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스데이(Bloomsday)와 홍성 학(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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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스데이(Bloomsday)와 홍성 학(學)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2.06.14 16: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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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과 기질도 비슷하고 이웃국가로부터 지배를 받아왔던 나라가 영국 옆에 자리잡은 아일랜드가 아닌가 싶다. 이 나라는 영국으로부터 700년 이상 지배를 받아오다 보니 많은 세월 영국인과 서로 피가 섞여 누가 아일랜드인이고, 누가 영국사람인지 구별이 힘들게 되어 1921년 독립할 당시 종교적 이유를 내세워 아직도 나라의 일부는 영국 땅으로 남아 있다. 타민족으로 부터 지배를 오래 받아온 후유증이라 할 수 있다. 1847년에는 이들이 주식(主食)으로 하는 감자가 썩는 감자마름병으로 대기근을 야기하여, 국민의 약 4/1이 굶어죽고 일부는 다른 나라로 뿔뿔이 흩어지는 슬픈 역사도 가진 나라다.

그렇지만 이런 나라에도 영국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으려던 독립 운동가들도 많았고 출중한 예술가들도 있었다. 이 나라 출신의 대표적인 소설가가 제임스 조이스다. 미국의 유명 시사잡지는 그를 20세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소설가로 선정하였고, 그의 대표 작품이 ‘율리시즈’다. 조이스 외에도 이 나라에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 20세기 최대의 시인이라 할 수 있는 예이츠, 20세기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와 싱, ‘유토피아’의 작가 토마스 무어,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나단 스위프트가 빛을 발한다. 이렇게 다양한 작가들을 배출하면서 켈트민족의 전통문화가 도도히 숨 쉬는 국가이기는 하였지만 그들의 역사는 분열과 갈등, 빈곤의 역사였고, 늘 영국의 변방에 불과했다. 영국인들은 그들을 ‘인간 침팬지’, ‘하얀 검둥이’같은 존재로 보았고 ‘이해하기에는 너무 멀고 무시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존재였다. 2차 세계대전 후 동경대학의 총장을 지낸 야나이하라 타다오가 ‘한국은 우리의 아일랜드’라고 했던 망언이 씁쓸하게 떠오른다.

영국인의 눈으로 본 아일랜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저급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조이스도 술 마시고 이웃과 싸움질을 일삼고, 정신적으로 타락해 보이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모습을 싫어하여 조국을 등지고 유럽을 떠돌다 스위스에서 삶을 마쳤다.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소설을 써서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추한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보고 사는 방식을 바꾸어보도록 촉구했다. 그는 조국을 떠났지만 누구못지 않게 조국을 사랑했다. 그의 소설들은 모두 더블린을 배경으로 삼았고 지도에 더블린이 없어져도 자신의 소설을 보고 더블린을 다시 건설할 수 있도록 더블린을 핍진성 있게 묘사하고 싶어했다. 더럽지만 꿈속에서도 그리던 더블린이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의 주인공 블룸이 소설 속에서 6월 16일에 더블린 시내를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있는데, 조이스를 좋아하는 ‘조이시안’이나 영문학자들이 이날을 ‘블룸스데이’로 정하고 조이스를 기리고 있었다. 그러나 2004년에는 조이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2004 리조이스 페스티발’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더블린시 당국은 학술대회 뿐만이 아니라 도시전체를 조이스 축전의 공간으로 확장하였다. 21세기에 100년 전의 블룸이 거리를 활보하도록 블룸스데이를 재조명한 것이다. 블룸이 다녔던 술집이나 거리들은 명소가 되었으며 블룸이 입었던 복장과 모자는 더블린의 패션이 되기도 했다. 해마다 6월 16일 블룸스데이가 되면 조이스 학술대회가 열리고 전 세계의 독자들은 더블린을 찾는다. 이 날은 실제로 조이스가 그의 아내 노라 바라클과 처음으로 데이트 했던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율리시즈’의 시간적 배경으로 삼았던 날이다. 개인의 첫 데이트 날짜가 세계의 축전이 된 셈이다.

영국의 오랜 지배를 받으며 영국의 그늘에서 신음했던 아일랜드가 21세기에는 영국보다 국민소득이 한때 앞서기도 했는데, 이것은 감성적 기질을 가진 아일랜드 사람들과 IT산업이 결합하여 그들의 신명을 자극하였기 때문이다. 경제적 발전과 함께 그들의 전통문화도 훌륭한 콘텐츠로 재탄생되었다. 문화는 그 나라의 흥망성쇠 뿐 아니라 정치 경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문화가 그 나라의 경쟁력이다. 하버드대학교 데이비드 랑드 교수는 ‘왜 누구는 그렇게 부유하고 누구는 그렇게 가난한가?’에서 문화가 빈부의 차이를 결정짓는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경제학 교수로서 문화와 경제적 성취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밝힌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아일랜드에서 조이스와 베케트 축전을 기획했던 로라 번즈는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이 더블린 사람들에게 다시한번 기억되고 음미되어 문학이 도시민들의 생활문화가 되길 희망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관광수입 유발보다는 문화가 시민들의 일상이 되도록 기획됐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행사는 축전이 끝나면 허무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축전의 기획이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홍성의 내포 축전도 이 지역의 훌륭한 인물들을 재 발굴하여 오늘의 이응로, 남당, 만해로 재탄생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홍성에서 ‘홍성학’이 출발되어 홍성의 역사, 작가, 문화, 관광 등을 청운대학교 학생들에게 올해 2학기부터 가르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타지에서 온 학생들에게 그 지역의 지역학을 가르치겠다는 홍성군과 청운대학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만 외쳐서는 보편성을 얻기 어렵다. 지나온 과거에 매몰되어서는 미래를 바라보기 어렵다. 물론 새로운 것에 역사성이 결여된다면 그것은 전통이 없는 특이한 괴성(怪聲)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의 콘텐츠를 붙들고 고개를 들어 ‘세계’를 보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중요하다. 지자체장을 비롯한 지역의 인사들이 지역의 역사와 인물의 자랑만 일삼는 강의가 되어서는 돈 들여 학생들을 졸게 하는 지역학이 되고 말 것이다. ‘소녀시대’, ‘수퍼주니어’ 등과 같은 한류 가수들의 음악이 어떻게 세계의 젊은이들로 부터 열광적 호응을 얻는지 벤치마킹하여 ‘홍성 학(鶴)’이 ‘세계 학(鶴)’으로 비상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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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정 2012-06-19 07:48:38
티비에서 로마올림픽을 이야기해서 로마에 가고 싶다는 생각,김상구교수님 블룸스데이와홍성학을 읽으면서 아이랜드를 가고 싶은 마음,내포 축전이 열리면...홍성쯤이야..교수님글은 마력입니다. 시험용으로 배웠던 그 유명한 소설가 시인들이 아이랜드 출신임을 알게되고더블린축제가 며칠전이었군요.
홍성초등학교 교정에서 아빠가 다닌 학교라고 구석구석을 다니며 설명하던 상기된 남편얼굴을 다시 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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