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정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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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정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가?
  • 최철수(전 천수한의원 원장)
  • 승인 2012.10.0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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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한 관심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 즉 내 욕심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양심에 따라 남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과거 독재정권시절에도 정치에만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순수하게 자기의 생업에만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사는 데에는 별 불편은 없었으며 그렇게 권력의 억압을 받은 일도 없었다” 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말한다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세상에 대한 불평이나 개인의 욕심의 동기에서 비롯된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그러한 삶은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개인의 처세술로서는 수긍이 가는 일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정실과 특권이 통하고 상식과 조리, 합리가 통하지 않는 부정하고 부패한 독재사회에서는 그로 인하여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는 사람이 반드시 있게 마련인데 그가 만일 올바른 사람이었다면 이러한 면에는 눈을 감고 오로지 자기의 생업에만 충실할 수 있었을 것인가? 아니면 그는 자신만의 안위를 위하여 독재 권력에 편을 들고 순종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랬다면 너무나 비정하고 이기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정치에 대한 관심은 약하고 억울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후대를 위하여 우리가 당당하고 올바른 삶을 살고 건전하고 밝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치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독재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사람의 심성이 이기적이고 비굴하고 파렴치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이러한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되는 정치에 대한 관심과 사리사욕(감투, 이권)의 동기에서 시작되는 정치에 대한 관심은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리사욕의 동기에서 시작되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협잡과 거짓과 폭력이다. 이것이 바로 독재정치의 시작인 것이다. 이러한 정치꾼들 때문에 세상이 혼란하고 사람의 삶이 고달프게 되는 것이다.

순수한 동기에서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국민이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다. 국민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정치인 중에서 누가 더 정직한가? 누가 더 민주적이고 정치적 이상과 소신과 목표를 가진 사람인가를 구별해 내지 않는다면 우리사회가 어떻게 보다 더 건전하고 밝은 사회가 될 수 있겠는가? 그놈이 그놈이라는 식의 정치에 대한 혐오나 무관심은 바로 정상배와 모략 협잡을 일삼는 정치꾼과 정치패거리가 바라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부패한 정상배들과 수구언론에 의하여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되는 국민의 정당한 정치에 대한 관심이 거꾸로 정치과열이란 말로 조롱당하고 억눌려 오지 않았던가? 예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놈들은 다 그런 것이니 정치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더러운 정치판에 물들지 않고 초연한 사람이 되려고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바로 부패한 기득권세력을 돕는 정치행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정치의 목적은 어떤 국한된 지역사람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에만 있는 것도 아니며, 따라서 어느 국가의 국익을 지키는 데에만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의 목적은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에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대방을 고려치 않는 힘 있는 국가의 국익 우선주의가 국가 간의 분쟁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가 간 분쟁의 원인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힘 있는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이며, 이것은 세계를 하나의 나라로 생각한다면 이것이 바로 독재정치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정치도 아니다. 사람의 이기심을 충동질하여 지역이기주의를 조장하고 자신이 지역의 이익을 지키는 사람인양 국민을 속여서 국민의 정치의식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거짓된 협잡꾼이다.

정치란 사람이나 집단 사이의 문제를 양심에 따라 공평하고 정당하게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욕심과 양심의 문제이며, 거짓과 진실의 문제이며, 억압과 굴종, 자유와 평등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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