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의 존재들-《사이보그가 되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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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의 존재들-《사이보그가 되다》를 읽고
  • 이예이 <홍성녹색당>
  • 승인 2024.04.1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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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만물이 생동한다는 이 계절에 어떤 개구리들은 차에 치여 죽는다. 농촌에서는 산란기를 맞아 이동하는 개구리와 두꺼비들을 목격하게 된다. 매끄러운 차도 위에 등장한 작고 느린 개구리를 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들 양서류는 빠르고 큰 자동차를 멈춰 세운다. 이 ‘심리스’한 세상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심리스(seamless)’란 ‘끊김없는 매끄러움’ 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 책 《사이보그가 되다》에 따르면, “기술을 활용하는 과정이 단순하고, 과정을 이루는 각 단계의 연결이 (이음새가 뜨지 않고) 부드러울 때” 그 기술을 매끄럽다고 평가한다. 나는 속옷 광고에서 이 단어를 처음 접했다. 자동차나 핸드폰 등 디자인 공학 분야에서도 주목해온 개념이며 사물인터넷, 유튜브 등의 SNS 페이지 구동 원리까지 오늘날 산업의 핵심적 가치체계가 됐다. 우리는 점점 ‘끊김’에 참을성을 잃어가고 있고 이는 정확히 구글 등의 기업이 노리는 효과이기도 하다. 

자동차도로는 물리성을 지닌 ‘심리스-스타일’ 중 가장 직관적이고 원시적인 형태가 아닐까. 전국적으로 연결된 도로망은 끊김이 없고 매끄럽다. 도로 위 ‘보편적 존재’는 단연 자동차다. 이처럼 이 기술은 보편을 상정해서 유동성을 확보한다. 보편에서 밀려난 이들은 그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이 명확한 한계에도 심리스-스타일은 전 분야에 걸쳐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시류는 개인의 내면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농촌의 도로는 인도가 부족하다. 때문에 다양한 존재들이 도로를 공유하고 있다. 운전을 하는 동안 심리스함에 대한 중독은 타자에 무감해지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자전거, 전동차, 경운기 같은 느린 탈 것들에 답답함을 느낀다거나 보행자, 개, 개와 걷는 산책자 등을 방해물로 인식하게 되는 순간들이 그렇다. 이 심리스함이 주는 편안함은 나의 내면과 어쩌면 내가 속한 공동체에는 일종의 유해함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렇다고 해서 기술의 발전을 단순히 나쁘다고 단정 짓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에 관한 단순화에 경계하고 있으며, 기술과 인간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성찰한다. 이를테면 키오스크는 시각 장애인과 노인을 소외시키는 기기이지만, 청각장애인인 저자의 경우처럼 대면을 통한 주문보다 기기 이용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단일한 편리함을 추구할 수 없다. 이 책이 기술을 통한 해방이 아닌 돌봄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과학산업은 장애인을 위한다며 ‘장애의 종식’을 선언한다. 심리스-스타일의 궁극적 구현이라 할 수 있는 ‘증강 인간’은 장애 치료 연구에 기원해 ‘발전’하는 수순을 밟는다. 이 산업에 막대한 기금이 투자되고 있는 한편 장애인 교육 · 고용 등 필수 예산은 삭감됐다. 현실을 사는 이들의 필요와 요구는 부정당한 채, 기술은 심리스한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이것이 정말 ‘더 나은 미래’일까? 

이 책은 증강된 인간들이 각자 ‘독립’하는 기술이 아닌, 불완전한 이들이 서로 ‘연립’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자고 말한다. 세상이 심리스해질수록 ‘보편’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자동차에 치이는 도로 위의 다른 존재들처럼 더욱 소외되고 말 것이다. 

“그 미래는 언젠가 노화하고 취약해지고 병들고 의존하게 될 모든 사람이 마주할 미래이기도 하다.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어떤 시기에는 정상성의 범주에서 밀려난 존재가 된다. 단지 그것을 상상하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 사이보그를 이야기하는 것이나 기술과 취약함, 기술과 의존, 기술과 소외를 살피는 것이 결국 모든 이들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다. 독립적이고 유능한 이상적 인간과 달리, 현실의 우리는 누구도 취약함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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