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끝은 신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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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끝은 신의 시작!
  • 주호창 <광천노인대학장>
  • 승인 2023.12.07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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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몇십 년을 보냈던 12월이 2023년도의 마지막 달력을 넘기면서 끝과 시작이라는 말이 새삼 의미 있게 뇌리에 되새겨진다.

우리나라 말에 ‘끝머리(끄트머리)’는 끝이라는 뜻도 있지만 첫머리라는 뜻도 있다. 하루에 밤의 끝이 아침의 시작이고 한해의 끝날이 새해의 첫날이 되는 것처럼 인간적으로 포기할 때 신의 섭리가 역사하기도 하는 것 같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처럼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물에 빠진 사람이 위급할 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듯이 지금 나도 그런 처지이다.

그동안 병실에서 침식을 같이 하며 홍성도서관에서 도서를 대여했는데 건양대 설립자인 김희수 총장의 《여든의 청년이 스무 살 청년에게》를 읽으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이어서 《내가 만난 하나님》(이화숙)에서 “한 사람의 꿈은 이상이지만 여러 사람의 꿈은 현실이 된다”라는 글도 읽었다.

그리고 《1분의 기적》에서 “내가 쓰려고 한 것이 아니고 책이 나를 찾아 왔다”는 말을 보고 “괴테가 파우스트를 쓴 것이 아니고 파우스트가 괴테를 만들었다”는 말이 떠오른다.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박성현)과 《바라봄의 기적》(주대준)에서 “기적의 시작은 만남이다”라는 말로 위로를 받았다.

《다시 시작하는 힘》(전병욱)에 “하늘의 능력을 힘입어 다시 시작하라”라는 말에 아마도 지금까지의 삶에 새로운 각오와 다짐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이어서 《인생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라》(서동식)는 책은 사람의 일생은 마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에 비유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며 방향을 바로 잡는 것이 먼저이기에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하는 말과 같다.

이쯤해서 <마지막 잎새>라는 작품이 생각나는데 폐렴환자인 여성이 창밖의 낙엽을 보면서 자기의 운명처럼 느끼게 됐고 마지막 잎 새가 떨어지는 날 자기도 함께 마지막을 고하게 될 것이라 믿게 됐다. 이때 어느 화가가 벽에 그린 잎 새를 보면서 그 여인은 회복력과 희망을 갖고 연명했다는 내용의 글도 있다

《광야를 읽다》(이진희)의 “광야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다, 인생의 광야는 아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이다”라는 문구에서 광야 같은 인생행로는 사막을 생각하게 되는데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걷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들에게는 심한 갈증과 피곤함에 지칠대로 지쳐 있을 때 앞에 보이는 무덤이 하나 있었다. 그 무덤을 발견한 아들은 “아빠, 저것 봐! 필경 어떤 사람이 사막을 횡단하다가 지쳐서 죽었나? 봐, 이제 그만 뒤돌아 가요.”

이때 아버지는 “아니다, 저기 무덤이 있다는 것은 조금만 가면 어디엔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는 증거야.” 

조금만 참고 견디어 보자고 위로해서 걷다 보니 얼마 후에 정말 마을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쩌면 우리네 삶의 여정에도 이런 경우가 허다하고 생각의 차이가 있다.

이제 오늘(7일) 광천노인대학 졸업을 하게 되는데 졸업은 끝이 아니라 다음을 시작하는 창업이라는 말과도 같다.

이처럼 절망 뒤에는 희망이 고난 뒤에는 행복이 슬픔이 지나면 기쁨이 찾아오듯이 우리네 인생살이도 희비의 쌍곡선과 파란만장한 사연들이 씨줄과 날줄로 이어지는 것이라 생각이 된다.
우리는 주어진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조용히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하겠다.

어느 때 숨이 차고 열이 나면 축 늘어진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내가 대신 그 자리에 눕고 싶은 연민의 정은 부부이기 때문일까!


주호창 <광천노인대학장, 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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