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받지 않고 공생하는 지역사회의 필요성
상태바
차별받지 않고 공생하는 지역사회의 필요성
  • 김진욱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10.19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의 인구규제로 ‘둘만 낳아 잘 기르라’ 하던 때 한 독립유공자 후손이 “장차 인구가 나라의 경쟁력이니 최소 너 댓은 낳아야 한다”고 했다. 규제 수단으로 가정마다 피임 기구를 보급하고 예비군 훈련 때면 정관수술을 권하던 시책에 정면 배치됐다. 그 당시는 역설(paradox)이었다. 계속 낮아지는 합계출산율은 지방소멸을 넘어 인구재앙으로 다가오지만 정부의 인구정책은 여전히 조족지혈이고 개선 여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인구 오너스 시기에 여러 가지 대안들이 나와도 백약이 무효이다. 반복적인 땜질 처방으로 효과성은 기대조차 어렵다. 위정자들은 대상자들의 요구를 적절히 수렴해야지만 이익집단 눈치 보기에 급급하여 혁명적인 방법은 쉽잖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하버드대학의 골딘(Claudia Goldin) 교수의 연구성과는 눈여겨볼 만하다. ‘노동시장에서의 남녀 임금 격차 원인’을 연구한 공로다. 미국 여성의 노동 참여는 꾸준히 상승한 게 아니라, ‘U자형’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19세기 초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하며 결혼한 여성의 노동참여율은 일정 기간 줄었다가, 20세기 초 서비스업 성장으로 다시 부흥했다는 것이다. 취업 직후에 비슷했던 남녀 임금도 차츰 격차가 벌어지는데, 특히 여성이 첫 아이를 출산한 직후에 가장 급격했고, 주말과 여가를 반납하고 쉼 없이 일해야 더 많은 소득을 얻는 ‘탐욕의 일자리(Greedy work)’ 문화가 이런 현상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즉 사회에서 주어지는 역할과 여성의 생애에 따라 노동 참여와 임금이 달라진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 남녀 임금 격차는 30%를 웃돌아 OECD 최하위고 올 상반기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인 0.7명의 재앙을 기록했다. 근로자들의 최근 실질 임금수준은 작년과 비교해 볼 때 통계적으로 약 2% 정도 떨어졌다. 명목 임금은 낮게 증가하는 데 비해 물가 상승률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근로자들의 실질 임금은 감소했는데 명목 시간당 임금은 증가했지만 물가 상승률이 매우 높아 구매력의 축소로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저소득층은 저축이나 대출로 물가 변동에 대응이 어렵기 때문에, 세제 혜택이나 급여 인상으로 직접 지원해야 하지만 저(低)성장 기조에 맞물려 임금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일전부터 동네 현수막에 ‘외국인 근로자 일당을 제한하자’는 내용이 걸렸다. 대부분 일용직에 종사하는 외국인에게 업무의 성격과 내용에는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보수를 정하자는 것도 사실상 차별이지만, 임금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는데 더 이상 시장에 맡겨놓지 말자는 이유는 바로 역차별과 제도적 장치의 부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최저임금이 적용되면서 기업들은 이미 경쟁력이 약해졌다는 볼멘소리다. 싼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다. 농촌 마을까지 치솟는 일당을 제한하자는 것은 농촌의 일손 부족이 얼마나 심각한지 피부로 느끼게 한다. 제1차산업 전반에 동원된 외국인 근로자가 절대적인 현 실정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대학의 형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외국 젊은이들의 입국 문턱이 점점 높아지는 틈새에 유학원들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면서 마구잡이로 모집된 유학생들이 대학의 빈자리를 잘 채워 주고 있다. 한국어 자격과 학습 의욕을 충분히 갖추고 우수한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양질의 인력으로 양성되면 노동시장에 선순환구조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3D업종의 대체인력 정도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 필요한 우수 인재로 거듭날 수 있고, 지역에 취업해 사회구성원으로 역할을 다해 준다면 그 지역사회는 그만큼 경쟁력 확보는 물론 지역소멸 우려도 줄어들 것이다. 

이미 학령인구 감소로 공동화된 학사촌의 원룸을 가득 채워 줬고, 부족한 대학의 입학자원을 대체하는 데 일조했다. 엄연한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적은 역할을 하기 시작한 이상 이제 그들과 생존 방법을 공유하면서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오랫동안 정착할 수 있는 기반과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 함께하는 주민이자 반듯한 직업인으로서 공존 방안을 수립해야 마땅하다. 그저 동네 편의점 한두 곳 살려주고 원룸이나 채워 주면서 주민들 눈치나 살피는 이방인보다는 ‘멀리 있는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는 속담을 실천해야 할 때이다. 해답도 없는 출산 증가를 기대하기보다는 이미 우리 사회에 관심이 큰 외국인 노동자와 젊은 유학생들에게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과 여유를 갖게 한다면 소멸 예방의 혜안이 아닐까 싶다.

다만 염두에 둬야 할 점은 결혼이주여성 증가로 지역은 활성화를 경험했지만, 교육 및 소득 보장과 복지 부담이 그만큼 커졌다. 2세들은 문화와 언어 부적응으로 어려움이 있으며 가족해체로 생긴 돌봄비용은 고스란히 사회적 부담으로 돌아왔다. 상당수의 외국인 근로자는 체류비와 생필품비를 제외한 대부분을 본국에 송금하면서 지역사회 선순환 경제에 도움이 안 되고 있다. 이들과 공생은 여러 가지 걸림에도 불구하고 이제 더 이상 분리해서 대안을 세우기는 힘들어졌다. 농어촌이나 자영업자들 대부분이 외국인 근로자 도움 없이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고물가와 고임금으로 성장동력을 점차 잃어가는 상황에서 지역사회를 건사할 지혜를 함께 모색해야 할 판이다.

때로는 어르신들의 경험과 선각자들의 지혜 그리고 역설까지도 적극 경청하면서 전문가들의 다양한 시각과 각계각층의 고견을 겸허하게 수렴한 후 중장기 인구계획을 신중하게 수립한다면 지역의 계속성과 합계출산율은 더 이상 주요 이슈(issue)로 제기되지 못할 것이다. 

120년 동안 미국 여성을 대상으로 노동 참여와 출산의 연계성을 분석한 골딘의 연구 성과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커 보인다. 정부를 비롯해 공사(公私)조직에 만연한 여성 차별과 여전히 두텁게 드리워진 유리천장을 하루빨리 걷어내야 한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소득이 보장되고 사회 곳곳에서 차별받지 않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여성들에게도 합당한 사회적 지위를 부여할 때 저출산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올바르게 평가되고 존중될 때 지방소멸도 자연스럽게 예방될 수 있다.
 

김진욱 <혜전대학교 교양과 교수, 행정학 박사,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