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신화와 인간
상태바
창조신화와 인간
  • 최교성 세례자 요한 <홍주성지 전담 신부>
  • 승인 2022.05.01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세기부터 메시아, 구원자의 약속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지난주에 창세기 선악과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신의 뜻을 거슬러서 인간은 죽음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리고 낙원에서 쫓겨났는데, 그걸로 결판이 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길을 벗어날 수 있기 위해 구세주를 약속한다.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인물에 대해 미리 예고한 것이다. 창조신화에서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수많은 외부의 침탈이 있어왔지만 무너지지 않고 모든 고통과 시련을 이겨낸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이 메시아 사상이었다. 역사가 토인비도 언급했듯이 이스라엘처럼 외부 강국들의 침략을 그토록 많이 받았다면 남아있을 나라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벌써 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끈질기게 버텨냈다. 외국에 유배를 가든, 뿔뿔이 흩어져 살든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모든 시련을 이겨낸 민족이다. 
낙원을 쫓겨났지만 결론은 메시아의 약속이 주어진다. 다시 창조신화로 가보자. 아담은 인간이라는 뜻이다. 아담은 인류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아담 때문에 우리가 낙원에서 쫓겨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성서를 잘 못 보는 것이다. 

인간의 악이 참 행복의 길을 가로막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가령, 어느 물고기가 생각하기를 ‘물 밖으로 나가면 좀 더 자유로울지 몰라!’ 하고 반항을 고민하고 있다고 치자. 그 물고기는 물을 떠나는 순간 죽게 되어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누구한테서 벌을 받아서 죽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스스로 죽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표현한 것이 바로 낙원추방이다.

하느님의 뜻은 늘 인간의 행복을 지향하고 있다. 그 뜻을 저버린 인간들은 결국 자기의  영혼을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자신을 망가뜨리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세상을 다 얻는다 해도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신은 정작 인간을 위해 세상 모든 만물을 만들었건만 인간은 결국 그 세상에 먹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세상을 만드시고 신은 인간에게 이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셨건만, 인간은 오히려 세상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신의 모습을 닮고 있기 때문이다. 신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고대에서는 파라오만 왕들만이 신의 아들이라고 했다.
성서에서는 처음부터 모든 인간은 똑같은 존엄성을 갖는다. 머리가 좋고 기술이 좋고 돈이 많아서 권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아무런 능력이 없어도 힘이 없어도 돈을 생산해내지 못해도 인간 그 자체로 신들의 자식이기에  소중한 것이다.

기독교의 이 뿌리 깊은 인권사상 때문에 서양 유럽역사에서는 일찍이 민주화가 자리를 잡게 된다. 근대사 현대사의 모든 민주화  운동들은 이 기본권을 토대로 발전한 것이다.
이 인권은 모든 이를 평등하게 존중하게 하는 기본권이다. 창조주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세상 인간은 역할만 다른 것이지,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없다. 이 기본권이 토대가 되지 않는 다면 아무리 교회가 많아도, 신자가 늘어나도 매 한가지다. 정의와 평등을 외치는 교회 안에도, 종교 안에도 얼마나 많은 계층들이 있는가? 특권층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가?

세상 모든 조직 안에는 예외 없이 이 악의 세력이 늘 있게 마련이다. 진리를 구하는 맘이 없다면 우리 인간은 타인을 다스리고 억압하려고 하는 속성이 들고 일어난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 자기의 영역을 넘어 월권하는 것이다. 신의 자리를 넘보는 인간의 욕망을 스스로 절제하고 남을 위해 자신을 나누어주는 자세로, 자비를 베푸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