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세계 그리고 지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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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세계 그리고 지역신문
  • 황희재 기자
  • 승인 2021.12.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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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을 하고 얼큰하게 취한 밤, 대리운전을 호출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기사와 대화를 나눴다. 밤에 운전을 하면 얼마나 버는지, 낮에 다른 일을 하는 기사도 많은지, 그런 내용이었다.
차에서 내리며 한 달에 1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욕심이 생겼다. 며칠 후, 받았던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저… 전에 명함 받아간…. 돈이 좀 필요해서 대리운전을 해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전화 안할 줄 알았는데 정말 연락을 주셨네요? 저희가 지금 대리기사 말고 픽업 역할을 할 사람을 구하고 있긴 해요. 손님이 호출한 장소로 대리기사를 데려다주고, 손님 차만 잘 따라가면 돼요. 어려운 건 하나도 없어요.”

그렇게 일명 ‘뒤차’일을 시작했다. 낮에는 기자로, 밤에는 뒤차를 모는 픽업 기사로 정신없는 일상을 보냈다.

나와 파트너로 맺어진 대리기사는 낮에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였다. 기사와 나는 예산과 당진, 아산과 천안, 세종과 공주 등 충청지방 전역을 쏘다녔다. 손님이 떨어져 집으로 돌아오면 시계는 오전 2~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날이 지날수록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그건 대리기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가끔 갑질하는 손님을 만났다고 씩씩거리며 뒤차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 날은 홍성으로 돌아오는 내내 우울하고 적막한 공기만 차안에 맴돌았다. 나는 입을 다물고 잔잔한 음악을 틀었다. 
“좀 낫네. 조심히 가고 내일 봅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물음이 매일 고개를 들었다. ‘이러려고 기자가 된 건 아닌데….’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무심코 ‘데미안’을 집어 들었던 어느 날, ‘두 개의 세계’라는 첫 번째 장의 제목에 눈길이 멈췄다. ‘전에는 전혀 눈여겨보지 않았던 글귀였는데….’ 피식 웃음이 터졌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데미안’에 등장하는 주인공 싱클레어는 종교와 도덕으로 상징되는 모범적 세계와 스캔들과 유령이야기가 난무하는 야만적 세계를 동시에 겪으면서 기존 세계의 규범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스스로 성찰하고 방황하며 진정한 나를 찾아 나선다.

두 개의 세계에 공존하는 존재는 비단 싱클레어나 나 같은 개인뿐만이 아니다. 지역의 소식을 담아 신문을 발행하는 전국의 지역신문들은 요즘 새로운 수익사업을 발굴하는데 여념이 없다.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고, 행사를 대행하거나 인쇄·출판업을 병행하기도 한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누구도 지역신문에게 내일이 있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다만 험난할 거라고 예상할 뿐이다.

지금은 긴 글이 외면 받고,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본문 내용과 아무 관련 없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돈이 되는 시대다. 이 시대는 다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만드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기록해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서다. 사라져가는 기억을 붙잡아 우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잊지 않기 위함이다. 그게 지역신문 본연의 모습이니까.

낮에는 취재기자, 밤에는 픽업 기사로 살았던 이야기는 현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지는 중이다. 물과 기름처럼 상반된 두 세계에 공존했던 경험은 결국 ‘글 쓰는 나’라는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픽업 기사일은 그만 뒀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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