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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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 범상<칼럼위원>
  • 승인 2013.12.1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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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년행사로 분주하다. 며칠 전 송년모임에서 맞은편에 앉은 분이 "00께 기도했더니 암(癌)이 완치되었다"는 경험담을 늘어놓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정도가 지나쳤다. 못된(?) 성격이 발동하여 "그 분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잘라진 손가락은 왜 다시 자라나도록 하지 못하는지요"물었고 서먹해진 가운데 식사가 끝났다.
각설하고, 인간의 운명과 길흉화복은 인류의 최대관심사이다. 인도(종교)사상은 이러한 문제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 먼저 유신론부터 살펴보면 자연과 자연현상의 배후에는 어떤 힘이 있다는 자연신을 시작으로 그 중(자연신)에서 으뜸이 되는 주재신(主宰神)을 산정했고 마지막으로 우주를 창조했다는 유일신으로 이어진다.
인도의 창조신은 3단계의 발전을 거친다. 가장 먼저 '비슈와카르만'라는 신이 '목수가 집을 짓듯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주장했으나 재료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자 이번에는 엄마가 아이를 낳듯이 '우주를 낳았다'는 '프라자파티'라는 새로운 신을 산정했다. 그런데 엄마와 아이가 한 몸이 될 수 없듯이 '프라자파티'는 '안과 밖의 문제'에 부딪쳤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치 풍선이 불어나듯이 스스로 불어났다'는 '브라흐만'이라는 신을 만들어내었고 개개의 우주만물은 다화(多化)의 욕구를 가진 '브라흐만'의 현현이라는 '범아일여'를 주장했다. 그러나 범아일여는 "잘게 부서진 금조각도 금이다"라는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인도의 유신론은 막을 내렸다.
금조각의 물음은 이렇다. 신은 전지전능하므로 아무리 작은 알갱이로 쪼개지더라도 전지전능해야 한다. 그래서 '성령'이 되었든 '신 내림'이 되었든 간에 몸에 들어 왔거나 내재되어있다면 그 사람은 신과 같은 능력이 발현되어야하는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느냐하는 것이다.
다음은 무신론으로서 숙명론, 우연론, 회의론, 요소론 등과 현대과학을 이끌고 있는 유물론이 있다. 유물론은 인간의 마음도 물질현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만약 마음이 물질현상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색(色)이라는 물질과 정신작용이 합쳐져서 인간을 이룬다고 주장하는 불교역시 유신론과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현대과학의 유물론은 모든 물질은 '안정화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마음이 물질의 현상이라면 즐거움(쾌락)을 위해 안정화경향에서 벗어나려는 인간행동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나무에 불이 닿으면 타서 재가 되지만 사람은 피한다. 왜냐하면 나무는 안정화경향을 따라가지만, 사람은 즐거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에 관심을 가졌고, 우주 역시 마음의 인식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만약 인간의 마음(행동)이 물질현상으로부터 일어난다든지 아니면 신이나 운명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한다면 그 어떤 노력도 필요 없을 것이며 죄 역시 물질현상이나 신 또는 운명에 의한 것이므로 처벌 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이러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신 또는 운명, 사주팔자 등을 신봉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고단한)삶이 자신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어떤 것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이유를 만듦으로서 스스로 면죄부를 주려는 방어기제의 발동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신)(운명)~때문'이라는 외적요인 즉, 핑계꺼리를 가지게면 불행이라는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송년(送年)이 되었든 영신(迎新)이 되었든 자기 자신의 변화 없이는 행복의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년의 자리가 그간의 삶을 되돌아보고 행동을 바꾸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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