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배 뒷산 토굴 40여 곳, ‘광천토굴새우젓’ 숙성·저장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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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배 뒷산 토굴 40여 곳, ‘광천토굴새우젓’ 숙성·저장비법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3.06.1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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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 100경 〈45〉
  • 광천읍 옹암리 독배 뒷산 토굴

홍성군 광천읍 옹암리는 마을의 공식지명이다.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그래왔듯이 지금까지도 마을 이름을 ‘독배’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은 ‘광천천(廣川川)’이라는 그리 넓지 않은 냇가가 있을 뿐 온전히 바다 냄새를 맡을 수는 없는 곳이 돼 버렸다. 몇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광천역 뒤쪽까지 서해의 바닷물이 찰랑거리고 어선들이 드나드는 항구가 있었다. 그래서 이름과도 같이 지금보다 드넓은 광천천에 많은 배들이 오고 갔을 정도다. 서해 천수만의 보령 오천항에서 18km 떨어진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한 광천은 육상 교통이 덜 발달했던 시절에는 서해안 최대의 해상거점도시였다.

광천은 고려 시대부터 새우젓 산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옹암리의 옹암포구에는 새우젓 장터가 펼쳐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조선 시대 말에는 서해안 10여 개 섬의 배들이 새우를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더욱 활성화됐다. 옹암리는 ‘독배(독바위)마을’로 불리고 있듯 ‘옹암’을 한자어로 바꾼 행정구역 이름이다. 

지난 1931년 장항선 철로의 개통으로 광천은 내포 지역의 경제 중심지이자 교통요지가 되면서 크게 번창했던 동네였다. ‘내포(안內 물가浦)’는 바닷물이 육지로 깊숙이 들어와 큰 배가 드나들 수 있는 내륙지방을 뜻하는데, 서해 바다와 연접해 있으면서 물산이 풍부했던 충남 서부지역을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옛날부터 ‘광천에 가서 돈 자랑은 하지 말라’고 했듯이 물산이 풍부했던 서해안 최대의 해상거점도시이자 번창했던 상업도시였다. 하지만 서해안의 바다를 메꾸는 간척사업이 진행되고 2000년 말 하구에 보령 방조제를 쌓으면서 광천 옹암포구까지 이어지던 바닷길을 막으면서 광천의 번성했던 시절도 옛일이 되고 말았다. 

‘광천(廣川)’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작은 냇가가 된 광천천, 한때 아이들이 신나게 물놀이를 하면서 뛰어다녔을 넓은 운동장이 있는 독배의 광신초등학교는 ‘폐교’라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동네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광천시장에 토굴 새우젓을 공급하고 있으며, 새우젓 장이 펼쳐지는 마을인 옹암리는 역사적으로는 충남의 제일시장이었다. 광천시장의 관문 역할과 안면도를 비롯한 서해안 도서 지역과 육지를 잇는 역할, 그리고 광천 오일장의 하선·하역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옹암리는 원래 옹암포구가 있었던 마을로 장날에는 150여 척의 어선과 장배가 드나들며 크게 번영을 누렸던 포구 도시이며 상업 도시였다. ‘광천 독배로 시집 못 간 이내 팔자’라는 노래가 불리어 질만큼 광천 옹암리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곳이었다. 장항선 광천역이 생겨나고 광천읍이 내포지역의 경제 중심지가 되면서 덩달아 번영을 구가하던 옹암포는 그러나 서해안 간척사업으로 점점 토사가 쌓여가고, 보령방조제가 물길을 막음으로써 완전히 폐항이 되고 말았다. 옹암포구가 사라지면서 마을의 새우젓 상권도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광천토굴새우젓은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는 일등 식품이다. 토굴새우젓은 광천 독배에 살던 주민에 의해 우연하게 개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1960년대 옹암리 노동마을에 살았던 윤명원이라는 광부 출신 새우젓 상인이 일제강점기 때 젊은 시절 광산에서 일했던 경험에서 비롯됐다. 바로 새우젓을 숙성, 저장하고 있는 토굴 때문이다. 

독배마을 뒤에는 ‘당산’이라 불리는 야트막한 야산이 하나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산에는 새우를 삭혀 맛을 내는 토굴들이 40여 개나 뚫려 있다. 폐광 속이 시원하다는 점에 착안해 젓갈을 보관하게 됐다. 토굴 속의 평균 온도는 계절에 상관없이 섭씨 13~16℃·습도 85% 이상이 고르게 유지된다. 옛날 금광 속의 온도가 외부보다도 낮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소금에 절인 새우를 토굴에 넣어 보관하게 됐다. 

몇 개월 후에 보니 젓갈의 빛깔이며 맛이 생각 이상으로 맛있게 숙성돼 있었다. 이후 옹암리의 모든 젓갈은 토굴에 저장하는 독특한 숙성·저장방법이 되면서 광천은 전국 최대의 젓갈 생산지로 거듭나게 됐다.

옛날에는 바다에서 잡아 온 새우로 새우젓을 담그면 숙성시킬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처음 담근 새우젓은 더위를 피해 시원한 창고 등에 놓아두고 숙성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기온이 올라가면 모두 상해서 고랑젓이 되기 일쑤여서 절반 이상을 버리곤 했다. 

하지만 옹암리의 토굴에 새우젓을 숙성·저장하면서 절반 이상 버려지던 새우젓이 대한민국 명품 ‘광천토굴새우젓’으로 탄생하는 역사가 시작됐다. 광천토굴새우젓 덕택에 김장철은 물론 광천 오일장날(4일, 9일)이면 사람들로 동네가 들썩들썩하니 반가운 일이다. 

광천토굴새우젓은 옹암포구가 사라진 마을 옹암리, 독배를 살린 일등공신이 됐다. 이후 광천토굴새우젓이 상품화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독배 거리와 광천시장에는 광천토굴새우젓 판매장이 형성돼 있다. 지금도 광천 독배 뒷산 40여 곳의 토굴 속에서는 연간 2500톤의 토굴새우젓이 맛있게 숙성되고 있다. 

더불어 김장김치를 담글 때는 최상의 맛을 내는 재료가 되고 있으며, 밥상에서는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명품 ‘광천토굴새우젓’의 맛과 숙성·저장비법은 독배 뒷산의 토굴 40여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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