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의 글쓰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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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의 글쓰기》를 읽고
  • 노승희 <사과꽃발도르프학교 담임교사>
  • 승인 2023.12.07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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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꽃발도르프학교 2학년 우리 반 아이들은 이제 막 글쓰기의 발걸음을 떼었다. 이번 주에 하고 있는 수업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엄마아빠에게 어릴 때 살았던 집의 풍경을 이야기해달라고 해 듣고 온다. 들은 이야기를 반 친구들에게 전한다. 전한 이야기를 글로 쓴다.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글로 정리하는 흐름 속에서 이야기를 다루는 기본 자세를 익히는 것이다. 보통의 초등학교에서는 1학년이면 한글을 읽고 쓸 줄 안다고 여기고 날마다 일기 쓰기 숙제가 있고 여러 종류의 글쓰기를 하곤 한다. 

하지만 1학년 한 해 동안 한글을 그림과 함께 차근차근 배워온 우리 학교 아이들은 3학년이 되어서 본격적인 자신의 글쓰기를 시작한다. 아이들의 3학년을 앞둔 겨울, 우리 아이들의 글쓰기 교육은 어떻게 달라야 할까. 
 

이오덕/양철복/1만 6000원.
이오덕/양철복/1만 6000원.

아이들을 위한 글쓰기 교육하면 익숙하게 이름을 들은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찾아봤다.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 책 선집의 ‘글쓰기의 시작’이라는 이 책으로 글쓰기 교육을 위한 나의 공부를 시작해 본다. 이오덕 선생님은 책의 앞부분에서 글쓰기 교육의 목표를 분명하게 이야기하신다. 글쓰기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키우는 데 있고, 그것이 곧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것이라고. 아이들이 글쓰기로 스스로의 삶을 가꾸고, 교육자인 우리는 글쓰기 교육으로 아이들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키울 수 있다니. 글쓰기가 무엇이길래?

이오덕 선생님이 책 속에 담으신 수많은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각각의 글을 쓴 아이들의 삶을 함께 살피는 것이 참 즐거웠다. 지역과 학교명, 이름이 분명하게 나온 글은 좋은 본보기로, ‘여학생 초 5학년’ 이렇게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글을 좋지 않은 본보기로 담았다. 

좋지 않은 본보기로 담은 아이들의 글은 모두 정직하게 쓰지 못한 글이다. 대부분 1970~90년대의 초등학생 글이라 하늘 같은 스승의 은혜를 외치며, 우리 학교는 항상 아름답고 깨끗한 자랑스러운 학교여야 하고, 우리 부모님은 나를 죽도록 때려도 우리를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는 뻔한 말들을 담는 식이다. 대개는 어른의 글을 흉내낸 것이고 ‘oo은 이래야 해’하는 죽은 관념과 지식을 강요받아 담은 글이다. 그렇게 거짓된 글을 써야 하는 아이들은 어떤 삶 속에서 살고 있을지, 그 글을 쓴 뒤에 마음은 어떨지를 생각해 본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어른의 글만을 교과서에 담고, 죽은 관념과 지식을 담은 보고서, 논문 등의 글을 쓰게 하고 수많은 한자어, 외래어를 담은 있어 보이는 글을 쓰게 한다. 이런 글을 쓰고 아이들은 진정으로 성장했을까?

아이들은 어른들이 간섭하지 않고 그냥 두면 자기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괴로운 마음은 괴로운 대로 표현한다. 하지만 학교의 교사들과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세상을 부정해서 보고 비판한다고, ‘바람직하게’ 써야 한다고 교육하며 아이들이 솔직하게 글 쓰는 것을 방해한다. 아이들은 아이다움을 잃는다. 책에서 이오덕 선생님이 좋은 본보기로 든 많은 글들이 학교를, 선생님을, 부모를 모욕한다며 버려질 뻔한 위기에 처한 글들이다. 그 글들을 읽으면 아이들의 슬프고 외롭고 처량하고 처절한 마음들이 고스란히 느껴지지만 사회는 그런 부정적인 글을 원치 않았다. 이런 교육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가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 괴로운 이야기, 고통스러운 마음을 피하게만 된다.

아이들의 삶을 가꾸기 위한 글쓰기가 아이들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삶을 직면하고 가꿀 수 있을까. 더구나 내 마음이 온전히 담기지 못한 정직하지 못한 글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가닿을 수 있을까.

우리들 나날의 삶, 내가 평소 가지고 있는 생각과 느낌, 이런 것이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이구나! 

이 책에는 글의 제목, 얼거리 잡기와 같은 꼭지들로 글쓰기 교육을 할 교육자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담겨있지만, 위의 한 문장이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이 되었다. 아이들을 만나는 어른들의 가장 큰 역할은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어느 것이 가치있는 것인가, 세상을 보는 눈을 전해주는 것 아닐까.

가장 가까이에 있는 너의 삶이, 너의 생각과 느낌이 가치있는 것이야. 라고 믿어주고 지켜주는 어른이 있다면 그 아이의 눈은 참으로 빛날 것이다. 아이다움이 지켜진 아이들의 살아있는 눈빛과 그 눈으로 바라본 삶이 담긴 글을 읽고 싶다. 우리 사과꽃 아이들에게 글쓰기가 삶 속에 함께하는 친구가 될 수 있기를. 아이들의 글이 보여줄 그들의 삶과 생각, 느낌이 기대된다.

*2023년 12월 8일 금요일 오후 6시, 예산해봄센터에서 사과꽃발도르프학교의 2024년 신편입학설명회와 사과꽃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과꽃’의 상영회가 열립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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