원조인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눈에 띄는 패루는 중국 웨이하이시가 기증한 차이나타운의 대표적 상징물로 마을 입구나 대로를 가로질러 세운 탑 모양의 중국식 전통대문이다.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장식과 문화예술이 하나로 융합된 상징성이 매우 인상적이다. 현재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중화가(中華街), 선린문(善隣門), 인화문(仁華門) 등 모두 3개의 패루가 있다. 
 

차이나타운 메인 거리 풍경.

차이나타운에는 중국 전통의상인 치파오와 각종 장신구를 파는 상점, 옹기병을 구워 파는 중국식 제과점, 양꼬치 가게, 붉은 간판을 단 수십 개의 중국음식점이 이어진다. 개항 이후 중국인들이 모여 살던 이곳은 관광특구로 지정돼 볼거리, 살거리, 먹거리가 넘쳐나고 있다. 이 땅에서 최초의 철길이 열린 곳이 인천이고 오늘을 사는 세계인들의 일상적인 음료, 커피를 이 땅에서 처음으로 마시게 된 사람들도 인천사람들이었다. 인천의 중구, 인천의 심장이 돼 있는 인천의 개항장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많은 역사가 한 곳에 몰려 있다.

1883년 개항과 함께 서구의 여러 나라와 청국, 일본의 상사들이 앞 다퉈 인천에 진출하고 각국의 영사관이 설치되는 등 인천은 국제도시로 발돋움을 하기 시작했다. 청국과 일본인의 전용거주구역인 조계지가 계단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설정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일본조계지가 들어서자 연이어 청국의 조계지도 조성됐다. 청국과 일본은 이 조계지에 행정기관을 설치하고 치외법권을 누리면서 거주했다. 경계가 된 계단 양편으로 갈라진 청국과 일본, 두 지역에서는 지금도 100년을 훨씬 넘긴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 나라의 건축양식인데 누구나 건축양식의 판이한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건축은 도시를 구성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따라서 도시건설에서 건축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다.
 

차이나타운 메인 거리 풍경.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 대불호텔도 이곳에서 개점해 영업을 시작했다. 서양사람들은 온돌방 방바닥이 아니라 침대 위에서 잠을 잔다는 것도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상과 천문관측을 했던 인천기상대가 이곳에서 세워졌고, 우체국의 효시로 기록되는 우정총국 인천분국의 근거지도 인천개항장이었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빌렘 신부가 1889년 제물포성당을 창설한 것으로부터 시작된 답동성당은 벽돌로 만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한국 성당 중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한편, 랜디스 박사가 설립한 성 누가병원은 인천 최초의 서양식병원이고, 인천부립도서관은 인천에서 최초로 문을 연 공립도서관이다.

인천에 건립된 오랜 은행 건물로는 일본 제18은행이 있다. 지금 인천중구요식업협회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일본 제58은행 인천지점은 1892년 전환국에서 발행했던 근대식 화폐교환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프랑스풍 벽돌조 건축물로 지금도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 입구에 조성된 조형간판.

■ 인천 최대 상권 ‘한국의 작은 중국’으로 발전
인천시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된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은 1883년 설정된 일본조계와 1884년 마련된 청국조계와의 경계를 나타내는 계단으로 자유공원과 이어져 있다. 자유공원은 1888년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근대공원이다. 1897년에 조성된 서울의 탑골공원보다 9년이 앞선다. 각국 공동조계지에 위치해 처음에는 ‘각국공원’이라 불렸다가 몇 차례의 명칭 변경을 거쳐 1957년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건립된 이후 ‘자유공원’으로 불리고 있다. 1905년에 완공, 응봉산을 관통해 인천항과 전동을 연결하는 아치형 돌문 홍예문은 포화상태가 된 일본의 조계지를 만석동까지 확장시켰다. 인천개항장과 차이나타운의 나들목 인천역의 역사는 큰 변화가 없이 지난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옛 흔적이 잘 보존된 중국인 점포 주택이 즐비하고 화교인들이 직접 만든 정통 중국요리를 맛볼 수 있는 차이나타운 거리는 1884년 청국영사관이 설치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 지금의 북성동, 선린동 일대를 중심으로 화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중국 산둥반도와 정기적으로 배가 운항하면서 숫자가 크게 증가했다. 당시 화교들은 중국에서 가져온 식료잡화, 소금, 곡물들을 ‘청관거리’라 불리는 이곳에 내다 팔았고, 우리의 사금 등을 사들여 상권을 점차 넓혀갔다. 청관거리에는 유명 요릿집과 무역상들이 대거 자리를 잡으면서 인천 최대의 상권으로 발전해 오늘날 1만여 명이 북적이는 ‘한국의 작은 중국’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국내 첫 짜장면집으로 알려진 ‘공화춘’, 현재는 ‘짜장면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차이나타운 최고의 먹을거리는 단연 짜장면이다. 국내 첫 짜장면집으로 알려진 ‘공화춘(共和春)’은 1908년 무렵 지어진 중국음식점으로 중국 산둥지방의 장인이 직접 지었다는 중정형의 식당이다. 외부는 벽돌로 마감하고 내부는 중국 특유의 다양한 문양과 붉은색의 화려함으로 장식했다. 처음에는 무역상들에게 숙식을 제공했으나 중화요리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음식점으로 명성을 날렸다. 현재는 중구청이 건물을 매입한 후 개·보수해 화교의 생활사, 짜장면의 역사, 조리법 등을 소개하는 전시공간인 ‘짜장면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차이나타운특구 내에는 정통 중국음식점은 물론 잡화특산품점, 음식재료점 등이 길게 늘어서 300만 명에 이르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주요 볼거리는 삼국지 벽화거리, 패루(牌樓·중국식 전통대문), 청·일조계지 경계계단, 한중문화관, 짜장면박물관, 중국식 점포 등을 꼽을 수 있다. 도심의 특화거리 명소화가 도시발전을 견인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차이나타운의 대세는 송월동 벽화마을과 자유공원이라고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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