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병기념관, 충남의 항일·의병정신 어떻게 담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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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의병기념관, 충남의 항일·의병정신 어떻게 담을까?
  • 취재·사진=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3.06.1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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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의병기념관, 충남의 항일·의병정신 어떻게 담을까 〈1〉
홍주의사총에 있는 ‘홍주의병기념탑’의 홍주의병 부조상.

충남에 ‘충남의병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홍성과 예산 등의 유치전이 치열하다. 실제로 의병기념관 건립은 민선 8기 김태흠 충남지사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다만 건립 타당성 조사 단계에서부터 장기운영에 관한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예산과 운영·전문 인력 확보 등을 위한 조례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충남의병기념관’을 어디에 어떻게 건립해야 적절한지에 대해선 현재까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충남의병기념관’의 경우 △김좌진 장군 기념관(홍성군) △수당 이남규 선생 고택과 기념관(예산군) △유관순 열사 기념관(천안시) △이동녕 선생 기념관(천안시) △윤봉길 의사 기념관, 충의사(예산군) △심훈기념관, 필경사(당진시) 등 6곳이 거론되고 있으나 아직은 오리무중인 상태다. 어느 곳으로 결정될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용역 결과가 나온 이후에나 최종 결정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홍성군과 예산군은 벌써부터 유치전에 뛰어들어 갈등 양상을 보이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충남도가 ‘충남의병기념관’ 건립 후보지로 ‘충남보훈관’ 인근 부지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 분위기다. 충남도가 내포신도시 홍예공원 명품화 사업의 일환으로 ‘충남의병기념관’ 건립 후보지를 홍성군과 예산군 경계지역인 내포신도시의 충남보훈관 옆 부지를 ‘제3후보지’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충남의병기념관을 어디에 어떻게 건립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지만, 거기에 충남의 항일·의병정신을 어떠한 방향으로 어떻게 담을까의 문제가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홍주성에 있는 ‘병오항일의병기념비’.

■독립운동의 성지 충남, 의병기념관은 없다
충절의 고장 충남은 일제의 국권 찬탈에 가장 강력히 저항했던 지역이다. 충남에서는 홍주의병에 앞서 공주부 진잠현감 출신 문석봉이 공주와 유성(현 대전광역시 유성)에서 명성황후 시해와 폐비조칙을 ‘천고에 없는 대변(大變)’이라며 반발해 ‘국수보복(國讐報復)’을 기치로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단발령이 공포되자 지산 김복한과 그의 이종형인 복암 이설, 그리고 홍주향교 전교인 안병찬 등이 주동이 되어 홍주(洪州)에서 거의(擧義)하게 됐다. 충남의 을미의병을 주도한 이들은 홍주향교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남당 한원진의 호론계열 유림들이었다. 의병을 이끈 지산 김복한은 홍주향교 도유사이고 의병에 참여한 서승태 역시 홍주향교 도유사 출신이며 홍주향교는 항일의병의 진원지였다. 따라서 독립운동가나 의병을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이고 전체 참여인원으로도 경북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곳이다. 의병 활동만 보더라도 전국적으로 등록된 의병 가운데 5번째로 많은 의병을 배출했다. 하지만 의병활동에 비해 충남에는 이와 관련한 단 한 곳의 기념관조차 없는 실정이다. 해마다 6월은 보훈의 달이고 6월 1일은 의병의 날이다. 의병은 외적에 맞서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비정규군을 말한다. 

충남의 경우 의병 독립유공자가 161명으로 전국 2099명 대비 7.67%에 달한다. 그러나 의병기념관은 없는 실정이었다. 충남의병기념관 건립은 민선 8기 김태흠 충남지사의 공약에서 출발하고 있다. 충남도 내에 산재한 항일 유적지 등 관련 자료를 한 곳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보존하기 위해 의병기념관을 건립한다는 취지다.특히 충남 5대 정신(충효·절의·예의·선비·개척) 보급과 고양, 항일 의병정신을 미래세대에 계승하는 일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사업 기간은 2023년~2027년이며 도비 250억 원을 들여 추진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충청남도는 지난해 10월, 충남의병기념관의 위치를 포함한 건립 전반을 논의 할 용역이 착수됐다. 

용역은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수행하며, 기간은 올 3월까지다. 용역은 △충남 의병의 역사 현황 및 유물 조사 △의병기념관 건립 위치 및 운영 방안 △기념관과 도내 보훈시설의 연계 방안 마련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충남의병기념관 건립은 민선 8기 충남도정의 공약 사업으로, 도내 산재한 항일 유적을 한 곳에 모으고 체계적으로 관리·보존해 항일 의병정신을 미래세대에 전승하는 것이 목표다. 

충남의 항일정신을 상징하는 장소인 만큼 대표성을 띤 지역에 건립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민선 8기 충남도정 출범 초기부터 예산군과 홍성군의 유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어 관심이 쏠리는 형국이다.

국내의 항일 독립운동 관련 기념관은 전국적으로 대략 70여 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기념 대상별로 인물 52개소, 사건 10개소, 공간 2개소, 인물과 사건 전체를 다루는 곳이 6개소 등으로 분류되고 있어 기념관의 기념 대상이 사건이나 지역 역사보다 주로 인물 위주로 설정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충남도가 용역을 통한 기본구상계획을 통해 건립 위치에 대한 실마리가 풀릴지 주목되는 가운데, 도청 관계자는 이번 용역은 큰 틀에서 의병기념관 건립의 구상을 세우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홍주의병 기념탑
홍주의병 기념탑.

■“충남 독립유공자 전국서 두 번째로 많다”
의병(義兵)은 외적에 맞서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비정규군을 말하며,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한말에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임진의병은 조정의 지원을 받으며 관군과 연합해 싸웠지만, 한말의병은 조정의 탄압을 받으며 어렵게 지속됐다. 한말의병은 왕을 지키는 근왕적(勤王的) 성격에서 나라를 지키고 백성의 안전을 도모하는 보국안민(輔國安民) 성격으로 바뀌어갔다. 그 때문에 일본군과 관군의 동시 공격을 받아 많은 희생을 치렀던 것이다. 

충남의 한말의병은 유성에서 시작됐다.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1895년)이 도화선이 됐다. 시해사건 한 달 후 일어난 유성의병은 공주 소학동에서 매복한 관군에게 패퇴했다. 이후 단발령이 발표되고 의병은 확산됐다. 홍주의병의 주축은 김복한·이설을 중심으로 한 남당학파와 재지 유생층인 안창식·안병찬 부자 등으로 구성됐다. 

1차 홍주의병은 관찰사 이승우의 배신으로 실패하고,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재점화된 2차 홍주의병은 민종식을 총수로 홍주성을 점령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때 예산·청양·부여 일대에서 대거 참여했다. 1907년 군대 강제해산 이후 충남지역 의병은 공주·아산권 등 충남 전 지역에 걸쳐 전개되는 면모를 보인다. 

홍주의병이 의병전쟁으로 확대되고, 나중에 독립전쟁으로 이어지면서 홍주의병이 충남의병으로써 갖는 의미가 어느 의병보다도 크다하겠다. 1906년 1월 최익현이 개최한 논산 궐리사 회합이 의병 확산에 큰 역할을 했는데, 회합에는 유생 100여 명이 참석했고, 그중 29명이 각 향교에 보낼 의병 동참호소문에 서명했다고 한다. 충남의병 기념사업은 충남의병이 당색과 신분의 차이를 극복한 민족통합적 면모를 보인 점과 독립정신으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충남의 항일정신과 독립정신을 기념할 공간의 중요성 측면에서도 ‘충남의병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것이 현실의 문제이다. “충남의 독립유공자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다”는 점에도 주목할 일이다. 따라서 지역의 항일운동에 대한 사료와 기억을 발굴, 수집, 연구하는 일을 시민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기념공간 마련과 함께 그에 따른 체계적인 운영 조직이 꼭 필요한 실정이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지역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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