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원 참사 희생자 박가영 엄마>
사랑하는 딸을 잃은 지 2년 반이 훌쩍 넘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의 밤은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날 이후, 딸을 위한 엄마이기보다 진실을 찾는 유가족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딸의 빈자리는 여전히 크고, 매일 밤 그리움에 잠 못 이루는 나날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슬픔 속에서도 나는 딸이 왜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야 했는지, 그리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지난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억과 위로, 치유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열린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세월호·이태원·무안 여객기·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사회적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정부를 대표해 공식 사과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딸을 잃은 슬픔 속에서 지난 시간을 보내온 나로선, 우리의 아픔에 공감하고 진심으로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모습에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아울러 이전 정부에서 느꼈던 답답함과 소통의 부재가 다소 해소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한 번의 만남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적어도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픔을 공감하려는 노력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었다.
나와 같은 유가족들은 지난 시간 동안 외롭게 싸워왔다. 때로는 차가운 시선과 무관심에 좌절하기도 했고, 때로는 정치적인 논쟁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바랐던 것은 단 하나였다. 사랑하는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 있는 자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는 것, 그리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의 외침이 메아리 없는 절규로 끝나지 않길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새 정부에 대한 기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단순히 보여주기식의 소통이 아니라, 진정으로 대규모 사회적 참사의 아픔을 보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 주길 기대한다.
첫째, 성역 없는 진실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참사의 원인과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점을 투명하게 밝히고, 책임 있는 이들에게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잘못을 묻는 것을 넘어, 국가의 시스템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둘째, 지속적인 유가족 지원이 필요하다. 정신적, 물질적 고통에 시달리는 유가족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단순히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자립을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길 바란다. 우리는 여전히 슬픔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국가가 우리의 손을 놓지 않고 함께 걸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셋째, 안전 시스템의 전면적인 재정비를 촉구한다. 이태원 참사는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비극이다. 재난 예방 시스템, 현장 대응 매뉴얼, 그리고 관련 법규 등 모든 면에서 허점이 없었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나는 딸을 잃은 엄마로서, 이태원 참사가 우리 사회에 남긴 깊은 상처가 치유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단순히 슬픔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 보다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새 정부가 약속했던 ‘국민을 위한 정부’의 모습을 여러 사회적 참사 해결 과정에서 보여주길 간절히 기대한다.
사랑하는 딸에게, 그리고 이태원 참사로 떠나간 모든 희생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외친다. 부디 우리의 아픔이 헛되지 않도록, 국가가 마지막까지 우리와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 참사를 마주하는 진정한 자세는 바로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아픔을 함께 나누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이 새 정부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작은 울림이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