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곳’이 되면 ‘지역소멸’ 걱정은 그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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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은 곳’이 되면 ‘지역소멸’ 걱정은 그 다음
  • 신은미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01.1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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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은 올 1월 1일부터 관내 농어촌버스를 전면 무료로 운행한다. 주민들은 연령이나 소득수준, 주소지 등에 상관없이 농어촌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봉화군을 찾은 관광객도 포함된다. 농어촌버스 무료 운행은 경북 청송군, 전남 완도군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 이 3개 지역은 대표적인 인구감소지역이자 소멸지수가 높은 지역이다. 지역소멸의 위기를 주민 편의와 복지의 관점에서 ‘대중교통’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2023년 1월 전국 최초로 농어촌버스 무료 운행을 시작한 청송군의 대중교통 이용률은 25%까지 증가했고 주민만족도도 높다고 한다.

태안군은 올해부터 청소차가 들어가지 않는 지역을 순회하며 영농폐기물을 수거·운반하는 ‘찾아가는 영농폐기물 수거 사업’을 시행한다. 63명의 청소인력을 활용해 마을별 거점을 찾아다니며 폐비닐·부직포·차광망·모판·농약 줄·물 호스 등의 영농폐기물을 수거한다. 마을별 수거일을 지정하고 읍·면으로부터 영농폐기물 수거·운반 요청이 접수되면 즉시 처리할 수 있는 연락체계도 구축한다. 농촌의 골칫덩어리인 영농폐기물 문제를 적극 대처해, 영농폐기물이 방치·소각되는 것을 방지하고 쓰레기 불법 소각으로 인한 화재 발생과 환경오염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는 동시에 주민 불편을 줄이자는 취지다. 

반갑고 고마운 두 정책의 공통점은 생활밀착형이며, 농촌지역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해 삶의 질을 높이고 환경·기후 문제까지 고려했다는 점이다. 많은 지역에서 지역활성화와 인구감소 대응 정책으로 ‘관광’과 ‘축제’을 꼽고 있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관광·축제 사업은 엄청난 예산이 수반되고 대규모 토건·개발 사업 위주로 진행되며, 지역주민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관광도 필요하고 축제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지역주민의 삶을 얼마나 낫게 만들고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가꾸는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세금이 왕창 들어가고 산과 강을 훼손해 조성하는 관광지, 외지 전문가가 기획하고 외지 사람들이 다녀가는 축제는 쓰레기와 분란이 남고 창출된 부는 외부로 유출될 수밖에 없다. 경제활성화와 인구유입을 목표로 하지만 사람도 돈도 남기지 못하고 지역을 피폐하게 만들거나 주민들을 주변부에 머물게 한다.

올해 문을 여는 ‘속동전망대 복합레저타워’의 총사업비는 총 81억 원. 홍성군 2024년 예산안에는 ‘찾아오는 문화관광 분야’에 722억 원이 배정돼 있다. ‘농어촌버스 무료 운행’에 소요되는 예산은 청송군의 경우 3억 5000만 원, 봉화군의 경우 4억 2000만 원이다. 태안군의 ‘찾아가는 영농폐기물 수거 사업’은 1억 2700만 원. 예산이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지역의 우선순위가 보이고 지속가능성이 결정된다.

주민들이 지역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만한 곳이라고 여길 때 비로소 지역소멸이나 인구감소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2023년 읍면 주민자치회에서 선정된 몇몇 의제를 보면 주민들은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항면은 영농부산물 파쇄 지원, 장곡면은 산책로 조성, 홍동면은 생활폐기물 처리를 1순위 의제로 꼽았다. 지역주민들이 공감할만한 의제이며 예산도 많이 들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청송군·봉화군의 ‘농어촌버스 무료 정책’, 태안군의 ‘찾아가는 영농폐기물 수거 지원 사업’과 일맥상통한다. 

조상 대대로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대한 존중, 우리 지역의 산과 하천, 농지에 대한 애정, 공동체적으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가짐 없이는 절대 지역소멸을 막을 수 없다.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농촌을 새로운 삶과 생업의 터전으로 선택한 귀농·귀촌인들이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으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가 정책 수립의 첫 번째 기준이 되어야 한다. 주민들이 단순한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주체가 될 때 지역은 살기 좋은 곳, 매력적인 곳이 될 것이다. 지역소멸 걱정은 그 다음이다.


신은미<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 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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