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의 ‘수라’를 기대하며
상태바
홍성의 ‘수라’를 기대하며
  • 신은미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8.17 08: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6월 새만금 갯벌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수라’가 홍성의 영화관에서 상영됐다. 홍성뿐 아니라 전국 100여 개의 영화관에서 순수하게 시민들의 펀딩만으로 동시개봉 했다. 세계 최장 규모이자 환경적으로 최악인 새만금방조제가 만들어진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넘게 갯벌을 관찰하고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감응한 것이다. 폭력과 파괴를 이겨낸 생명의 아름다움과 시민생태조사단의 우직함, 그리고 갯벌과 한 몸인 주민들을 보며 몇 차례나 눈물이 났다. 흥행에 연연하지 않고 말해야 할 것을 말하는 영화를 만든 감독과 제작진에 감사인사를 전한다. 한편 이런 영화에 지지를 보내 작은 지역에서의 상영을 성공시키고 함께 관람한 100여 명의 홍성군민이 자랑스럽다. 상영회 이후 지역의 몇몇 학교는 영화관에서의 단체 관람이나 마을에서의 공동체 상영을 계획하고 있다. 새만금 갯벌 ‘수라’에 직접 가보자는 제안도 나온다. 후원금이 모아지기도 했다. 

‘홍성에도 ‘수라’ 같은 사례가 있을까? 환경운동을 하다 보니, ‘수라’의 이야기를 우리 지역에 대입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홍성의 자연을 지키기 위한 환경운동은 무엇이 있었나’, ‘생태계의 변화를 느끼고 기록하고 있나’, ‘꾸준히 관찰하고 지켜야 하는 곳은 어디인가’, ‘당연하다고 여겨 소홀히 대한 생명은 없나’ 등. 영화 ‘수라’는 특별한 갯벌의 이야기지만, 생명이 존재하는 모든 곳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지역의 자연과 생태를 관찰하고 기록해 역사로 만드는 일의 위대함을 보았다. 그것은 결국은 우리가 마주하는 생명과의 연결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이야기일 것이다.  

영화 ‘수라’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갈산면 오두리였다. 지난 2019년과 2020년, 갈산 오두리 산업폐기물처리장 반대운동이 있었다. 주민들의 절절한 발언을 통해 천수만과 와룡천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 새롭게 알았다. 민간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와룡천에 다양한 물고기들이 살고 새들이 찾아왔다는데, 아쉽게도 2006년까지의 기록만 있다. 수리부엉이가 있고 이따금 황새도 들르는 것을 주민들이 목격했다고 하는데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없다.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으면, 없는 것이 되고 마는 세상이다. 온 주민과 행정, 지역 단체와 기관이 함께 지역을 지켜낸 좋은 사례가 ‘조사와 기록’이라는 후속작업을 통해 남겨지면 좋겠다.      

지난해 장곡 골프장 반대 운동을 할 때는 백제부흥운동의 주요 근거지인 주류성을 통해 장곡지역의 역사를 재발견했다. 마을뒷산이 골프장이 아니라, 역사유적지이자 주민들의 휴식처, 생물들의 서식지이자 탄소흡수원으로 남아야 하며, 공유지가 개인의 영리사업, 게다가 반환경사업에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도 다 함께 확인했다. 원치 않는 방식으로 개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민들은 마을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방법을 택했다.

역재방죽은 오래 전부터 지역의 여러 단체가 관심을 가지고 주변 생태와 가시연꽃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곳이다. 역재방죽은 천연기념물 가시연꽃의 최북단 서식지이기도 하다. 기후와 주변 생물에 따라 어느 해에는 꽃이 피고 어느 해에는 피지 않는다. 가시연꽃만이 소중해서가 아니라 170여 종의 다양한 생물들이 조화롭게 서식하는 환경으로서 가시연꽃이 필요한 것이다. 

이밖에도 3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갈산 대사리 석산, 모노레일과 구름다리 설치로 개발이 예상되는 용봉산, 오랜 축산업과 전염병으로 오염이 축적되는 토양과 물 등 우리가 ‘수라’의 관점으로 지켜봐야 할 곳이 많이 있다. 물론 끝끝내 생명을 기다리고 찾아내야 할 곳이기도 하다.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은 2021년부터 3년째 예산 덕산면 대치천의 수질 및 생태를 조사하고 있다. 주민들은 대치천 상류에 세탁공장이 들어서지 못하게 하려고 주민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소송까지 했는데, 결국 세탁공장은 허가가 났다. 그렇지만 주민대책위원회는 해산하지 않고 세탁공장이 하천을 오염시키는지 감시하기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지역 하천의 수질이 왜, 어떻게 변하는지 모니터링하고 물고기를 비롯한 물속 생물과 하천 주변 식물까지 조사한다. 처음에는 외부 전문가가 와서 조사하고 강의했지만, 이제는 주민들이 직접 조사단이 됐다. 지역 초등학교와 연계해 강사로 활동하며 아이들과 함께 지역하천을 탐험한다. 오염시설을 반대하던 일이 지역을 살피고 가꾸는 일로 바뀐 것이다. 이 싸움은 진 걸까, 이긴 걸까. 나는 이곳이 우리의 작은 ‘수라’라고 생각한다. 세탁공장은 들어왔지만, 대치천의 생명들과는 계속 연결되기 때문이다.

환경운동을 하다 보면 ‘아, 졌구나’ 할 때가 많다. 괜하게 애만 쓰다가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고 다 끝나버린 것 같아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볼 줄 알고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생명이길 포기하지 않는 한, 아직은 진 게 아니다. 수많은 ‘수라’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일 뿐이다.

신은미<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