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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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읽고
  • 노승희 <사과꽃발도르프학교 담임교사>
  • 승인 2024.01.25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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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새해가 밝았다. 이제는 새로운 나이 계산법이 도입돼 생일마다 나이 계산이 각기 다르게 됐지만, 기존의 방법대로라면 모든 이들이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었다. 19살에서 20살이 되던, 환희에 찬 12월 31일 밤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광화문 한복판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우리 집에 모여 드디어 대놓고 볼 수 있게 된 성인 영화를 보며 성인이 된 날을 기념했던 것 같다. 누구에게나 기뻐야 할 성인이 되는 그날. ‘가난한’ 아이들에게도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저자 강지나는 교사 생활 중 만난 가난한 아이들이 눈에 밟혀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현직 교사이면서 청소년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8명의 아이들을 인터뷰하며 정리해 낸 책이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이다. 우리는 정말로 가난한 아이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그 삶의 궤적을 알고 있을까? 또 어른이 돼서는 어떤 고민을 안고 일상을 살아가는지 알고 있을까? 
 

강지나/돌베개/1만 7500원.

우리 사회는 가난한 아이들이 어른이 된 모습에 대한 클리셰가 있다. 개인의 엄청난 노력으로 자수성가하거나, 부유한 배우자를 운명처럼 만나 여유롭게 살거나. 아니면 지속적으로 범죄에 가담하고 피해자로 노출되는 등 양극의 모습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만난 아이들의 모습은 드라마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다. 8명의 아이들의 배경도 다양하다. 가족을 끔찍이도 챙기는 청년, 특성화고 현장실습을 나갔던 청년, 범죄에 가담했던 청년 등 다양한 아이들이 세상에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8명의 청년 인터뷰를 담은 다음에는 각 청년의 삶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 이슈들을 짚어준다.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검정고시를 치른 후 대학에 진학했지만 다시 우울감과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겪는 소희의 이야기 다음에는 ‘가난과 우울의 연결’을 다룬다. 자신에게 계속 돈을 요구하는 무책임한 부모와 살면서도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영성의 이야기 다음에는 ‘정상가족 프레임’을 다룬다. 덕분에 독자들은 가난한 아이들의 삶의 모습이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바라보게 된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우리 사회의 켜켜이 쌓아온 고질적인 무언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저자에게도 가장 큰 영감을 준 지현의 사례에서 나는 사회가 가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나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 증명할 수 있었다. 적극적인 어머니와 함께 지역사회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후원 등을 요청하며 ‘가난을 자신의 강점으로 둔갑’시키는 지현의 모습에 나는 어느새 가난을 무기로 사는 것은 의존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난은 개인의 잘못, 죄가 아닌 사회적 현상이니 부끄러워할 게 아니다”라는 지현의 인터뷰를 읽으며 볼은 뜨겁게 붉어지는 듯, 머리는 띵하게 울리는 듯했다. 가난을 증명해야만 하는 현상을 만들어낸, 가난을 약한 개인의 문제로 보는 세상에 자신도 모르게 의견을 보태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현은 ‘나’라는 개인의 존재와 가난한 상황을 분리할 줄 아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했다. 

대부분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학교는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학교와 교사가 아이들의 열악한 가정환경을 보완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나마 아이들에게 하교 후 지역아동센터에서 제공되는 생활 지원, 지역사회복지관에 계신 사회복지사들의 학습 지원이 도움이 된 듯했다. 이 책에서 본격적인 교육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생활이 그 모든 것을 처절하게 드러내고 있다. 우리 사회의 교육은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이 아닌 걸러내는 역할만 하고 있다. 현재의 교육 제도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인권, 자아실현, 교육받을 권리보다는 경쟁을 통한 선별 기능을 주로 수행한다(264쪽). 특성화고등학교는 ‘양아치’를 한 번 걸러내는 곳에 불과하다. 선별 기능이 기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찌감치 개인에게 사회적 박탈감을 주고 기본적인 교육비와 기회 제공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구조를 공고히 하는 것 이상의 기여가 있었을까?

저자는 자기 욕망과 사회적 위치를 사고하고 판단하는 ‘성찰하는 힘’이 지현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또한 이전에는 아주 조용하게 집에서만 지내던 연우가 고등학생 때 자신의 흥미를 발견한 이후 적극적으로 진로를 찾아 나서게 된 대에는 그간 조용히 지내며 자신의 내면과 치열하게 만나는 ‘사색하는 시간’이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힘과 시간이 그들의 자아정체감 형성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도, 나도 다시 또 이 아이들의 개인적 노력 때문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성장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우리 교육이 누구나 ‘성찰하는 힘’을 키우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기본적 역량이 박탈된 사람은 내면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내면의 안정과 생존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기 때문에 밖으로 에너지를 돌리지 못한다(261쪽). 누구나 잘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이 번번이 좌절되는 세상을 경험하는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더 이상 개인의 탓으로 돌려선 안 되는 사회적 살인 행위인 빈곤 속에 아이들을 그대로 둘 수 없다. 가난한 아이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궁금하지 않아도 되는 안심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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