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에 터 잡은 부부 예술가, ‘따로 또 같이’ 실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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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에 터 잡은 부부 예술가, ‘따로 또 같이’ 실험실
  • 이정은 기자
  • 승인 2026.03.05 07:09
  • 호수 931호 (2026년 03월 05일)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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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역 각양각색 문화예술인
⑯최선영·이재환 작가
같은 곳을 보고, 각자의 방구를 뀌며
지난달 24일 ‘예방구’에서 만난 최선영·이재환 부부 예술가.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도시의 숨 가쁜 속도를 뒤로하고 여섯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홍성으로 내려온 부부 예술가가 있다. 대학교 선후배로 만나 20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해 온 최선영 문화예술기획자와 이재환 미술작가다. 이들에게 예술이란 먹은 것을 소화시켜 자연스럽게 배출하는 생리 현상이자, 지역이라는 느슨한 빈칸을 채워나가는 일상의 리듬이다. 문화예술기획자와 미술작가로 각자의 영역을 확장해 온 두 사람을 만나 지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의 해방감과 고충,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예술 놀이터에 대해 들어봤다.

■ 캠퍼스에서 시작된 20년, 서로의 ‘폭’이 되어주다
두 사람의 인연은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시작됐다. 군(軍) 제대 후 복학한 이재환 작가는 최 작가의 첫인상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며,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기존 멤버들과 보드게임을 하는데 어느 날 이 친구가 신입으로 들어왔어요. 제가 ‘도와줄까요?’ 했더니 도움을 안 받더라고요. 그때 ‘만만치 않은 친구네’라고 생각했죠. 그날 제가 1등, 아내가 2등을 했어요.”

최선영 작가는 “본인 작업도 열심히 하면서 취미도 열심히 하는 사람, 그 점이 흥미로웠다”고 기억한다.

연애 초기 ‘잘 맞는다’는 감각은 20년을 지나며 “맞네, 아니네, 역시 맞네”의 반복으로 성숙해 왔다. 두 사람은 부부이자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불안정하지만 자유로운 삶”이라고 말한다. 정해진 수입도 시간표도 없지만 갑자기 집중해야 할 일이 생기면 곧바로 몰입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래 함께 했기에 작업 특성을 이해하는 폭이 넓다는 점이 가장 큰 힘이라고 말한다.

“예술 작업을 하다 보면 고독한데, 저희는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남들보다 넓고 그게 또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이어진 파트너쉽이 마음의 안정도 주고요.”

■ 여섯 생명이 이끈 홍성, ‘헐거움의 가능성’
두 사람이 홍성에 정착한 것은 2022년 연말 무렵이다. 수도권에서 작업실을 유지하기엔 비용이 컸고, 무엇보다 여섯 마리 강아지와의 삶이 중요한 기준이 됐다.

“대학교 졸업반 때 갑자기 개를 키우게 됐어요. 그때도 졸업 작품보다 강아지가 더 중요했어요. 생명 앞에서는 뭐든지 다 후순위가 되더라고요. 그 생각이 같았어요. 굳이 설득할 필요가 없었죠. 저희를 홍성까지 오게 한 것도 강아지들 여섯 마리예요.”

넓은 마당과 창고를 작업공간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은 지역이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작은 작업들과 워크숍을 여는 등 이전엔 엄두 낼 수 없던 것들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한계도 있었다. 비슷한 작업을 하는 동료를 만나기 어려웠고, 공식적인 문화 네트워크와의 연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여전히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동료들과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홍성은 전통적이고 장르 중심의 예술 활동이 많고, 주로 축제 행사 중심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게 꼭 단점은 아니에요. 빈 땅과 빈 건물이 많다는 건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뜻이니까요.”

최 작가는 홍성은 ‘헐거워서 좋은 곳’이라고 표현한다. 너무 동시대적이지 않아서, 너무 많지 않아서 오히려 좋다고 말이다.
 

지난해 10월 ‘공간 들’에서, 이 작가가 전시 ‘다시 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과정을 기록하는 여자, 공간에 드로잉하는 남자
최선영 작가는 ‘과정’을 사랑하는 기록자다. 그는 작품이라는 결과물 뒤에 숨은 사람들의 이야기, 지역과 장애예술이 교차하며 생겨나는 미세한 파동에 주목한다. 지난해 충청권 장애예술 지역탐방 ‘별 거 아닌 것 같지만’을 기획하며 그가 건넨 시선은 단순한 방문이 아닌 ‘서성임’에 가까웠다. 지역의 리듬을 몸으로 체험하고 생생한 개별 사례를 관찰하며, 최 작가는 흩어지는 순간들을 문장으로 엮어 《같이 좀 모르자》, 《추임새를 부탁해》 같은 책으로 남겼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머릿속에 떠다니는 것들을 언어로 남기고 싶은 욕구 때문이에요. 기록에 대한 욕구죠. 책은 외부와 공유하고 싶어서 쓰는 거고요.”

이어 그는 지난해 4월 홍동면 밝맑도서관에서 열린 북토크를 특히 기억에 남는 자리로 꼽았다.

“다른 지역에서는 주로 책 또는 장애인 예술교육에 관심 있는 분들만 오셨는데, 홍동에서는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농사짓는 공동체 ‘꿈이 자라는 뜰’ 구성원 등 일상적으로 다양성에 관심 있는 분들이 오셨어요. 그래서 더 넓은 이야기가 가능했고, 저에게도 힘이 됐습니다.”

현재 그는 문화예술 현장에서 쌓인 생각과 혼잣말을 담은 새 책 《쓰다 보면 읽히겠지》를 탈고하고 디자인 작업 중이며, 한두 달 내 출간을 앞두고 있다.

반면 이재환 작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3D 펜, 전자장치 등을 활용한 설치미술을 중심으로 작업하고, ‘예방구(예술이 있는 문방구, 홍성읍 남문1길 30)’를 운영한다.

그는 지난해 5월 홍주문화관광재단의 지원으로 개인전 ‘내일도 모르는데’를, 10월엔 충남문화관광재단의 후원으로 개인전 ‘다시 춤’을 열었다. 최근엔 근대 역사를 주제로 심층 조사를 진행 중이며, 올가을 대만 레지던시 참여를 앞두고 있다.

최선영 작가는 남편의 작업을 “솔직하다”고 말한다. 이재환 작가는 아내의 작업들이 “일상적이고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서로에게 부러운 점도 분명하다. 그는 아내의 문장력을, 그녀는 남편의 낯선 것을 탐색하는 태도를 부러워한다.
 

지난해 4월 홍동면 밝맑도서관에서 진행된 《같이 좀 모르자》 북토크.

■ 장난스러운 이름 뒤에 숨겨진 예술가의 통찰
2024년 입주해 올해로 3년 차에 접어든 ‘예방구’는 남문동도시재생어울림센터 내 자리한 예술가의 편집숍이자 모임 공간이다. 정해진 운영 시간 없이 자율적으로 문을 연다. 

예방구 SNS 소개 글에는 “예술은 방구 같은 것”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그 의미를 묻자 이재환 작가는 멋쩍게 웃으며 설명했다.

“방구는 소화의 결과물이죠. 사람마다, 또 뭘 먹었느냐에 따라 냄새도 소리도 다 다르잖아요. 적당히 해야 하는데 과하면 다른 게 나올 수도 있고요. 허허. 말장난처럼 쓴 표현이에요. 예술도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장난처럼 시작된 말이지만, 그 안에는 예술가가 지닌 표현의 필연성과 이 작가만의 유머가 공존한다. 
 

최선영 작가의 저서 《같이 좀 모르자》.

■ 현실과의 마찰, 예술의 지속성에 대하여
두 사람의 대화는 일반 예술에서 시작해 삶과 정치, 때로는 주식 이야기까지 뻗어나간다. 

“저희는 ‘예술이 삶과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걸 각자의 영역에 맞게 자세히 얘기하죠.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예술인 것 같아요. 장르로 나누다 보면 대화가 협소해지기 마련이죠. 사실상 저희가 나누는 모든 대화는 결국 예술로 연결돼요.”

그러나 지역에서의 예술 실험은 녹록지 않았다. 이들은 다양한 시도가 제도 안에서 단순한 형식으로 환원되는 현실을 경험했다.

“위에서 프로그램을 설계해 내려보내는 방식보다, 아래에서부터 자생하는 예술 생태계가 구축되는 게 가장 이상적일 것 같아요. 그래야 지역문화예술이 일회성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작가의 말처럼, 예술은 방구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참지 않고, 꾸준히, 자기 방식대로 내보내야 하는 것. 그리고 그 냄새와 소리를 함께 이해해 줄 누군가가 곁에 있을 때, 비로소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아닐까. 이들의 활동 소식은 인스타그램(@bokman_choi, @yebangku)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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