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운대학교 부동산경영학과 교수
칼럼·독자위원
전통적으로 조상을 숭배하며 명복을 비는 제사는 부계 중심의 가부장제도와 연결돼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그러다 보니, 제사는 남자들끼리만 지내는 것이고 여성의 제사 참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남녀평등 사상이 일반화되고 가부장제도가 쇠퇴함에 따라 이와 같은 남성 중심의 제사제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됐다. 헌법상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민법상으로도 가부장적 호주상속제도가 폐지되는 등 변화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위와 같은 남성중심적 제사제도는 헌법을 최상위로 하는 우리 사회의 전체 법질서에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사와 관련해 민법은 분묘에 속한 1정보(3000평) 이내의 금양임야와 600평 이내의 묘토인 농지, 족보와 제구 등의 소유권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이를 승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현행법상 분묘 등은 제사 주재자가 이를 승계한다고 명확히 규정돼 있으나, 그렇다면 누가 제사 주재자가 되는 것인지, 즉 제사 주재자를 정하는 방법에 관해 침묵을 지키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분묘나 금양임야의 승계 등 제사 주재자의 권리적 측면을 중요하게 인식했지만 최근에는 제사비용 부담, 유골의 관리, 장례와 분묘의 관리, 지료부담 문제 등 제사와 관련된 의무적 측면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사는 본래 관습으로 전해 내려오는 제도이므로 이 문제는 결국 판례에 의해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제사 주재자에 대해 그동안 대법원은 여러 차례 판결 변경을 통해 그 견해를 바꾸어 왔다. 종래 대법원은 유교적 종법제도와 남성우위 사고를 바탕으로 통상 종손이 제사 주재자가 된다고 했다. 그 이후 대법원은 우선 공동상속인들의 협의로 제사 주재자를 정하고,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망인의 장남, 장손자, 장녀의 순으로 제사 주재자가 된다고 입장을 바꿨다. 하지만 이 판례 역시 장남, 장손 등을 장녀보다 우선시함으로써 여전히 남성 우위적 사고를 탈피하지는 못했다.
2023년 5월 11일에 이르러 마침내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원칙적으로 제사 주재자는 공동상속인들의 협의로 정하고,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 주재자로 우선한다고 판시함으로써 제사 주재자 결정에 있어서의 남녀차별은 완전히 철폐됐다.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 주재자로 우선한다고 보는 것이 조리에도 부합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부계혈족인 남성을 중심으로 가계를 승계하는 것을 당연한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였던 종전 관습에서 벗어나 남자 우선이 아니라 연장자 우선으로 입장을 변경한 판례는 제사에 관한 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부모님이 상속인인 여러 자녀를 남기고 돌아가신 경우 이제는 장남, 장녀, 차남, 차녀 등 태어난 순서에 관계 없이 그 자녀들이 협의해 정한 자가 제사 주재자가 된다. 막내아들이나 막내딸도 형제들 간에 협의로 얼마든지 제사 주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형제들 간에 제사 주재자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장자가 제사 주재자가 되므로 딸이 아들보다 연장자인 경우 출가 여부에 관계 없이 딸도 제사주재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