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마을공동체, 건강한 농산물이 가득한 ‘홍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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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마을공동체, 건강한 농산물이 가득한 ‘홍동’
  • 황희재·정다운 기자
  • 승인 2022.10.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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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재의 홍주낭만기행 ⑤ 더불어 사는 마을, 홍동면

한 작가는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형식인 여행기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법한 다양한 실패담과 예상치 못한 역경들이 담겨 있다. 가장 효율적인 일정을 세워 바삐 취재를 다니던 홍성이 아닌 땅에 발을 딛고 천천히 둘러본 홍성, 기자의 시선이 아닌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홍성을 새로운 목소리로 들려주고자 한다. 홍성의 11개 읍·면을 1박 2일 일정으로 여행하며 경험한 일들과 방문한 장소들, 느낀 점들을 기록했다.<편집자주> 

 

여행자 황희재의 시선


사각사각… 사각사각…. 녀석이 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저녁을 절반쯤 먹은 무렵이었다. 숙소 천장에는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었다. 
“정 기자 여기로 잠깐만… 쉿!”
후다닥 

놈이 움직이는 소리였다. 나무로 지어진 목조주택이라 녀석의 발소리는 더욱 크게 울렸다. 도시 깍쟁이인 나와 정 기자는 자세를 잔뜩 낮추고 웅크렸다. 홍주낭만기행을 처음 기획할 때 허름한 숙소를 예상하긴 했지만 생쥐는 계획에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매일 밤 생쥐 수십 마리가 천장에서 야단법석을 피우는 주택에 살아본 경험이 있지만 벌써 20년도 더 넘은 일이다. 우리는 날이 밝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잠에 들었다. 

홍동면은 농업과 환경을 중시하는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곳이다. 마을 도서관인 홍동밝맑도서관, 풀무학교 생활협동조합의 갓골작은가게, 마을학회 일소공도 등 마을공동체 활동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에 ‘홍동 여행’을 검색해 가장 많은 게시물이 올라와 있는 갓골마을로 향했다. 약 2만 권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홍동밝맑도서관은 갓골마을 초입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밝맑’이라는 말은 풀무학교 공동설립자인 이찬갑(1904~1974) 선생의 호다. 
 

들어간 밝맑도서관은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었다. 삐뚤빼뚤하게 잘린 종이와 테이프를 붙여 책 분류를 해놓은 모습이 정겨웠다. 역사, 철학, 종교, 사회과학, 자연과학, 문학, 예술 등 일반적인 분류는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주목한 건 원예, 씨앗, 텃밭·채소재배, 농업이론, 시골·농촌, 농업 인문 등의 세부 분류체계였다. ‘갓골자서전’, ‘똥꽃’, ‘후투티를 기다리며’와 같은 책 제목들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도서관 창가자리에는 한 여자가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타이핑하던 손을 잠시 키보드에서 떼고 창밖을 응시하는 모습은 같은 글쓰기 노동자로서 동질감을 들게 했다. 

도서관 1층을 한참 서성이다 갓골작은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빵 굽는 냄새가 가득했다. 출입문 옆에는 조그만 인쇄물이 비치돼있었다. 인쇄물에는 읽을거리가 많았다. 풀무학교 생활협동조합의 역사를 간략하게 적어놓은 지면도 있었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옮겨보자면 이렇다.

“갓골어린이집 주차장 터에 건물을 짓고 오븐 하나를 들여놓고 풀무식가공조합을 열었습니다. 그땐 택배 제도가 없어 구운 빵을 직접 들고 서울까지 배달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구운 빵을 가지고 장항선을 타고 또 버스로 갈아타 서울 노원어린이집에 배달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돈이나 경쟁보다는 더불어 사는 삶이 귀하다고 믿는 7명의 일꾼, 220여 명의 조합원들이 함께 풀무학교생협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학교와 마을에서 정직하고 건강하게 농사지은 유기농 밀로 빵을 굽고, 마을에서 생산된 친환경 농산물과 가공품을 판매하는 작은가게를 운영합니다.” 시골마을의 조그만 빵집은 공동체적인 삶의 철학과 자립심도 함께 굽고 있었다. 

1박 2일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여행지로서의 ‘홍동’은 뚜렷한 테마를 가진 관광명소임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홍동사람들은 오늘도 스스로 생산, 교육, 기록, 발행, 지원, 운영, 나눔까지 진정한 의미의 주민자치를 실현하고 있다. 
 

여행자 정다운의 시선


퇴근 후 선배와 장을 보기 위해 들른 홍성로컬푸드직매장에서는 과일, 채소, 반찬 등을 생산자들의 얼굴을 걸고 팔고 있었다. 지난 2014년 홍동면이 전국 최초로 유기농 특구로 지정됐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홍동의 첫인상은 다른 지역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출출했던 우리는 적당히 장을 보고 치킨, 골뱅이 소면 등을 포장해 숙소로 돌아왔다. 예전에는 제법 번성했을 것 같은 펜션이었는데, 숙소 안에는 침대도 없었고 형형색색의 침구 세트가 우릴 반겼다. 식사는 날이 선선한 편이어서 펜션 밖 벤치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열심히 먹는 도중 고양이 두 마리가 계속 기웃거렸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고기 몇 점 던져 줬는데, 역시 길고양이라서 그런지 잽싸게 받아먹고 도망쳤다. 식사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숙소 안으로 들어왔는데,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천장에서 운동회를 연 쥐들이 문제였다. 천장 바닥을 긁고 뛰는 소리, 찍찍대는 쥐 소리가 밤잠을 설치게 했다. 나처럼 깔끔한 성격의 선배도 덩달아 잠을 설쳤다. 옛 감성과 분위기 많은 것들이 마음에 들었지만, 쥐는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다.

다음날은 선배와 함께 밝맑도서관으로 향했다. ‘밝맑’의 뜻은 ‘밝다’와 ‘맑다’를 합친 풀무학교의 공동설립자 이찬갑 선생의 호다. 도서관은 풀무학교 개교 50주년 사업으로 선생의 뜻을 기려, 지난 2011년 10월 22일 지역과 국내외 모금으로 세워졌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운영하며, 일요일과 법정 공휴일은 쉰다. 도서관의 외관은 깔끔하게 느껴졌고, 안에 비치된 책들도 정갈하게 정리돼 있었다. 특히 농업과 관련된 책이 많았는데, 홍동면에 젊은 귀농 귀촌 인구가 많은 것을 고려한다면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도서관 안에서도 몇몇 젊은 이가 독서에 열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구경을 하던 중 마을교육공동체 소식지인 풀:꽃을 읽게 됐다. 사단법인풀무재단에서 발행하는 풀:꽃은 월간지로서 회원들의 모금과 회비로 발행된다. 더불어 사는 지역공동체 실현이라는 소박한 꿈을 싣고 발행되는 풀:꽃을 보며 홍동면 사람들의 지역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 우리는 풀무학교생협자연의선물가게에 들렀다. 친환경 우리밀과 유기농 설탕으로 만든 빵,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과 공예품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아메리카노 한잔과 함께 먹은 감자고로케의 맛은 특히 일품이었다. 유기농이라서 그런지 빵을 먹고 난 후에 느껴지는 특유의 더부룩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기농 구운 계란을 1알에 800원씩 판매하고 있었는데,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 외 다른 빵과 음식을 모두 맛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했던 터라 다음 기회로 미뤘다.
 

홍동은 들르는 곳곳마다 협동조합이나, 친환경 공동체 등 다양한 조합을 통해 특유의 지역색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의 영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동의 마을 운동은 풀무학교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홍동면에만 40여 개의 협동조합과 100여 개의 다양한 주민조직이 활동하는 근간이 되는 곳이 풀무학교이기 때문이다. 전국단위에서 모집된 청년들은 풀무학교를 졸업한 후 도시로 나가지 않고, 마을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이찬갑 선생의 고민이 싹 틔우고 드디어 만개한 홍동면,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이보다 특별한 지역을 찾기 힘들지 않을까? 도심과 삶에 지친 이들은 꼭 한번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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