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자 하는 마음,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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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자 하는 마음, 사랑
  • 노승희 <사과꽃발도르프학교 담임교사>
  • 승인 2024.11.1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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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오가는 데 2~3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아시아 국가이고 여러모로 편리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여행하기에 수월한 나라이다. 하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여행이기에 나는 꽤나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언어가 통하지 않았고, 미리 구매한 핸드폰 유심이 작동하지 않아 식당까지 갈 길이 먼데 부모님은 배고파하시는 등의 생각지 못한 변수들 속에서 나는 수시로 당황하고 헤맸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지 싶다가도 언어적 소통이 되지 않는 것에 참으로 오랜만에 답답함을 느꼈다. 식당에서 맥주를 주문하고 맥주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는 기다리다 못해 “beer!”하고 소리를 지르셨다. 나는 그 모습에 민망해하며 조금 더 친절하게 말할 수 없겠냐고 아버지를 다그쳤다. 

며칠 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 시내의 마트에 들렸다. 먹을거리를 사고 계산을 하는데, 계산하는 마트 직원이 영수증을 받아 가야 하는 나를 세워두고 다른 손님들 물건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비행기 시간은 다가오고 마음이 급해진 나는 오른손으로 나의 왼 손목을 탁탁 치며 “flight! no time!” 볼멘소리로 소리쳤다. 

더불어 한국어로 ‘왜 이유도 없이 세워두는 거야. 시간 없는데’라며 툴툴대기까지. 나무랐던 아버지의 행동이나 내 행동이나 마찬가지였음을 떠올리며 살짝 부끄러운 채로 마트를 빠져나왔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비언어적 방법으로 어떻게든 소통하려고 한 아버지와 나의 모습은 이유 없이(모르게) 울거나 보채고 떼쓰는 아이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미옥의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는 3살 아이의 여러 말과 행동,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엄마로서의 마음, 시인 또는 작가로서의 마음을 그린 듯 세밀하게 담은 에세이다. 작가는 아이를 키우는 것을 ‘구름’에 비유했다.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 안미옥 저/ 창비/ 2024년 4월/ 14,000원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 안미옥 저/ 창비/ 2024년 4월/ 14,000원

우리는 구름의 색, 모양, 움직임을 보며 날씨를 예측하려 한다. 하지만 구름은 별안간 변하며 예측을 뒤엎는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구름을 보며 날씨를 예측하는 것처럼 ‘모름’의 영역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가 도대체 왜 우는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는’ 상황은 ‘해결해야 할’ 상태가 된다. 

하지만 작가는 모르겠으니까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더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는 여행 중 아버지와 나의 모습처럼 무언가를 말하고 행동하고 있으니까. 그들만의 방식으로. 

다가올 봄, 출산을 하여 신생아를 만날 나는 ‘알지 못하는 답답함’, ‘알지 못하는 두려움’의 세계를 앞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존재를 더 알고자 노력하고, 경험하고, 공부하고, 묻는다. 그렇게 두려움을 넘어 한 존재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한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어떤 존재와 언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면 그저 묻고 답을 듣고 해결 끝! 하고 말았을 것이다. 눈물, 울음소리, 방구 냄새, 피부색, 세세한 움직임…. 한 존재의 모든 것을 온 감각으로 살펴야 하는 신생아 시기는 양육자에게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 가르쳐주는 시간이 아닐까. 

세상엔 모르겠는 것들이 더 많다. ‘모르겠음’을 ‘몰라도 됨.’ 그러니까 ‘단절’로 가지 않고,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에겐 사랑이 더 가득해지리라. 제목처럼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 몸을 움직인다면, 우리가 모르는 존재들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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