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은 옛 나주잠사·나주정미소, 문화예술공간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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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은 옛 나주잠사·나주정미소, 문화예술공간 탈바꿈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2.08.1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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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건물·폐산업시설, 문화재생 가치를 담다 〈8〉
옛‘나주잠사’가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나주 나빌레라문화센터’.

전남 나주는 충남 홍주와 마찬가지로 천년 목사고을이다. 전라도 중서부 나주평야의 중심에 위치하며, 우리나라 4대강인 영산강이 도심의 중앙을 관통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농업에 유리해 예부터 벼농사와 배를 비롯한 과수농업, 뽕나무농사 등 잠사농업과 원예농업이 활발하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라도’라는 명칭이 ‘전주’와 ‘나주’의 머리글자에서 왔을 정도로 과거부터 전라도의 대표 도시이다. 

나주의 역사는 1000년 전 마한문화의 중심지로 시작한다. 이후 나주는 고려시대 왕건을 비롯한 초대 왕들의 인생사와 함께한 도시다. 의병봉기나 동학농민혁명, 학생독립운동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나주읍성 등 근현대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문화가 넘치는 역사문화도시로의 성장가능성을 보여주는 도시다. 

따라서 역사문화를 담고 있는 건축물과 폐건축물 등 역사문화 연계망을 활용한 도심재생, 역사문화콘텐츠 발굴, 다양한 역사·문화·생태 자산을 활용한 박물관도시만들기 사업을 시행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러한 공간을 활용, 주민교류 거점센터와 관광산업의 플랫폼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래된 건물에 현대적 디자인을 입혀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도시재생사업은 현재 세계 각국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기도 하다. 이처럼 폐공장 등을 종합예술공간으로의 탈바꿈을 통해 지역주민의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방문객 유치 활성화를 통해 도심 공동화를 해소하는 등 도심 재생의 새로운 모델로서의 가치와 의미가 있다. 우리 고장 홍주도 마찬가지 도시의 역사문화를 품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주목할 일이다.
 

옛‘나주잠사’ 전경.

■ 112년 나주잠사, ‘나주 나빌레라문화센터’로
하얀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던 112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남 나주의 ‘나주잠사(羅州蠶絲)’가 지역의 다양한 문화예술을 창작, 확산하는 문화예술공간인 ‘나주 나빌레라문화센터’로 탈바꿈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폐산업시설 문화자원화’사업에 나주의 옛 잠사공장이 지난 2014년 선정돼 문화예술활동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부지 4637㎡에 건축 연면적 1~4층 건물로, 건조시설과 창고, 고치보관소와 굴뚝이 남아 있는 옛 나주잠사 건물 6동을 리모델링했다.

나주의 옛잠사공장을 활용한 ‘폐산업시설 문화자원화’사업은 나주잠사를 활용한 문화예술 콘텐츠 개발과 문화예술 교육의 선순환 거점화를 마련하고, 문화재생을 통한 원도심 재생과 문화예술의 소비 유통이 공유되는 창조공간으로 조성해 문화향유권을 확대하기 위한 취지로 추진됐다. 이 사업은 폐업이나 용도가 사라져 방치된 건물을 문화예술 콘텐츠 개발과 문화예술 교육의 선순환 거점 공간으로 활용하는 문화아트 프로젝트의 하나로 나주시가 2014년부터 사업을 추진했다.

나주시는 지난 2017년 10월 문을 연 지역 문화예술의 새로운 창조 활동의 거점이자 시민들의 다양한 문화향유 공간으로 활용될 ‘나주 나빌레라문화센터’는 일제 강점기 강제수탈 등 지역민의 아픔이 서린 폐공장의 건물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나주 나빌레라문화센터(나나센터)’라는 이름은 공모를 통해 지었다고 한다. 시인 조지훈의 ‘승무’에서 따온 것으로, 누에고치가 나비가 돼 완전한 모습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형상화한 말이라는 설명이다. 

나주 금남동에 위치한 나주잠사(부지 5117㎡, 건축면적 2187㎡)는 일제 강점기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던 공장이다. 1910년 일본인 센가(千賀)가 설립한 회사로 한때 종업원이 1000명이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큰 근대 산업시설 중 한 곳이었다. 하지만 지난 1973년 오일 쇼크로 인해 1974년 잠사업에도 영향이 미치면서 누에고치 생산도 감소했고, 도시 산업화의 영향으로 인력이 대도시로 유출되면서 잠사 사업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1970년대 나일론의 등장으로 양잠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자 1978년 폐업했다. 건조시설·창고·누에고치 보관소 등 1∼4층 규모 건물 6동과 굴뚝 등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주시는 57억 원을 들여 창고 등을 문화예술 프로그램 교육을 위한 갤러리, 기획 전시실, 공연장, 음악 연습실, 공동장비 활용이 가능한 개방형 공예실 등으로 리모델링을 해 문화예술 공간으로 다시 탄생시켰다.

옛 나주잠사는 전남 나주시 금성동에 있는 건축물로 지난 2011년 7월 26일 나주시의 향토문화유산 제26호로 지정됐다. 나주잠사는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에 나주양잠조합으로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 남아있는 수개동의 건물들은 모두 벽돌조 건물로 붉은 벽돌조의 시공방법으로 볼 때 195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50년대 공장건물로의 가치가 있다.
 

나주 정미소.

■ 100년 나주정미소, 복합문화공간 탄생
또 100년이 넘는 역사의 옛 나주정미소가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옛 나주정미소는 호남 최초의 정미소로 전라도 최대 곡창지대였던 나주평야에서 수확한 곡식을 쌀로 생산하던 장소다. 호남의 역사가 깃든 공간이지만 1980년대 이후 화재로 인해 버려졌던 폐건물이었다.

나주시와 나주시도시재생협의체, 광주MBC는 나주읍성권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폐허나 다름없던 정미소를 탈바꿈시켰다. 100년이 넘은 붉은 벽돌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으로 구조물을 보강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 것이다. 새로운 이름은 정(情)과 맛[味]을 간직한 웃음[笑]꽃이 피는 나주의 대표적인 장소가 돼야 한다는 뜻을 담아 ‘나주정미소(情味笑)’라는 의미와 함께 ‘난장곡간(曲間)’이름으로 정했다는 설명이다. 본래 이름인 ‘나주정미소’와 어울리는 단어인 ‘곳간(庫間)’에서 착안해 음악을 비롯한 문화와 예술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나주 성북동에 위치한 나주정미소는 1920년 무렵 만들어졌다. 쌀을 생산하던 장소이자 1929∼1930년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 진원지였던 나주 학생 만세시위 등 항일운동의 주역들이 모여 회의를 했던 항일운동의 현장이기도 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나주역 사건의 주인공 박준채는 정미소 설립자 박준삼의 동생이다. 금호그룹 창업자 고(故) 박인천 회장이 1950년부터 1971년까지 그룹의 기반을 다질 무렵 ‘죽호정미소’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기도 했던 정미소다.

새롭게 탄생한 ‘나주정미소 난장곡간(曲間)’은 나주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1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옛 나주정미소 부지에 자리한 정미소와 양곡창고 등 4동의 건물을 업사이클링 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으로 난장곡간이 첫 번째 시도로 알려지며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나주정미소 부지에 남아있는 4개의 건물 중 한 곳은 재활용을 넘어 디자인을 가미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새로운 활용)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공간은 100% 라이브 방송 무대를 지향하는 광주MBC ‘문화콘서트 난장’의 전용 공연장인 ‘난장곡간(曲間)’으로 활용된다. 곡물과 각종 물건을 넣어두었던 곳간에 음악(곡·曲)이 합쳐진 이름으로, 음악과 추억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를 뜻한다. 문화콘서트 난장은 ‘대한민국 생음악 중심 난장’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난장곡간에서 새롭게 출발했다. 난장곡간은 공연 녹화뿐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 다양한 예술 전시공간, 촉망받는 뮤지션들의 창작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옛 '나주극장'.

역사적인 의미와 소소한 사연을 품고 있는 옛 나주정미소 부지에 남아있는 4개 동의 건물 중 나머지 3개 동 중 2개는 리모델링을 거쳐 또 다른 문화공간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곳에서 진행하는 문화예술공연을 통해 나주혁신도시와 이웃하는 전남지역의 젊은 인구 유입으로 나주 원도심의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버려졌던 폐공장의 건물 공간이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의 문화예술 활동의 새로운 중심지로 재탄생한 것이다. 근처에는 청년들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청년들의 창업 골목이 생겨 원도심을 떠났던 청년들의 유입 가능성과 함께 도심 상권의 활성화에 시너지효과가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밖에 옛 나주극장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을 준비하고 있다. 나주시는 옛 나주극장이 가진 역사, 장소적 가치를 되살리고 ‘다시 나주극장’이라는 테마로 근대 문화·예술·생활역사를 영사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다. 옛 나주극장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나주천 정비사업을 통해 조성한 하천부지에 소주 공장, 잠사(누에) 공장 등 산업시설과 함께 들어선 나주지역 최초의 극장이다. 극장 내부 관객석은 2층 구조로 돼 있으며, 최대 2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1980년대까지 정치·사회·문화·예술 활동을 위한 복합문화공간 역할을 해오며 시민들의 추억을 보유한 근대문화시설이다. 또한 동점문 옆 하천 건너에는 옛 화남산업(和南産業) 공장 터가 있다. 통조림공장이었던 이곳은 폐허가 됐으나 2700여 평 규모의 터와 낡은 건물은 과거 나주에서 통조림산업의 위용을 전하며 그대로 서 있다.
 

나주잠사.
나주잠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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