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하다면, 나도 환경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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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하다면, 나도 환경가해자
  • 신은미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4.20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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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4일.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사적인 날이 또 하루 생겼다. 독일이 마지막 남은 원자력발전소 3기를 모두 멈추고 세계 최초이자 유일의 탈핵국가가 됐기 때문이다. 여전히 핵발전을 통해 많은 전기를 생산하고 새로 핵발전소를 짓고 있으며, 소형모듈원자로(SMR)까지 건설하겠다는 우리나라 실정과는 정 반대다. 최근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소 수명 연장까지 발표했다.

어느 때보다 환경과 안전이 중시되는 지금, 우리의 에너지 생산은 가장 위험하고 불공평하고 지속불가능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국민들은 이 시스템의 피해자인 한편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에너지 생산과 소비에 무관심하다면.

정부는 제9차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보령화력발전소 5, 6호기를 2025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제10차 계획에서는 운영기간을 1년 연장해 2026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보령화력 3, 4호기는 2042년까지 수명 연장됐고 2017년 가동을 시작한 신보령화력 12호기는 2047년까지 가동된다. 전 세계가 석탄화력발전소를 조기 폐쇄하는 가운데 우리는 탈석탄 흐름도 역행하고 있다. 보령지역은 1983년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을 시작한 이래 비산먼지 및 각종 대기오염물질,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배수로 인한 해양생태계 교란, 송전선로 건설 문제 등 40년 가까이 피해를 입었고 앞으로도 20년 이상 고통 속에 지내야 한다.

지난 1월 발표된 ‘석탄화력 주변 주민건강영향조사’ 결과 보령화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암 발생률은 남성 간암의 경우 충남 대비 239% 높았고, 여성 간암은 252% 높게 나타났다. 발전소로 인한 피해는 환경에 그치지 않고 건강까지 위협한다. 

가장 심각하고 시급한 건 기후변화다. 석탄화력발전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우리나라 전체의 27%(2019년 기준). 석탄화력발전은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이다. 전국 57기의 화력발전소 중 29기가 충남에 있고, 이 29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충남지역 온실가스 배출량의 60%를 차지한다. 

보령 석탄화력발전소 수명 연장은 보령지역만의 일도 아니고 환경문제에만 국한되는 일도 아니다. 홍성이나 예산에 석탄화력발전소가 없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보령과 인접한 광천에서는 대기오염 피해를 호소하기도 하고, 석탄화력발전으로 비롯된 기후변화는 농업이나 축산업에 직접적이고 중대한 피해를 끼친다. 무엇보다도 석탄화력발전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여러 모습으로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쓰는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피해를 감수하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 소재 지역에 미안함과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더 이상 석탄화력발전을 연장하거나 확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분명한 의견이 필요하고, 그러자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동시에 주체적인 에너지 생산자가 됐야 한다. 화석연료가 아닌 태양과 바람으로 에너지를 만들고, 우리 지역의 골칫덩어리인 축산분뇨를 바이오가스로 에너지화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버려지는 산림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열과 난방을 해결할 수도 있다. 개인사업자가 하는 대규모 태양광이 아니라 집집마다 작은 태양광을 얹어 내가 쓰는 전기를 내가 만들거나, 마을 유휴지를 활용해 공동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지역의 자산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는 자본가들이 화석연료를 이용해 마음껏 만들어 ‘장사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정의로운 방법으로 생산해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는 ‘공공재로서의 에너지’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된다.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쓰레기를 줍고 텀블러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내 생활과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결시켜 보는 게 지구를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인지도 모른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가 우리 일상을 어떻게 바꿀지,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생겨도 되는지, 산업단지가 농지만 없애고 훼손하는 건 아닌지. 이런 일들에 관심과 연결고리를 갖지 않으면 우리는 결과적으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신은미<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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