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은 맘껏 대지를 뛰고 뒹굴며 자라야 한다. 인간의 유전자에는 그렇게 하도록 기록돼 있다. 영화에서 가장 찍기 어려운 장면이 울면서 뛰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라 한다. 아이들은 달리게 되면 무조건 웃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뛰고 뒹굴지 않는다.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층간소음 아파트라는 현실이 말해준다.
지난 5월 4~5일 이틀간 홍주성에서 어린이날 행사와 홍성역사인물축제가 함께 열렸고, 많은 어린이들이 참여했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리모컨에 통제되고 있는 듯 부모와 일정거리를 유지하며 움직였다. 기웃기웃 구경꾼으로 부모가 권하는 체험장에서 주어진 과제에 열중할 뿐이었다. 뛰고 뒹굴고 넘어지며 자연과 함께 배워가는 성장과정을 어른들이 빼앗은 것이다.
상업주의는 영재교육이라는 눈속임으로 퍼즐과 블록 등으로 아이들의 신체활동을 묶었고, 무한상상력과 기발한 창의력을 차단했다. 퍼즐과 블록은 이미 최소단위가 정해져 있다. 그래서 엄격히 말하면 상상력과 창의력이 아니다. 같은 형태의 여러 개 블록, 이어지는 조각을 찾아 맞추는 등 이미 주어진 단위들을 활용하는 명령을 이행할 뿐이다. 이에 반해 자연은 같은 모양의 조각도 없고 주어진 예시도 없다.
자연에 나선 아이들은 통제도 없고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막대기에 상상력을 불어 넣고 땅에 금을 그어가며 스스로 신나는 놀이를 만들어 낸다. 혼자서 놀다가 친구를 만나면 둘이 되고 셋 넷으로 늘어나면 편을 가르고 규칙 등을 만들며 자기들만의 작은 사회를 완성시켜 나간다.
활발한 신체활동은 정서는 물론 IQ발달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학자들은 인간의 정적인(아파트, 컴퓨터 등) 생활방식이 IQ에 영향을 줘 인류의 지능이 점차 떨어지고 있음을 경고한다. 인류가 IQ테스트를 시작한 이래 10년 평균 3점씩 상승했다. 이런 현상을 처음 언급한 뉴질랜드 출신의 심리학자 제임스 플린의 이름을 따서 ‘플린효과’라 부른다. 그런데 1990년 초부터 ‘플린효과’는 감소됐고, 2000년에 들어서는 역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세계적으로 활발해진 인구이주와 지능이 낮은 사람들이 아이를 많이 낳는 경향 등으로 반박했다. 하지만 최근 노르웨이 연구팀은 수년에 걸쳐 가족구성원의 IQ를 추적했고, 세대변화에 따라 IQ가 하락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이를 전제로 필자의 어린 시절로 잠시 돌아 가볼까 한다. 추억 속에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끝나지 않은 축구게임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 1973년 가을 해거름 지는 학교운동장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축구시합에 열중하고 있던 우리는 일순 모든 동작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로 하강식에 함께했다. 그때 마침 친구의 발을 떠난 공은 하염없이 굴러 골인이 됐다. 이것을 골로 인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치열한 논쟁이 시작됐다. 그 후 우리는 형들의 조언을 구해가며 일주일가량 논의 끝에 앞으로는 국기하강식 때 들어간 골은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날의 경기는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이스크림 내기가 걸렸기 때문이다.
이때의 아이들은 동네 공터에 모이면 먼저 어떤 놀이를 할 것인가 결정한다. 이후 편을 가르고, 규칙을 정하고, 정해놓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면 합의로 결정하고, 때로는 멱살잡이도 불사한다. 그것도 잠시 붉어졌던 얼굴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또 다른 놀이에 함께한다. 가끔은 어른들의 정치판처럼 마을아이들 전체가 편이 갈라져서 따로 놀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하나가 되면서 말이다. 필자는 이렇게 자란 아이들을 ‘합의형 인간’이라 말한다.
요즘 아이들은 앞서 말한 것 외에도 손에는 스마트폰, 책상의 컴퓨터는 신체의 일부가 됐다. 이들이 주로 하는 컴퓨터게임은 이미 주어진 프로그램(규칙) 안에서 이뤄진다. 처음부터 예외는 없다. 이뿐만 아니라 뛰어난 검색기능은 정보를 찾아가거나 배우려는 노력마저 앗아가 버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컴퓨터 즉, 미리 정해놓은 규칙과 명령(매뉴얼)을 충실히 이행하는 요즘 세대를 ‘명령수행형 인간’이라 명명한다.
저출생 지방소멸은 눈앞에 닥쳐있는 화두이다. 필자는 현대인들의 IQ 하락추세인 ‘역 플린효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저출생과 지방소멸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저출생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부담이다. 경제적 부담을 감내하고서도 도시를 고집하는 것은 자녀교육이 가장 큰 원인이다. 따라서 우리 홍성은 동네 아이들이 함께 뛰고 뒹굴고 노는 ‘합의형 인간’을 키우는 새로운 교육환경을 마련해 AI시대 ‘명령수행형 인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미래 지도자들을 키워내는 새로운 장을 열었으면 한다.
범상스님 <석불사 주지·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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