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발하는 횡령사고, 무엇이 문제인가
상태바
빈발하는 횡령사고, 무엇이 문제인가
  • 이성복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12.22 08: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 들어 공·사기업을 불문하고 수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횡령사건이 계속 발생해 그 피해가 상당하다. 횡령은 기업에서 발생하는 직업 부정(Occupation Fraud)의 하나로 화이트칼라 범죄에 속하며 피해가 간접적이어서 일반 범죄와 달리 가해자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업 내 구성원들이 부정을 저지르는 이유에 대해 가장 설득력이 있는 이론으로는 미국의 범죄사회학자인 도널드 크래시(Donald R. Cressey) 박사가 주장한 부정 삼각형 이론이 있다. 그는 200명의 횡령 사고자들이 유혹에 넘어간 이유를 연구해 그 이론을 만들었다. 

부정 삼각형의 첫 번째가 인지된 압력인데 직원들이 부정을 저지르는 가장 큰 요인이다. 보통 경제적인 압박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부모나 자녀의 병원비 마련이나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사치스러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횡령을 저지르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회계관계직에 과도하게 궁핍한 직원을 뽑을 때 주의가 필요하다. 관리자들은 평소에 직원들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그들의 경제적 상황을 알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부정을 예방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엔론, 월드콤 등의 대형 회계 부정 사례를 보면 부정 행위자들은 경제적 압력 때문이 아니라 돈과 그들이 가진 특권의식 때문에 부정을 저지른 경우도 있다.

부정 삼각형의 두 번째 요인은 인지된 기회이다. 부정을 저지를 기회를 인지하게 되면 직원들은 부정을 저지르게 된다. 기회란 부정이 발생하는 것을 허용하는 회사의 환경을 말한다. 직원이 부정을 저지르는 기회의 정도는 일반적으로 그 직원이 회사의 자산과 각종 기록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에 의해 결정된다. 내부통제 절차가 허술한 회사는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부정이 훨씬 더 많이 발생한다. 적절한 관리·감독과 철저한 업무의 분리는 부정을 저지르고 부정에 성공할 기회를 현저히 줄일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가 합리화이다. 횡령자들이 부정을 저지르면서 ‘잠시 빌렸다가 원상 회복하겠다’며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경제적인 압력과 부정의 기회가 함께 충족됐다고 해서 모든 직원이 부정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도덕과 양심이 있는 직원은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이 낮다. 스티브 알브레히트(Steve Albrecht) 박사는 위 세 번째인 합리화를 대체하는 요소로 개인 도덕성을 주장하며 개인 도덕성이 낮을 때 직업 부정이 훨씬 일어나기 쉽다고 봤다.

지난 2004년에 울프(David T. Wolfe)와 허맨슨(Dana R. Hermanson)은 부정 삼각형에 한 가지 요소를 더해 부정 다이아몬드를 부정의 원인으로 발표했다. 그 네 번째 요소는 바로 ‘역량(Capability)’이다. 역량은 인지된 압력, 인지된 기회, 합리화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실질적으로 부정을 저지르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개인적인 성향과 능력’을 말한다. 부정 사고자는 ‘내부통제시스템의 약점을 알고 이를 피해갈 수 있으며, 자신의 업무상 지위, 기능과 권한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1년에 KPMG가 69개 국가에서 발생한 348개의 직업 부정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 기업 부정의 경우 부정 행위자의 82%는 관리자로서 본인의 권한을 남용해서 하는 부정이 대부분이었다. 부정 행위자의 96%는 한 번의 부정행위에 그치지 않고 수차례에 걸쳐 부정행위를 지속해 왔으며 부정행위가 적발되기까지 평균적으로 3~4년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혼자서 한 가지 일을 도맡아서 하는 직원의 경우 견제장치가 없기 때문에 기업 부정에서 가장 큰 위험이었다. 또한 부정 행위자의 74%는 회사의 부실한 내부통제시스템을 악용해서 부정을 저질렀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회사가 건실하게 지속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내부통제시스템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내부통제장치 없이도 직원들이 알아서 잘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내부통제를 해줘야 한다. 오히려 그것이 직원들을 부정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또한 성실하고 우수한 직원들을 일부 부정 행위자로부터 보호하는 길이며, 회사를 안정적으로 성장시키는 기반이다.

기업에는 여러 가지 리스크가 있다. 부정은 그중에서 기업의 시간과 노력을 최우선적으로 투자해야 할 가장 위험한 리스크이다. 하지만 리스크를 완전히 없앨 수 없다. 조직 내 부정을 임계점 이하로 관리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조직 내 부정이 임계점을 넘은 기업들은 평균 수명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도층의 부정부패가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든 조직이든 간에 지도자와 관리자의 만연한 부정부패로 시작된 망조가 구성원에게까지 전염되는 경우 그 국가나 조직은 얼마 가지 않아 망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건강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지도층의 각성과 도덕성 회복이 시급하다.

이성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학박사·칼럼·독자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