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홍성고 명화(名畫) ‘금강산 보덕굴’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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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홍성고 명화(名畫) ‘금강산 보덕굴’을 찾습니다”
  • 한기원 기자
  • 승인 2023.06.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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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이응노 홍성고에 희사, 홍성고 강당서 1979년 도난·분실
미술전문지 ‘월간 미술’ 1989년 4월 호에 ‘서울 개인 소장’ 소개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고암의 ‘금강산 보덕굴’ 기증 계기로 ‘관심’
지난 16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홍성군에 기증한 고암 이응노 화백의 작품 ‘금강산 보덕굴(171×120cm)’.

지난 16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자신이 직접 구입한 고암 이응노 화백의 작품인 ‘금강산 보덕굴(171×120cm)’을 홍성군에 기증했다.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의 저자로도 유명한 유홍준 전 청장은 지난 2011년 이응노미술관 건립에도 운영추진위원장으로 관여해 왔으며, 이후로도 홍성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유 전 청장이 홍성군에 작품을 기증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유 전 청장은 지난 2011년 심향 박승무의 작품 ‘천첩운산도’와 고암 이응노 화백의 작품 ‘대나무문양 도배지’를 각각 기증했다.

이번에 유홍준 전 청장이 고암 이응노 화백의 작품 ‘금강산 보덕굴’을 기증함으로써 지난 1979년까지 홍성고등학교 강당(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72호)에 걸려 있던 고암 이응노 화백이 기증했던 ‘금강산 보덕굴’이 도난·분실된 지 44년 만에 작품은 다르지만 같은 ‘금강산 보덕굴’을 그린 작품이 고향인 홍성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찾으며, 반기고 있는 분위기다. 금강산 보덕굴은 금강산 내금강을 표현한 작품으로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암 이응노 화백은 1904년 충남 홍성 홍북에서 태어나 전 세계를 무대로 끊임없는 실험과 탐구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세계적인 화가로 손꼽고 있다. 시대의 아픔으로 고초를 겪으면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며 작품활동을 이어오던 이응노 화백은 지난 19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지난 1979년 홍성고에서 도난·분실한 고암 이응노 화백의 ‘금강산 보덕굴(132x117.5㎝)’.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이번에 기증한 고암 이응노 화백의 ‘금강산 보덕굴’ 작품과 관련해 홍성고 동문들은 “참으로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묘한 우연”이라면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께서 기증해 주신 작품이 ‘금강산 보덕굴’이라는 점에서 더욱 더 놀라운 인연이며, 기막힌 우연이 아닌가 싶다. 홍성고 강당에서 도난당해 잃어버리면서 아주 잊혀질뻔했던 ‘잃어버린 홍성고등학교의 명화(名畫), 금강산 보덕굴’이 40여 년 만에 살아 돌아온 기분이고, 다시 볼 수 있다는 마음에서 정말로 기쁘고 고마운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문가 평가위원단은 이번에 유 전 청장이 기증한 ‘금강산 보덕굴’에 대해 1950년 중·후반 작품으로 실제 모습을 추상적 흥취로 쾌활하게 그려내 반추상이 잘 표현된 수묵담채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잃어버린 홍성고등학교의 명화(名畫), 금강산 보덕굴’의 작품을 고암 이응노 화백이 1952년에 홍성고등학교에 기증한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는 만큼, 유 전 청장이 기증한 ‘금강산 보덕굴’의 그림을 비교·판단해 볼 때 구도와 필법, 시기 등이 너무 흡사해 보여 1950년 초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지난 1979년에 도난·분실된 홍성고등학교의 명화 ‘금강산 보덕굴(132×117.5cm)’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홍성고등학교 강당에는 정문으로 들어오면 왼쪽에는 고암 이응노 화백이 1952년에 기증한 작품인 ‘금강산 보덕굴’이 오른쪽에는 같은 1952년에 당시 홍성중학교 미술교사로 있던 단고(丹皐) 조중현(趙重顯) 화백이 당시 홍성고 뒷산인 매봉제의 상징으로 한지에 채색화로 그려진 ‘독수리(130×152cm)’그림이 걸려 있었다.

고암 이응노 화백의 ‘금강산 보덕굴’과 단고 조중현 화백의 ‘독수리’ 그림은 홍성고가 강당에서 도서관, 체육관 등으로 사용 용도가 바뀌어도 진리를 탐구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았고, 조국 강산의 아름다운 모습과 그 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무한의 정기(精氣)를 분출하기도 했다고 평했던 작품이다. 특히 도난당한 고암 이응노 화백의 ‘금강산 보덕굴’ 작품은 홍성고 졸업생과 재학생들에게 자긍심을 높여주면서 우리나라 산수(山水)의 정기를 보여주던 그림이라고 평가했던 작품이었다.

1979년 어느 날 ‘액자만 남겨둔 채 작품만 면도칼로 오려서 가져간’ 도난당했던 ‘금강산 보덕굴’의 작품 사진이 미술전문잡지 ‘월간 미술’ 1989년 4월호에 나타난 것은 또 한 번의 사건이었다. 다만 ‘서울 개인 소장’이라고만 소개된 채 지면에 소개돼 나타났던 것이다. 순간 홍성고 동문들과 교육 가족의 반가움은 분노로 뒤바뀌고 말았으며, 이후로 지금까지 어디에 있는지조차 소재파악을 모른 채 44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홍성고 동문들과 교육 가족들은 이 그림을 ‘잃어버린 홍성고등학교의 명화(名畫), 금강산 보덕굴’이라 부르면서 귀환의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응노 화백의 ‘잃어버린 홍성고등학교의 명화(名畫), 금강산 보덕굴’과 조중현 화백의 ‘독수리’는 홍성고등학교의 모든 재학생들에게 꿈과 낭만을 키워줬을 뿐만 아니라 졸업생들에게는 영원한 추억으로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그림이었다. 

“꿈과 낭만, 영원한 추억의 그림 ‘금강산 보덕굴’을 찾습니다.” 홍성고등학교의 재학생들과 졸업생, 그리고 교육가족 모두의 희망 가득한 기다림임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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