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스타일’의 음영(陰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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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스타일’의 음영(陰影)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2.08.23 11: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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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1일 가수 싸이의 ‘썸머 스탠드 훨씬 더(THE) 흠뻑쑈’에 3만명의 관중이 몰려 ‘강남 스타일’을 합창하며 ‘말춤’을 추었다니 ‘강남스타일’ 신드롬이라 할만하다. 그 후속편 ‘오빤 딱 내 스타일’도 그에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이 뮤직 비디오에 대한 열광이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보편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들어있음 직하다. 그렇지 아니하고서는 20일 오전, 유튜브에서 4000만 건 이상의 조회가 일어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 유력 온라인 뉴스 매체 허핑턴 포스트(Huffington Post)를 비롯한 CNN과 LA타임즈,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의 언론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이 이 뮤직 비디오를 보고 많은 ‘강남 스타일’의 아류(亞流)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폭발적 인기에는 시공간의 제약 없이 영상 콘텐츠를 업로드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SNS의 환경이 한 몫을 하고 있다. SNS의 등장은 대중문화의 폭발적 확산을 가져왔다. 누구나 손쉽게 댓글을 달 수 있으며, ‘모사품’을 만들 수 있는 참여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영국, 프랑스, 뉴질랜드의 ‘홍대 스타일’일이 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만들어진다. 진지하고 어려운 ‘하이 컬쳐’ 보다는 코믹하고, 따라 하기 쉽고, 때로는 저속해 보이기도 한 ‘서브 컬쳐’가 ‘강남스타일’처럼 포스트모던 시대에 아이콘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보고 한국어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인들이 열광하는 것은 ‘말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뮤직 비디오의 도입부에 나타난 말의 이미지는 중간부의 여성의 엉덩이와 겹쳐져 ‘말춤’이 성(性)적 메타포임이 분명해 보인다. 인간이 동물적 속성을 갖고 있는 한 성적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말춤’은 이러한 인간의 집단적이고 무의식적인 성적 욕망을 부추기는 한편, 코믹한 안무도 곁들여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춤뿐만 아니라 가사의 내용도 ‘갈 데까지 가보자’는 내용이다. 성적이며 갈 데까지 가보자는 서브컬쳐가 유튜브를 비롯한 SNS의 확산을 통해 세상의 주류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대중문화가 포스트모던 사회의 주류문화가 될 것이라고 이미 예견된 바 있다.

국내에서 ‘강남 스타일’의 인기는 또 다른 요소가 깃들어 있다. 어린이 놀이터에서 파라솔을 펴놓고 선텐을 하면서, 목욕탕에서 물안경을 쓰고 수영을 하면서 ‘강남 스타일’이라고 싸이는 외쳐댄다. 관광버스에서 흘러간 막춤을 추면서, 한강변에서 장기를 두면서, 낡은 보트를 타면서 ‘강남 스타일’을 외쳐댄다. 이것은 강남 문화라는 것이 그럴 듯 해 보였지만 결국 값싸고 B급 문화인 ‘키치’에 불과하다는 자기성찰이다. 그러면서도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이 있는 여자’가 사랑스럽다며,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보자’고 강남 스타일의 오빠는 기이한 ‘말춤’을 춘다. 즉, 기존의 강남문화를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말춤’도 곧 패러디 당할 운명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러니 많은 ‘모사품’들이 쏟아진다. 제작자의 의도가 이러한 요소들을 미리 염두에 두었든 아니하였든 간에 ‘강남 스타일’은 세계에 돌풍을 일으키며 싸이를 일약 세계의 스타로 만들어 놓고 있다.

이 뮤직 비디오에서 눈을 돌려 영화관을 살펴보면 영화 ‘도둑들’은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한때는 외국영화에 고사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영화관에 뱀을 풀어놓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던 국내 영화 관계자들이 이제는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있다. 세계 게임시장에서 ‘넥센’을 비롯한 한국 게임 업체들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동남아 어디를 가드라도 한국의 드라마들이 인기를 끈다. 베트남의 어느 국회의원은 ‘주몽’이 방송되는 시간에 맞추어 퇴근할 정도로 ‘주몽’의 열렬한 시청자였다고 귀띔해 주기도 한다. 중국 유학생들은 한국의 TV의 광고들이 중국과 비교하여 ‘너무 재미있다’라고 말한다.

활자매체는 사라지고 영상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캐나다의 대중문화 이론가이며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마샬 맥루한이 ‘쿠텐베르크의 은하’(1962)에서 이미 선언한 바 있다. 그의 예언처럼 책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독서능력의 위기’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책보다는 TV와 컴퓨터 게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심지어 게임에 중독되어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어버린 중·고생들이 한 둘이 아닌지 오래다. 강렬한 화면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 상상력은 사라지고 책은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강렬한 화면은 심지어 환상을 만들어 정상으로부터 그들을 일탈하게 만든다. 심지어 가정의 비극을 초래했다는 뉴스들이 빈번하다. 이러한 영상물들의 폐해는 서구문명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영국의 저명한 문명비평가 조지 스타이너는 일찍이 경고한 바 있다.

세계의 관심을 끄는 뮤직비디오도, 영화도, 드라마도, 결국은 상상력을 통한 콘텐츠 결과물이라고 볼 때, 폭넓은 독서를 통한 상상력의 도움 없이 반짝하는 인기는 일회성에 그치고 말 공산이 크다. 보편성에 독특함이 함께 할 때 인기는 오래가기 마련이다. 동서양의 듬쑥한 책들을 읽어내고(보편성) 여기에 우리 고유문화(독특함)를 결합할 때 ‘서브 컬쳐’가 아닌 ‘하이 컬쳐’로서 이웃 나라들에게 또렷이 자리매김할 수 있다. 다양한 독서를 통해 자신의 무한한 상상력을 탐색하기보다는 단순한 ‘말춤’의 소비자, 게임의 중독자로 많은 젊은이들이 머문다면, 우리의 화려한 영상시대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다.



<홍주일보·홍주신문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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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늘 2012-08-26 13:10:56
요즘 대세인 강남스타일 코믹함과 리듬감 그리고 가벼움이 좋았는데ㅡ
강남스타일의 음영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습니다ㅡㅡㅡㅡ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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